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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반도체·에너지부터 우주산업까지···통합특별시에 투자를
“지역의 성장 엔진 역할을 할 대기업과 앵커기업(선도기업)의 투자를 유치하는 게 중요하죠.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들어와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성공도 담보될 수 있습니다.”이재명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5극 3특’ 정책에 대한, 지역균형발전과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5극 3특은 ‘5개의 극, 3개의 특’의 약자다. ‘5극’은 호남권(전남·광주)과 수도권, 동남권(부산·울산·경남), 대경권(대구·경북), 중부권(충청)을 가리킨다. 전남과 광주가 40년 만에 행정통합을 선택한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인구 감소와 지역2026.06.29@ 이정민 -
일제를 몰아내고 국권을 지키려 일어난 영호도회소와 김인배
1894년 6월 21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으로부터 비롯된 제2차 동학농민전쟁은, 동학농민군이 일본군과 싸운 전면전이었다. 때로는 정부군과 싸우기도 했지만, 정부군의 실질적인 지휘는 일본군이 하고 있었다. 동학농민혁명을 이야기할 때 전봉준, 김개남 등의 활동을 주목하지만, 실제는 무장의 손화중, 무안의 배상옥이 이끄는 농민군 세력이 이들보다 최소 2~5배 정도로 규모가 컸고, 나주의 오권선, 장흥의 이사명·이방언도 전봉준 못지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더구나 순천 지역을 근거로 김인배가 결성한 ‘영호도회소’는 제2차 동학농민전쟁2026.06.29@ 차솔빈 -
강진을 지켜낸 수문장···전략의 귀재 염걸 장군
1596년 11월 정유재란 가능성이 농후할 무렵, 조정에서는 일본군의 재침에 대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덕형은 “수전(水戰)이 상책이고, 그 다음이 산성을 지키는 것이니 주사(舟師)를 신칙하여 적이 오는 길을 막게 하고”라 하며 해상에서 미리 일본군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류성룡 역시 같은 의견을 지니고 있었다. 곧 조정에서는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이끄는 조선 수군을 통해 일본군의 재침을 막으려 했다.그러나 익히 아는 바처럼 일본의 이간계에 휘둘린 조선 조정은, 1597년 1월 28일 이순신을 파직했다. 이순신을 대신해 삼도수2026.06.29@ 한경국 -
왜란 맞서 목숨 바친 윤신···화암사·만의총에 남은 충절
강진군 군동면 화산리에 ‘화암사(華巖祠)’라는 사당이 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외세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해남 윤씨 가문 일곱 명의 충신을 배향했다 해 ‘칠충사(七忠祠)’라고도 불린다. 2004년 11월 1일 강진군의 향토문화유산 제9호로 지정됐다.이 사당은 원래 1823년 도내 유림이 임진, 정유재란 때 순절한 윤신, 윤동철, 윤치경, 윤이경, 윤익경 등 5명을 배향하는 사당 건립을 청해 현재의 화암(花巖) 아래 사당을 건립했다. 처음에는 5명의 신주를 모셨다 해 ‘오충사(五忠祠)’라 불렀다. 1871년 대원2026.06.29@ 한경국 -
나라를 위해 목숨 맞바꿨다···송대립·송희립 가문의 호국 열전
이미 살핀 바 있는 진무성, 신여량을 비롯해 오늘 살필 송대립·송희립 형제 등 이순신 막하에 속한 인물 상당수가 고흥 출신이다. 이미 언급한 바 있듯이 고흥은,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가운데 1관 4포를 차지하고 있었다. ‘관’은 고을, ‘포’는 수군 기지를 뜻하는데 5관은 순천도호부, 광양현, 낙안군, 보성군, 흥양현 등 다섯 곳이고, 5포는 방답진, 사도진, 여도진, 녹도진, 발포진 등 다섯 곳이다. 5포 가운데 방답진은 지금 여수돌산 군내리에 해당하고 나머지 진은 모두 고흥 지역에 있다. 그러니까 지금의 고흥인 흥양현을 포함해2026.06.29@ 한경국 -
천험의 요새서 목숨 바쳐 충절을 지킨 입암산성의 불사신 윤진
장성 백양사에서 정읍 내장사로 넘어가는 등산로는 그다지 험하지 않아 산행을 즐기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 등산로가 국난 극복의 현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전북 정읍 입하면과 전남 장성 북하면의 경계를 짓는 등산로의 정상이 입암산인데, 갓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이곳 입암산에는 산의 8부 능선을 따라 높이 3m, 길이 약 5.2㎞나 꽤 길게 성을 쌓은 ‘포곡식(包谷式)’ 산성이 있다. 사적 384호인 산성 주변에는 인공 연못인 해자(垓字)도 시설되어 있다.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지금도2026.06.29@ 한경국 -
이순신 척후부터 전라우도수군절도사까지···왜란의 숨은 공신 신여량
관외로 반출돼 있는 우리 문화유산을 원래의 자리에 옮겨 놓아야 하는가 하는 논란이 있었다. 문화 유산은 그 지역의 정체성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 문화유산을 제대로 관리, 보존할 능력이 갖추어져 있는 경우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아야 한다. 고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권율 장군의 막하에서 공을 세운 신여량 장군 유품 가운데 1987년 전남도문화재로 지정된 상가교서, 밀부유서 등 소장품이 후손의 기증으로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소유권이 이관되면서 전남도문화재 지정이 해제됐다. 상가교서, 밀부유서는 보물로 지정되었지만 주사선연지도 등 다2026.06.29@ 한경국 -
임진에서 정유까지 세 차례의 구국 결사···'남문창의' 맹주 김경수
1919년 4월 3일, 4일 양일에 걸쳐 장성 모현리에서 대규모 만세 시위가 있었다. 이 시위를 기념해 시위 현장에 구속됐던 이 마을 출신을 추모하는 사당 ‘3·1사’가 있다. ‘3·1사’ 바로 옆에 잘 정비된 사당이 있다. 임진·정유재란에 참전한 장성 출신 의병을 모신 ‘오산창의사’다. 임진왜란 속 국난 극복의 애국심이 3·1운동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준다. 오늘은 흥선대원군이 ‘문불여장성(文不如長城)’이라 하였던 장성 지역 의병을 이끈 김경수 다.임진왜란 당시 호남지방에2026.06.29@ 한경국 -
고성 의병에서 가리포의 방패까지···지략과 용맹으로 쓴 승전보
완도에는 임진왜란 때 전라우수영의 6개 만호진(회령포, 마도, 이진, 어란, 금갑, 남도포)을 관장한 가리포진이 있었다. 가리포는 중종 16년(1521년) 전라좌도 강진현 완도(현재 완도읍 군내리)에 설치되었다가 1894년 폐진됐다. 가리포첨사는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정걸, 이억기, 이영남 등 임진왜란의 영웅들이 이 자리를 역임했다. 가리포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음을 말해준다.완도읍 가리포진성 터 바로 뒤에 있는 남망산 봉수대는 이순신 장군과 인연이 있다. 가리포첨사로 발령받은 이순신 장군이 남해안을 순시하다가 이 봉수대에 올2026.06.29@ 한경국 -
“이순신 장군과 바다를 누볐다” 상량문으로 증명된 흥국사 300인 의승군
여수 영취산에는 조계종의 개조인 보조국사 지눌이 1195년(고려 명종 25)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흥국사가 있다. ‘흥국(興國)’이라는 절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호국불교의 성지이다. 흥국사에는 ‘의승수군 유물 전시관’이 있다. 임진왜란 때 승려의 신분으로 수군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싸웠던 승려, ‘의승’들이 일본군과 싸울 때 입었던 피묻은 옷, 흥국사 승려들이 만든 전라좌수영 관련 건축용 기와 등 의승수군과 관련된 유물이 많이 보관되어 있다. 내부 수리중이라고 한다.임진왜란 때 의병들의 눈부신 활약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다. 의병들의2026.06.29@ 한경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