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사문학 산실'···700년 전통 예술혼 잇는다

입력 2025.02.10. 17:10 김만선 기자
예향 남도문학 원류를 찾아서④-담양
송순·정철 등 조선 국문학사 빛내
문학·정신적 유산 가사문학관에
문순태·고재종·최두석 창작 활발
수필문학 대부 박연구 문학비도
작가 레지던스 '글을낳는집' 주목
군, 가사문학제 등 통해 활기 모색
식영정

'흰 구름 뿌연 연하(煙霞) 푸른 이는 산람(山嵐)이라/천암(千巖) 만학(萬壑)을 제 집으로 삼아 두고/나명셩 들명셩 아양도 떠는구나/오르거니 나리거니 장공(長空)에 떠나거니 광야로 건너거니/푸르락 붉으락 옅으락 짙으락/…/조물이 헌사하여 빙설(氷雪)로 꾸며내니/경궁요대(瓊宮瑤臺)와 옥해은산(玉海銀山)이 안저(眼底)에 벌였어라/건곤도 풍성할사 간 데마다 경이로다' (송순의 '면앙정가' 중)

담양은 가사문학의 산실이다. 조선중기 국문학사를 꽃피웠던 송순을 비롯한 수많은 문인들이 원림과 누정을 가꾸고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가사는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문학 형식이다. 형식상 4음보(3·4조)의 연속체인 율문이면서도 내용상 수필적 산문이어서 산문과 율문의 중간적 형태를 띠는 게 특징이다. 고려말에 발생해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지속적으로 전해 내려왔다.

면앙정(면仰亭)은 송순(宋純·1493~1582)이 1533년 잠시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담양에 내려왔을 때 지은 정자다. '세상을 굽어보고 우러러 하늘을 쳐다본다'는 뜻으로 '면앙'이라 이름 붙이고 많은 문인과 교류하면서 '면앙정단가(면仰亭短歌)', '면앙정삼십영(면仰亭三十詠)', '면앙정잡가(면仰亭雜歌)' 등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그 중 '면앙정가(면仰亭歌)'는 한글 가사로 이뤄진 조선 전기 대표적인 작품이다. 정극인의 '상춘곡(賞春曲)'과 함께 호남 가사문학의 원류일 뿐 아니라, 그 내용과 형식 등은 정철(鄭澈)의 '성산별곡(星山別曲)'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어 가사 문학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고재종 시인

◆한국가사문학관, 역사·정신 한눈에

송강(松江) 정철(1536~1593)은 조선시대 가사 문학의 대가로 꼽힌다. 창평 지실마을은 그의 할아버지 묘소가 있는 곳으로 송강에게 문학의 고향이기도 하다. 송강은 벼슬을 하는 동안 4차례 낙향해 창평에서 지냈다. 그는 이 기간동안 국문학 사상 중요한 '성산별곡(星山別曲)'과 '관동별곡(關東別曲)', '사미인곡(思美人曲)', '속미인곡(續美人曲)' 등 뛰어난 가사 작품과 시조를 남겼다.

담양의 면앙정과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송강정 등 많은 누정들은 문인들의 교유와 시단의 중요한 무대가 됐다.

담양의 풍부한 가사문학 자산은 지난 2000년 한국가사문학관 개관으로 이어졌다.

담양 남면에 위치한 한국가사문학관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학인 가사문학에 관한 역사와 자료들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사미인곡, 관동별곡 등 담양에서 지어진 가사 18편과 역대 가사 필사본, 정철, 송순, 양산보 등 가사문학 관련 서화 및 문헌, 사림들의 유품 등이 전시돼 있다.

특히 가사문학의 대가인 정철의 송강집과 친필 유묵, 선조로부터 하사받은 은배, 옥배와 송순의 면앙집 등을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가사문학의 역사를 소개하는 영상물을 시청각실에서 상영하고 있어 가사문학의 이해를 돕고 있다.

기획전시실(갤러리), 자미정, 세심정, 토산품전시장, 전통찻집 등 부대시설도 갖추고 있다.

최두석 시인

◆한국문단 살찌운 지역 출신 작가들

가사문학을 꽃피운 담양의 정신과 맥은 현대에도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한국 문단을 풍요롭게 하고 있다.

매원(梅園) 박연구(1934-2003)는 한국 수필문학의 대부로 꼽힌다. 수필이 본격적인 문학 장르로 설 수 있게 위상을 확립하고 수필문단이 형성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

그는 40여 년의 문단 활동 기간 '바보네 가게', '어항 속의 도시', '환상의 끝', '사랑의 발전' 등의 작품집을 발간했다. 이 중 '바보네 가게'는 1969년부터 1989년까지 20여 년간의 시차가 나는 작품을 수록해 시대상을 확인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1970년 현대수필 동인회 주간, 1973년 한국수필가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을 역임하면서 1970년대 수필문학이 개화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만든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019년 11월에는 담양 담빛예술창고 조각공원에서 문학비 제막식을 갖기도 했다. 문학비는 매원문학비건립추진위원회에서 기금을 조성해 건립했다.

글을 낳는집

소설가 문순태와 고재종·최두석·손택수 등은 현재 문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문순태 작가는 김현승 시인의 추천을 받아 1965년 시 작품 '천재들'로 문단에 등단했다.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은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제에 땅을 빼앗긴 영산강 인근 농민들이 이를 되찾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투쟁사를 담고 있다.

문 작가는 소설 '고향으로 가는 바람', '징소리', '걸어서 하늘까지', 시집 '생오지에 누워', '생오지 생각', 홍어' 등 60여 권에 달하는 책을 펴냈다. 이상문학상 특별상, 문학세계 작가상, 채만식 문학상 등을 앞서 수상했으며 지난해에는 제2회 김현승 시문학상 본상을 수상했다.

문 작가는 나주에서 개관한 '타오르는 강 문학관'에서 집필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문 작가는 특히 인재 양성에 많은 공을 들이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07년 담양에 귀향한 이후 소설창작대학을 비영리로 운영하다 체계적인 경영을 위해 2013년 생오지 마을에 '생오지 문예창작촌'을 설립해 운영했다. 문예창작촌은 18년간 1천여 명이 넘는 많은 예비문인들이 열정을 불태웠으며 41명이 등단하는 성과를 거뒀다.

고재종 시인은 1980년대 이후 농촌시를 쓰는 대표적 작가다. 그의 시 세계는 자연에 대한 헌화, 농촌의 생명성에 대한 천착으로 일관하고 있다. 초기에 소외된 농촌 현실을 대변한 이후 농촌시의 승화로서 생태를 강조하고 있다.

가사문학의 꽃을 피운 담양의 면앙정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한 이후 시집 '바람 부는 솔숲에 사랑은 머물고', '새벽 들', '사람의 등불', '그때 휘파람새가 울었다', '쪽빛 문장', '고요를 시청하다' 등을 펴냈다. 신동엽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소월시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조태일문학상, 송순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계간 '시와사람', '문학들' 주간,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과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을 역임했다.

'꽃의 시인'으로 알려진 최두석 시인은 시집 대부분이 꽃을 표제 속에 담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 꽃은 실재하는 꽃이거나 시인이 상상한 꽃일 때도 있다. 그의 시는 사물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보여줌과 동시에, 날카로운 감각으로 대상의 이미지 위에 역사와 현실에 대한 성찰을 담아내고 있다. 1980년 등단한 이후 시집 '대꽃', '임진강',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 '꽃에게 길을 묻는다' 등을 펴냈다. 시인은 사실성과 서정성이 결합된 시작 활동과 함께 '이야기 시론'이라는 리얼리즘 시론의 주창자로도 알려져 있다.

손택수 시인은 농경문화적 정서와 상상력을 거름으로 해 전통 서정시의 내력을 이어가면서 섬세한 감수성과 서정의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수려한 작품 세계를 펼쳐온 작가다.

지난 1998년 등단 이후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붉은빛이 여전합니까',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 '나무의 수사학', '한눈 파는 아이' 등의 시집을 발간하는 등 식지 않는 창작열을 보여주고 있다.

담양 가사문학관

'글을낳는집'은 담양군 대덕면 용대리에 위치한 레지던시 문학공간이다.

영광 출신의 김규성 촌장(시인)이 지난 2010년부터 담양 대덕면에 터를 잡고 문을 열었다. 인적이 드물고 쾌적한 무공해 청정지역에 자리한 작가들의 공간은 모두 7개에 달한다. 작가들은 대개 1~3개월 가량 이곳에 묵으면서 글을 쓴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 간 작가들은 지난해까지 14년 동안 400여 명에 달한다. 강석경, 송기원, 이화경, 이도흠 작가와 김이듦, 신덕룡, 최두석, 권달웅 시인 등이 입주 작가로 활동했다. 권달웅 작가는 동리목월문학상, 이화경 작가는 현진건문학상을 각각 수상했다.

박연구 수필가

그들 가운데 67명이 글을낳는집 10주년을 기념한 작품집인 '그때 여기 있었네, 우리'를 발간하기도 했다. 글을낳는집에서 시간과 나눈 대화,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 시와 소설, 동화, 여행기 등이 담겼다.

김규성 촌장은 무료로 숙식을 제공하고 인근에 인적이 드물어 글을 쓰는 데 최적의 환경이이다보니 경기도는 물론 서울과 충청, 경기도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입주를 희망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손택수 시인

◆최근 다시 주목받는 가사문학

담양을 대표하는 가사문학은 최근 들어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담양군은 가사문학제와 청소년 가사시 랩 페스티벌 등 의미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700년 전통의 가사문학을 창조적으로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가사문학제는 한국가사문학대상 시상식과 전국 가사시 낭송 경연대회 등으로 나눠 치러진다. 지난해 11월에는 한국가사문학관 영상실에서 제25회 가사문학제를 개최했다. 행사는 가사문학대상 시상식과 '노계 박인로 가사의 문학적 특징과 위상'을 주제로 한 전국 가사문학 학술대회로 나눠 진행됐다.

청소년 가사시 랩 페스티벌도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청소년들이 주체가 돼 가사(歌辭)를 현대적 리듬과 접목,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기회의 장을 마련하고자 개최하는 행사다.한국가사문학관 누리집에 있는 '담양가사 18선'에 있는 작품을 활용한 창작품을 대상으로 한 이 행사는 지난해까지 6차례 치러졌다.

문순태 작가

송순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문학 저변확대를 위한 송순문학상은 대상과 새로운 신인상 부문으로 나눠 열리며 지난해까지 12차례 개최됐다.

지난 2014년 여름부터는 '오늘의 가사문학'도 발간하고 있다. 오늘의 가사문학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발행하는 가사문학 계간지다.

담양군은 '오늘의 가사문학' 발간과 함께 가사문학제, 가사문학 작품전, 찾아가는 교육 등을 통해 가사문학 저변 확대와 창의적 계승, 발전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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