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 고통 뜨거운 창작열 승화···'예술의 섬'으로

입력 2025.05.28. 15:34 김만선 기자
['예향' 남도문학 원류를 찾아서⑧-완도]
조선시대 형벌 따라 절해고도로
이세보 수준 높은 시조작품 창작
원교 이광사 서예정수 '동국진체'
고산 윤선도 '어부사시사' 남겨
시·서·화 분야 뛰어난 발자취
김만옥·임철우 작가로 맥 이어져
지역에선 '완도문협'활동 활발
원교 이광사를 기리는 문화거리가 완도 신지면 대평리에 조성됐다. 완도군 제공

절해고도(絶海孤島)는 '세상과 단절된 세상'이었다. 바닷길은 누구에게든 쉬이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해풍이 몰고 온 험한 파도와 몇 차례 드잡이를 해야 겨우 한 걸음 내딛을 정도였다. 진이 빠지게 힘겨루기를 하다 보면 제풀에 지쳐 진저리를 치기 일쑤였다.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바다는 막연한 공포감과 함께 두려움을 줄 뿐이었다.

섬은 유배자들의 땅이었다. 어떤 이는 죄를 지어 그 형벌로 찾아야 했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스스로를 유폐시키기 위해 오기도 했다.

섬은 세상과의 단절을 뜻했다. 육지의 소식은 물론 소중한 가족과 친구, 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연들을 철저히 차단시켰다. 간간이 인편으로 전해져오는 소식이나 편지 한 장이 위로받는 전부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거리감이 심리적인 단절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유배자들은 사회현실에 참여하지 못하는 대신 자신의 절망적인 상황을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정약전·이세보·지석영 신지도 유배

'황매화 피던 봄날 떠난 이별/골짜기에 단풍 들어 이미 시절 늦었으니/그리워하는 이 한마음 끝없는 이 이별에/저도 나를 그리려니/굳은 언약 깊은 정을 낸들 어이 잊었을까/…/가슴 속에 불이 나니/아홉 구비 간장이 다 타 간다/세상에 물로 못끄는 불이 없건마는/내 가슴 태우는 불 물로도 어이 못끄는가/…'(이세보 '상사별곡(相思別曲)' 중)

완도 신지도는 '유배의 섬'이었다. 손암 정약전, 이세보, 지석영 등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조선 후기 왕족으로 문신이자 시조시인인 이세보(1832~1895)는 1860년(철종 11)에 안동김씨(安東金氏) 세도를 비난하다가 신지도로 유배됐다.

이세보는 평생에 걸쳐 쓴 458수의 시조 가운데 신지도에서 77수를 지었다. 시조의 소재는 부정부패 비판과 애정, 도덕, 기행, 옛일에 대한 고찰, 여행지를 두루 지나며 느낀 감흥 등 다양하다. 폭넓은 주제와 내용은 다른 시조와 작가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세보 작품만의 특징으로 평가된다.

완도군은 완도읍 장좌리 장보고공원에 이세보시조문학비를 세워 그의 문학성을 기리고 있다.

원교 이광사(1705~1777)는 조선 후기 문인이자 시·서·화에 뛰어난 인물이다. 그는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도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했다.

원교는 50세인 1755년(영조 31) 소론 일파의 역모와 관련된 나주 괘서사건에 연좌돼 종신 유배형을 받았다. 그는 함경북도 부령에서 7년의 유배 생활을 하던 중, 문인에게 글과 글씨를 가르쳐 선동한다는 죄목으로 신지도로 이배(移配)돼 15년간 생활하다 생을 마쳤다.

원교는 서예의 기본적인 필법에 대한 이론과 평론을 겸한 이론서인 '서결(書缺)'과 우리나라의 자주성을 나타내는 '동국진체(東國眞體)'를 완성했다. 동국진체는 우리 민족 고유의 리듬과 멋, 감성이 담긴 고유의 서체로 독창성과 주체성을 지닌 조선 서예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원교가 신지도에서 생을 마감한 지 14년 후 다산의 작은형 손암 정약전도 신지도에서 8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했다.

완도 보길도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가 지은 20여 곳의 건축물 가운데 유희의 공간이었다. 완도군 제공

고산 윤선도(1587~1671)는 보길도에 스스로를 유폐시킨 사례다. 그는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고 제주도로 향하다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감동해 머물렀다.

보길도 부용동은 고산이 인조 15년(1631) 51세 때부터 13년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시가를 창작한 국문학의 산실이기도 하다. 고산은 노년에 자연과 산수를 노래하다가 85세 때 낙서재에서 일생을 마쳤다.

보길도 부용동 원림은 세연정(洗然亭)을 비롯해 낙서재(樂書齋), 곡수당(曲水堂), 동천석실(洞天石室) 등 20여 곳의 건축물이 있다. 그 중 '세연정'은 유희의 공간이었다. '주변 경관이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기분이 상쾌해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1637년 고산이 보길도에 들어와 부용동을 발견했을 때 지은 정자라고 한다. 세연정 주변의 자연을 인공미 섞어 배치하고 사방으로 개방이 되는 정자를 세워 주변 정취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낙서재'는 고산의 주거 공간이며 '곡수당'은 고산의 아들 학관이 휴식하는 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다. '동천석실'은 절벽 위에 세운 한 칸 짜리 정자로 '신선처럼 소요하는 은자의 처소'라는 뜻을 지녔다.

광주시립미술관 인근에 건립된 고 김만옥 시비

◆풍부한 예술 자산 현대 작가에 면면히

'봄비님 다녀간 담장 밑 양지쪽에/어느날 딸 아이가 능금씨 심는다//봄이 다 가고 여름이 와도/싹은 나지 않고 가슴 죄는데//가을이 다 가고 겨울이 와서/까마득 그 일 다 잊어버릴 때//딸 아이 마음속에 능금 꽃 필까/딸 아이 마음속에 능금이 열릴까//딸 아이에게 퇴비 한 줌 주지 못한/어른이 송구스럽다'(김만옥 시 '딸아이의 능금')

조선시대 유배지에서 꽃핀 완도의 뜨거운 예술혼은 현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고 김만옥(1946~1975) 시인은 1967년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한 작가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될만큼 천재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장학생으로 조선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수많은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기도 했다. 각종 신인상과 문학상의 상금을 생계에 보탰어야 할 정도로 그의 생활은 어려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은 가난 때문에 시를 쓰고 가난 때문에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그의 작품은 주로 이미지즘 기법과 심미주의 성향을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유고 시집으로 지난 1985년 '오늘 죽지 않고 오늘 살아 있다'(청사)가 출간됐으며 1998년 11월 5일 광주시립미술관 인근에 '딸아이의 능금'이 새겨진 김만옥시비가 건립됐다.

임철우 소설가

임철우 소설가는 현실의 왜곡된 삶의 실상을 통해 인간의 절대적 존재의식을 탐구해온 작가다. 전남대와 서강대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한 후 전남대 대학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난 1995년부터 2016년까지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그는 198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돼 등단했으며 소설집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 '연대기, 괴물'과 장편소설 '붉은 산, 흰 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등대', '봄날', '돌담에 속삭이는' 등을 펴냈다. 1988년 작품 '붉은 방'으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히 5권으로 이뤄진 장편소설 '봄날'은 5·18민주화운동의 전 과정을 담아낸 작품으로 주목을 끌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해 '오월문학'의 대표작가 '임철우와 한강 도서전'을 개최한 바 있다.

정관웅 전남문인협회장

정관웅 시인은 창작활동과 함께 전남문인협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시집 '비의 가지에 꽃눈으로' 등 5권을 펴냈고 심호문학상 작품상, 현구문학상, 전영택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지난 2023년에는 강진문학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시인은 자연 생태적 흐름에 순행하면서 자아의 시적 정서를 서정화하거나 상징화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자연과 사람과의 관계를 구체성으로 구현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자연의 본질적인 가치로 확산해 내는 점도 특징이다.

청산도 출신 정택진 작가(소설)는 최근 장편소설 '곳'을 출간했다. 제7대 대통령 선거(1971년)가 있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섬에 살고 있는 한 소년이 맨몸으로 겪어내야 했던 세상의 풍파를 그린 작품이다. 그는 지난 2023년 소설 '결'로 제1회 이외수 문학상에 당선되어 1억 원의 상금을 받은 바 있다.

금일읍 출신 이원화 작가(소설)도 지난 2006년 신춘문예에 당선된 후 '꽃이 지는 시간' '길을 묻다' 등을 펴내며 창작열을 불태우고 있다.

완도읍 출신의 오후랑 시인은 지난 2023년 신춘문예와 송순문학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완도문인협회는 '완도사랑 시낭송회'와 연간지 발간, 문학기행 등을 꾸준히 실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완도문인협회는 '완도사랑 시낭송회'와 연간지 발간, 문학기행 등을 꾸준히 실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박상석 완도문협회장

◆연간지·시화전 통해 창작열 과시

완도에서는 완도문인협회(회장 박상석)가 활발한 활동을 펴고 있다.

현재 70 여 명의 문인들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완도문협은 연간지 발간과 함께 정기적인 월례회 모임을 갖고 꾸준히 활동 중이다. 연간지는 시와 소설, 수필 등 다양한 작품을 게재하고 있다.

매년 개최되던 전국시낭송대회는 지난해부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완도사랑 시낭송회'로 바꿔 행사를 치르고 있다.

또 봄과 가을에는 시화전을 개최해 지역 작가들의 창작열과 역량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열린 전남 정원페스티벌에서 '완도바다와 섬 사랑 시화전'을 개최했고 지난 4월에는 광양 윤동주시정원 등을 탐방하는 문학기행 '봄을 읽다, 시향을 만나다'를 실시하기도 했다.

박상석 회장은 "회원들의 다양한 활동과 함께 지역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낭송회 등이 호응을 얻고 있다"면서 "지역 특성을 고려해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참여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만선기자 geosigi22@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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