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카로운 시선·단단한 감성 바탕
시대와 인간 삶, 공통적 주제 다뤄
나주문학 계승 ‘임제문학상’ 의미

"시인이란 세상에 예민한 촉수를 대고 가장 먼저 반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주 문인들에게는 이러한 시대정신을 놓치지 않고 작품에 반영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김옥희 백호문학관 학예연구사는 나주 문학의 특징에 대해 '모순과 불합리에 안주하지 않는 날카로운 시대 정신'으로 정리했다.
온화한 기후와 너른 평야,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은 문학과 문화예술이 발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임제부터 정우채, 오유권에 이르기까지 나주 문인들은 각자가 살았던 시대와 인간의 삶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공통적으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김 학예사는 "현실을 외면한 뜬구름같은 서정이 아니라, 우리 삶에 기반한 단단한 감성이 생동감 있게 살아있는 것이 나주 문학의 특징이다"며 "나주 문인들에게 영산강은 단순한 작품의 소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과 고뇌가 담겨있는 삶의 현장 그 자체다"고 말했다.
이러한 흐름 시작은 나주문학의 뿌리인 임제로부터 비롯했으며 그를 기리고 있는 백호문학관은 어린이글짓기대회, 찾아가는 청소년 문학교실, 백호시강독회 등을 열며 백호의 문학세계를 전하고 있다. 전시실, 수장고, 체험실, 도서실, 집필실 등을 갖추고 시민과 함께 하는 문학프로그램도 연중 운영 중이다. 특히 매주 토요일 진행되는 '한시 100수 읽기'는 전국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한시 관련 시민강좌로 나주의 높은 문학 수준을 보여준다. 올해는 타오르는강문학관과도 협업해 등단작가와 함께하는 시창작교실, 시낭송회등도 열릴 예정이다.
또 2018년부터는 백호임제문학상을 운영했으며 지난해에는 시대의 모순과 불의에 저항해온 거리의 시인, 송경동 시인이 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 학예사는 "백호문학관이 곧 나주문학관이다. 백호를 시작으로 나주의 문학정신과 전통을 현대에 계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그동안 백호임제문학상이 시상식만 단촐하게 운영했는데 올해부터는 나주문학제를 신설해 문학상 시상식, 문화콘서트 등 시민들이 함께 즐기는 문화축제로 만드려고 한다"고 밝혔다.
끝으로 "장기적으로는 나주문학에 대해 가장 전문적이면서 가장 대중적인 문학관이 되려 한다" 며 "다양한 학술사업과 대중프로그램을 꾸려나가 백호문학관이 나주문학의 거점이자 허브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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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애환 간직한 '영산강' 문학창작 산실로 나주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수도였으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은 수많은 인재와 문인을 키우는 토양이 됐다.예부터 호남에서는 유림의 고장으로 나주·광주·장성·창평을 네 곳을 줄여 '나광장창'으로 불렀다. 나주가 광주보다 앞서 언급된 것만 하더라도 나주가 얼마나 선비가 많고 학문이 깊은 고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소경(작은서울)이라 불린 나주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문화수도였으며,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은 수많은 인재와 문인을 키우는 토양이 됐다.글을 좋아하는 선비들이 많은 곳은 누정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데 영산강을 따라 늘어선 60여개의 누정은 나주에서 수많은 명사들이 활동했음을 알려준다.넓은 평야가 선사하는 개방적인 산수와 온난한 기후 속에서 많은 인물들에 의해 시가 문학이 풍성하게 발달한 곳이 바로 나주인 것이다.◆자부심 높은 문인들의 고장나주 금성 출신인 오한 박성건(1418~1487)은 공조판서와 승정원 도승지를 역임한 박언의 아들로 태어났다. 박성건은 1453년에 진사시에 뽑히고 1472년 55세의 연로한 나이로 문과에 급제했다. 금성교수로 재임하던 63세 때 그의 생도 10명이 생원, 진사과에 급제하는 경사가 생겼는데 이를 축하하기 위해 '금성별곡'을 지었다.조선전기 별곡체 형태의 대표적 작품 중 하나인 '금성별곡'은 인재가 많고 자연이 아름다운 나주의 모습과, 유생들의 면학기풍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당시 나주지역 사대부들의 긍지와 자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의 영향은 후손인 박순우의 '금강별곡', 박이화의 '낭호신사', '만고가' 등에도 이어졌다.나주 곡강면 성지촌에서 진사 최택의 아들로 태어난 금남 최부(1454~1504)는 25세에 성균관에 들어갔다. 29세에 문과에 급제하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등의 편찬에 참여했는데 35세에 부친상을 당해 제주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던 중 흑산도에서 태풍을 만나 중국까지 떠밀려 가는 고난을 겪는다. 명나라를 거쳐 6개월 만에 돌아온 경험을 '표해록'으로 정리했는데 여기에는 중국 연안의 해로, 산천, 기후, 풍속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한문체 기행문의 수작인 표해록은 사료로서 뛰어난 가치를 지닌 문헌으로 평가된다. 최부는 처가인 해남에서도 생활하며 많은 제자들을 길러내 해남 시문학의 싹을 틔우기도 했다.나주 거평면 남산촌에서 태어난 나세찬(1498~1551)은 어려서부터 시쓰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으며 사간원 대사간 등을 역임하면서 송흠, 임억령, 송순, 김인후 등 이름있는 시인들과 교류했다. 다만 기묘사화와 을사사화를 거치는 과정에서 김안로를 비판하다 옥에 갇히는 등 강직한 성품이 도리어 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어머니가 준 새 버선에 감사함을 전한 '신말', 무인적 풍모를 보인 '사후', '영사후' 등 30여수 내외의 시만을 남겼다.나주 백호문학관은 조선시대 나주 문학의 꽃을 피운 백호 임제를 기리고 있다.◆1천편 한시에 담은 시대정신조선시대 나주 문학은 백호 임제(1549~1587)에 이르러 꽃을 피운다. 나주 회진 출신인 임제는 39세의 짧은 생애에도 한시 1천여 편, 소설 3편, 기행문 1편 등 많은 작품을 남겼다.문학적 재능이 워낙 뛰어나 '조선의 천재 시인'으로 불렸는데, 아버지 임진의 무인 기질, 큰아버지 임복의 문인 기질을 동시에 물려받아 호방한 기상과 섬세한 서정이 돋보이는 작품을 썼다.그는 자유분방한 성격, 날카로운 시대정신, 개성 넘치는 글 재주를 동시에 지닌 사람이었다. 스무살에는 '의마부'라는 시를 통해 뜻이 너무 커 세상에 맞지 않는 자신을 '뛰노는 말'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항복은 "자유롭게 문자 밖으로 초탈해 글을 엮고 오색 신기루가 바다 위에 일가를 이루니, 시의 맹주를 정한다면 백호 그 사람이 될 것이다"고 말했고, 허균은 인류 역사를 풍자한 임제의 소설 '수성지'를 보고 "수성지는 인류 문자가 생긴 이래 특별한 작품이다. 수성지가 없었다면 조선의 큰 결함이었을 것이다"고 평했다.임제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라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교류하고 싶은 욕심도 숨기지 않았는데, 그가 평안도사로 부임하는 길에는 황진이의 무덤에 들러 시를 바치는 통에 조정의 거센 비판도 받았다. 가난한 백성의 삶을 관찰하는 시를 쓰는가 하면 당쟁이 심한 시대에도 어느 당파에 속하지 않고 중국을 조선의 주인으로 받드는 태세를 비판하기도 했다. 스승인 대곡 성운이 숨졌을 때는 '대곡선생만사'를 통해 탄식하고, 자신의 딸이 젊은 나이에 죽었을 때는 영산강 배 위에서 제사 지내며 '망녀전사'를 읊조렸다.39세에는 '자만'이란 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되돌아보기도 했다.'강한의 풍류 사십 년 세월, 맑은 이름 당세에 울리고도 남으리라, 이제를 학을 타고 속세를 벗어나니, 선계의 복숭아 열매 새로 익으리라.'어떤 구속에도 굴하지 않던 임제의 시대정신과 작품세계는 이후 나주의 근현대 문학인들에까지 이어졌다.◆시대와 부딪히며 성장한 나주 문학나주출신의 근현대 문학인들은 나주와 호남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을 묘사해 왔다.이창신(1914~1948)은 나주지역의 일제 침략행위와 수탈현장을 고발한 '제방공사'와 현실 극복의지를 담은 '홍수 전후'라는 소설을 통해 침략주의가 노골화하는 현실을 개탄했다.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정신을 강조한 정우채 작가정우채(1914~2001)는 1927년 조선일보 학생 문단에 '단결하자'라는 시를 발표하며 민족 운동을 펼쳤다. 광주지역 학생비밀결사 '성진회' 활동으로 수감 된 상황에서 쓴 '옥중시', 1936년 호남평론에 발표한 '병자년'이라는 시에는 그의 독립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농민의 민중과 애환을 담아낸 오유권 작가오유권(1928~1999)은 근대 이후 국내 소설가 중 가장 작품을 많이 쓴 작가로 유명하다. 무려 270편의 작품을 통해 농민과 민중의 애환을 생생하게 담아냈으며 영산강을 배경으로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하고 무분별한 근대화를 비판했다. 영산포에서 태어난 그는 20세부터 독학으로 문학공부를 했으며 1957년 황순원의 추천을 받아 현대문학에 '두 나그네', '참외'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특히 1962년 발표한 장편소설 '방앗골 혁명'은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이념적 갈등을 겪은 농업인들의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려냈다.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나주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우뚝 섰으나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1981년 뇌줄중으로 쓰러진 이후로도 100여편의 작품을 저술한 왕성한 창작욕이다. 현재 나주 한수제소공원에는 '소설가오유권선생 문학비'가 세워져 있다.지역 최고령 원로작가로 활동 중인 이명한 작가시인이자 소설가인 이명한 작가는 이창신 작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신문과 잡지에 실린 소설을 읽으면 문학에 눈을 뜬 이 작가는 1970년대 문순태, 송기숙, 이계홍, 주길순, 주동후, 한승원 작가들과 '소설문학'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75년 '월간문학' 소설부문 신인상과 '전남일보' 장편소설공모에 '산화'가 잇따라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이 작가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 오며 작품을 통해 시대의 아픔을 그려냈다. 2012년에는 시 100편을 한데 묶은 첫 시집 '새벽, 백두 정상에서'를 펴내 문단의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2022년에는 5권의 '이명한 중단편전집'을 펴내 반세기 동안 견지해 온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을 담은 작품 51편을 모았다. 아흔이 넘은 현재에도 지역최고령 원로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장을 역임하고 백호임제문학상 첫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의사로도 활동하며 다양한 서사시를 쓴쓴 나해철 시인나해철 시인은 나주 영산포에서 태어나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가 당선되면서 등단했다. 1984년 첫시집 '무등에 올라' 이후, '동해일기', '그대를 부르는 순간만 꽃이 되는' 등을 펼쳐냈다. 의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2022년에는 '물방울에서 신시까지 아침 새 빛의 나라'라는 신화 서사시를 창작, 한민족 창세 신화를 비롯해 인류의 시원을 그리고 있다는 평을 받았다. 1980년 오월 광주에서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을 담아 세월호 이후 몇 년간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시를 SNS에 발표했으며 이를 모아 세월호 추모시집 '영원한 죄 영원한 슬픔'을 내기도 했다.영산강을 배경으로 '타오르는 강'을 쓴 문순태 작가는 타오르는강문학관을 중심으로 영산강 문학을 재조명할 예정이다.영산강은 나주 출신의 문학인들뿐만 아니라 외주 출신 작가들에게도 매력적인 소재로 쓰였다. 담양 출신인 문순태 작가는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에서 영산강 지류의 마을에서 펼쳐지는 농민들의 삶을 그렸다.지난해에는 작품 속 주요 배경인 나주 영산포에 '타오르는강문학관'을 열었다. 나주를 문학적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문 작가는 타오르는강문학관을 중심으로 '영산강 문학'을 재조명하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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