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어머니가 "너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네 안에도 우주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이 축제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지난달 선보인 '광주 에이블 아트위크'는 비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와 지속성으로 대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장애 예술을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뜻깊은 전시다. 이 행사를 이끌어온 전자광 광주 장애인예술인 협회장을 만나 예술의 본질과 광주가 열어가는 새로운 문화 지평을 조명해본다.
-'광주에이블아트위크'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장애 예술인들에게 전시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광주에이블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2022년 첫선을 보인 후 올해 3회째를 맞는 예술 축제다. 올해는 '광주에이블아트위크'로 확장돼 220명의 작가 800여점의 작품이 선보이며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장애 예술을 지역사회와 예술생태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 페어는 규모나 열기에 있어서 국제 행사 못지않다. 비결을 말씀해달라.
▲이번 행사가 국제 규모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도 전국 장애 예술인 발굴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부터 문화계와기업인 등 지역사회 리더들의 참여, 50여명의 자원봉사 시민들이 결집해서 일궈낸 공동체적 힘이 행사의 원동력이었다. 장애 예술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아니라 문화적 가치로 확장해 가는 지역사회의 힘이라고 본다.
-올 페어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인상적인 장면이 '조직위원회'다. 사회공헌 분야의 명망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이끈 이묘숙 총감독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능했다. 기업인, 의료계, 복지기관, 문화예술계, 장애인 당사자까지 지역의 명망가들이 모두 참여해 광주의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줬다.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직접 기획과 운영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장애 예술을 지역의 가치로 확산했다.
-말씀하신 대로 지역사회가 함께, 지역축제로 확대해가는 양상이다. 감동적이다.
▲조직위원회의 출범은 행사가 특정 기관의 행사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운영, 홍보, 현장 지원까지 지역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장애 예술이 공동체 문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감동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5·18 정신과 예술, 장애 예술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다.
▲5·18은 억압받고 지워진 존재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장애 예술 역시 오랫동안 비가시화되었던 예술가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 에이블아트페어는 '우리는 예술가다'라는 선언을 통해 5·18의 정신을 예술로 계승하는 일이며,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광주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아시아 에이블 아트 비엔날레'를 꿈꾸신다고요.
▲'아시아 에이블 아트 비엔날레'는 단순히 전시 규모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장애 예술가들이 서로의 감각과 세계를 나누는 새로운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장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신체적 경험이 만나는 이 비엔날레는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광주에서 이 흐름을 시작함으로써 도시의 역사적 정신과 포용의 가치를 다시 세계와 공유할 수 있다. 특히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꼭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장애 예술을 연결하고,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광주에서 출발시켜 가자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연계도 모색하신다고요.
▲ ACC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핵심 기관이지만 장애 예술이라는 영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 예술을 아시아 문화권의 공유 자산으로 확장하기 위해 ACC와의 협력을 구상하고 있다. 전시·연구·교류를 통해 아시아 장애 예술 네트워크를 구축해 보자는 거다.
-일각에서 '장애 예술'이 예술을 구획 짓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한다.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다만 작금의 심각한 불평등과 배제, 혐오의 한국사회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예술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명명으로서 필요하다고 본다. 지워진 존재를 복원하고 감각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일이다.
-작가를 선발하고 작품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장애 예술인들은 아직 가관이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발굴 자체가 어렵다. 복지관·예술단체·SNS 등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작가를 찾아야 했고, '도움'을 내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은 예술가"라는 메시지로 참여를 끌어냈다. 그렇게 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부터 생애 첫 전시에 도전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세계가 한곳에 모일 수 있었다.
"'광주에이블 아트위크'가
'아시아에이블 아트비엔날레'로 성장하길 꿈꾼다.
아시아 장애 예술가들이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을 하는 도시에서
아시아의 장애 예술을 연결하고,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출발시켜 가자는 것이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큰 고비는 예산이다. 장애 예술 분야는 구조적으로 지원이 적어 해마다 영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기업과 지역 리더들의 후원과 자원봉사 시민들의 연대로 예산 부족을 넘어서고 있다. 매번 과정이 힘들지만 결국 행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예산부담에도 전시장소를 김대중 컨벤션센터로 선정한 특별한 배경이 있으시다는데.

▲김대중컨벤션센터는 호남을 대표하는 품격 있는 전시 공간이다. 장애 예술인들에게 당당한 무대를 제공하고 싶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삶이 가진 '약자의 대변'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상징적이다.
-장애인 예술 지원을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 예술동아리를 소개해달라.
▲협회는 미술·공예·노래·퍼포먼스 등 다양한 동아리를 운영하며 200여 명의 장애 예술인이 참여하고 있다. 발달·지체·시각·청각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 예술인이 자신의 감각과 표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팀은 비장애 예술가와 협업해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AI 관련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신다는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장애인이 기술 격차로 또다시 소외될 위험이 크다. 자영업 기반이 무너지는 시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자립은 물론 존립 자체가 위험하여질 우려가 크다. 저부터 AI를 공부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활동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신 데 간략히 소개해달라.
▲다양한 생업과 지역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구 사회보장협의체, 풍암동 주민자치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복지·돌봄·고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고, 장애 예술과 교육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와 지원활동은 일상으로 해오고 있다.
-예술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곧장 그렸으나 어머님이 아픈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그림 곁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셨다. 장애인 예술을 지원하면서 오랜 꿈을 살리고 있다. 지금은 작품활동보다 장애 예술가 지원이 과업이다.
-우리 사회 장애 예술에 대해 아쉬움이 크실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관련 지원 제도가 전무하다시피하고 유통 구조도 사실상 없다. 창작은 활발하지만 전시·판매할 공간이나 시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장애 예술의 교육·전시·유통을 통합 지원하는 상설기관이 절실하다. 장애인 스포츠가 육체에 대한 지원이라면 장애인 예술은 영혼에 대한 지원이다. 서구 선진국처럼 국가의 품격에 맞게 정책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올 행사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중증 뇌 병변 장애가 있는 청년과 어머니가 작품 앞에서 나눈 대화였다. 한 어머니가 "너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네 안에도 우주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이 축제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전자광 회장은
전자광 광주장애예술인협회장은 '광주에이블아트위크'의 대표로, 광주 장애예술운동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은 전 회장은 후진 대한민국의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온몸으로 맞부딪히며 엄청난 집중력과 승부욕으로 젊은 시절 군산을 무대로 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장애를 삶을 밀어 올린 힘으로 받아들였다. 청년기에는 빼어난 사업 감각으로 당구장·금은방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부침을 달리하면서 자신을 단련했다. 25년 전 광주 서구 풍암동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활발한 사업을 펼치는 한편 주민자치 활동, 사회보장협의체 등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약자를 위한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사업을 하면서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오고 있다.
장애인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70~1980년대, 후진 대한민국에서 그는 동료들과 트럭에 올라타 장애인 인권 옹호를 주장하고, 일터에서 장애인 권익을 챙겼다.
장애예술과의 인연은 5~6년 전 광주장애인미술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연간 예산이 800만 원에 불과한 열악한 현실에 자비로 사무실을 마련하고, 교육과 전시 발굴 시스템을 정비했다. 발달장애 예술 교육을 사비로 운영하는 한편 장애·비장애 협업 공연팀을 육성하는 등 다양한 장애 예술 동아리를 운영해 지역 장애인 예술 생태계 육성을 모색해오고 있다.
2022년 광주에이블아트페어를 창설해 비수도권 최고 규모로 이끌고 있다.
아시아 장애예술비엔날레(아시아에이블아트비엔날레), 광주장애인문화예술진흥원 설립, ACC와의 아시아 예술 교류 구축 등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각계 요로에 장애인 예술 지원 확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의 생애는 한 개인의 고난이나 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약자의 존엄을 예술 영역에서 구현하려는 실천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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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보다 예술이, 구호보다 행위가 역사를 잇는다"
진모영 감독은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온도를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예술은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는 일"이라 강조한다. 대담은 본사 커뮤니케이션 룸에서 진행됐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주필이 만난 사람]"연설보다 예술이, 구호보다 행위가 역사를 잇는다"'님아 그 강을건너지 마오' 진모영 감독.케이팝 데몬 헌터스 열풍 속에 한국이 세계인의 일상으로 성큼 들어서고 있다. 세계 시민들은 영화뿐 아니라 영화의 무대가 되는 한국, 한국 문화에 열광을 아끼지 않는다. K-영화의 한 중심에는 임권택부터 대한민국 다큐의 신기원을 이룬 진모영까지 남도의 영화인들이 자리하고 있다.진모영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 남도의 문화적 DNA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세계가 한국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복합적인 인간성 때문이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과 치유의 경험을 모두 가진 나라다. 한국인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 연민과 공동체적 감각을 가장 깊이 간직한 존재다. 한국영화 열풍은 그 이중성과 복합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이며, 바로 그 점이 세계가 공감하는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케이팝 데몬 헌터스 파동이 엄청나다. 세계가 이토록 한국 영화에 열광하다니 놀랍다.▲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의 성공은 단순한 콘텐츠 산업의 성과가 아니라, 한국의 위상이 어디까지 확장됐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케데헌의 성공은 K-콘텐츠의 확장이라기보다, 한국이 세계 문화의 변방이 아닌 중심에서 새로운 인간의 서사를 제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세계가 한국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기술이나 자본의 힘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품고 있는 복합적인 인간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과 치유의 경험을 모두 가진 나라다. 이 모순적이고도 역동적인 서사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한국인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가장 냉혹한 현실을 살면서도, 동시에 인간적 연민과 공동체적 감각을 가장 깊이 간직한 존재인 것이다. 한국영화 열풍은 그 이중성과 복합성을 예술로 승화시킨 결과이며, 바로 그 점이 세계가 공감하는 지점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가장 인류 보편적이라고 생각한다.-우리나라가 가장 보편적이다라는 말이 언뜻 이해가 안 간다.▲우리가 세계 어느 사회보다 인간의 복합적인 조건을 온전히 담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국은 산업화와 민주화, 분단과 세계화, 공동체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극단의 경험을 한 세대 안에서 모두 겪은 나라다. 그 안에는 전근대와 현대, 서구와 아시아, 자본주의의 잔혹함과 인간적 연민이 공존한다. 그렇게 한국 사회는 세계의 축소판이자 실험실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세계에 통하는 이유는 특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보편적인 삶의 긴장을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영화가 세계의 공감을 얻는 것도, 바로 그 현실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감정의 깊이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한국영화 성장을 위해 '쿼터' 운동을 하던 게 얼마 전 같은데 변화가 놀랍다.▲한국영화의 성장은 제도보다 시대의 열망이 만든 결과다. 스크린쿼터 운동은 문화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저항이었다. 당시 창작자들은 자유를 요구했고, 그 자유가 오늘의 다양성과 품격으로 이어졌다. 검열이 사라지고 표현의 영역이 확장되자 영화는 산업을 넘어 사회의 언어가 됐다. 한국영화의 발전은 민주주의의 성숙과 궤를 같이했고, 그 역동성이 지금의 세계적 신뢰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최근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이 다시 주목되는 것 같다.▲산업의 재편은 위기이자 창작의 기회다. 지금의 혼란은 예술이 다시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관객의 취향이 다변화하고 OTT 등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영화는 흥행보다 관계의 예술로 변화하고 있다. 예술성과 대중성의 균형은 자본이 아니라 진정성의 문제다. 관객이 신뢰할 수 있는 작품, 인간의 감정과 시대의 질문이 함께 담긴 영화가 결국 가장 대중적인 예술로 남는다는 점에서, 지금의 변화는 필연적 진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워낭소리'가 준 신선한 충격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국 다큐는 '워낭소리'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 같다.▲'워낭소리'는 한국 다큐멘터리의 첫 전성기를 상징하는 작품이다. 방송 밖에서 제작된 독립 다큐가 극장에서 관객과 만난 최초의 사례이자, 대중적 성공을 보여줬다. 다큐가 사회운동의 언어를 넘어 예술의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다. 워낭소리'는 사회파 다큐 세대가 열어놓은 윤리적 기반 위에서 새로운 미학의 문을 연 작품이었다.-사회파 다큐는 우리 문화사에 중요한 축이다.▲사회파 다큐멘터리는 사회적 윤리를 예술로 번역한 장르다. 1980년대 '파업전야'를 비롯한 사회파 작품들은 억압된 시대에 인간의 권리와 정의를 외치는 언어였고, 그 연장선에서 1990~2000년대 사회파 다큐 감독들이 사회를 기록했다. 이들은 고통을 감내하며 예술을 사회운동의 한 형태로 실천했다. 다큐멘터리로 돈을 벌거나 명성을 얻는 것은 배신처럼 여길 만큼, 진심과 헌신의 영역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있었기에 이후 세대가 인간의 존엄과 일상의 품위를 다루는 서정적 다큐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본다.-'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어떻게 제작됐나.▲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충격과 자신감을 줬다. 당시까지 외주 제작사들은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들어도 그 작품은 방송국 소유였다. 소위 독립피디들은 방송국 소모품이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길로 뛰쳐나와 '작품' 제작에 돌입했다. 당시 한국 다큐는 해외 피칭(Pitching. 투자 유치, 선판매 등을 목적으로 제작사, 투자사 등에게 하는 일종의 투자 설명회)과 국제영화제를 통해 제작비를 확보해야 하는 열악했던 상황이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준비하면서 해외 펀딩을 계획하고, 세계무대를 겨냥했다. 덴마크 공영방송 DR TV의 제작 지원으로 작업을 추진했다.진모영 감독은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온도를 기록해온 다큐멘터리 분야 독보적 존재로, "예술은 인간의 존엄을 복원하는 일"이라 강조한다. 대담은 본사 커뮤니케이션 룸에서 진행됐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국내 제작지원은 어땠나.▲국제 피칭과 해외 펀드가 중심인 상황에서 국내 영화제들의 참여가 이어졌다. 이후 방송콘텐츠진흥재단(BCPF),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명그룹 등 국내 주요 영화제와 기관, 투자사들이 함께 했다. 핵심은 창작자들의 네트워크와 실험정신이다. 한국 다큐의 성장은 국가보다 창작자들의 연대가 만든 결과다.-광주 영화산업 지원현황은 어떤가.▲광주의 영화지원 체계는 여전히 구조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원의 초점이 창작 생태계보다는 단기적 행사와 행정 성과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문제다. 특히 민선 8기 들어 영화산업의 중추가 될 '광주영화위원회'가 출범을 앞두고 돌연 폐기됐다. 가장 뼈아픈 퇴행이다. 수년간 지역 영화인과 전문가들이 논의해 온 제도적 기반을 행정이 정치적 이유로 없애버린 것은 창작 생태계에 대한 불신이자, 문화자치의 의지 부재다. 영화위원회는 단순한 조직이 아니라, 광주가 문화산업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보여주기식 지원과 단기적 홍보 사업에서 벗어나 장기적 제작 지원·인력 양성·배급 시스템 등 실질적 생태계 조성이 필요하다는.-'님아∼'는 480만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다큐의 신화로 꼽힌다. 그 압도적인 공감 어디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시는지.▲공감의 영역은 층위가 다양해 단순하게 말하기 쉽지 않다. 처음 백만을 넘고 400만을 넘어 480만에 이르는데 한 달 반 만에 이뤄졌다. 사실 감이 오지 않았다. 놀라운 마음으로 어디까지 가나 지켜보는 심정이었다.-많은 예술 영역이 그렇지만 영화 부문도 지역 출신이 두드러진다. 임권택, 김한민, 이충렬 등등,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왔다.▲남도는 한국 예술정신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이다. 현실의 어둠을 응시하면서도 인간의 품격과 감정을 놓지 않는다. 임권택 감독의 작품이 민족의 서사를 복원했다면, 김한민 감독은 역사적 비극을 대중의 서사로 끌어올렸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는 일상을 품위와 예술로 바꾸었고, 나 역시 인간의 존엄과 사랑의 온도를 기록하려 한다. 남도 사람들에게는 타인의 고통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감정의 깊이가 있다. 그것이 영화 속에서 공감과 품위의 미학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남도의 감각, 문화적 DNA가 있는 것 같다.▲전라도 사람들은 자연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타자에 대한 예의가 몸에 배어 있다. 그건 단순히 착하다는 게 아니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다. 무언가를 함부로 대하지 않으려는, 그런 마음. 그게 이 지역의 문화적 DNA라고 생각한다. 또 우리 지역에는 독특한 정의감이 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그런데 그 정의감이 공격적으로 폭발하기보다는 예술적인 방식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 그래서 음악이든 미술이든 영화든, 전라도 사람들한테서 나오는 예술은 늘 사람 냄새가 난다. 그게 남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타자에 대한 예의,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자연과 함께 살아온 경험이 이 지역의 예술을 만들어온 거다."'새벽광장'은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라고 한 윤상원 열사의 유훈을 잇는, 1980년 5월의 마지막 새벽을 오늘의 예술로 되살리는 시민 예술 프로젝트다. 그날의 새벽을 '승리의 시간'으로 재해석하자는 취지다. '그날 나갈 수 없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 새벽에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새벽광장은 기억을 애도의 공간에서 공동체적 예술로 확장하려는 시도다."- 말씀하신 데로 '명랑'에서 보듯 저 임진왜란에서 구한말 의병, 5·18에 이르기까지 늘 시대와 함께했다.▲남도에는 여전히 서로를 품는 감정의 질서가 남아 있다. 그것은 이념이 아니라 생활의 지혜이자 감응의 문화다. 타인의 아픔을 제 일처럼 여기는 공감,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겸허, 그리고 슬픔을 존엄으로 바꾸는 힘이 남도의 정신이 아닌가 싶다. 이 감각은 단절과 냉소의 시대에 인간 사이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문화적 해독제일 수 있다고 본다. 남도는 과거의 저항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치유하는 정서적 자산으로 여전히 살아 있다.-귀향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나.▲강원도로 경상도로 촬영을 다니면서 어느 날 문득, 깨달음처럼 질문이 제기됐다. '가장 원형적이고 풍부한 고향(그는 전남 해남서 나고 자라, 고교와 대학을 광주에서 나왔다)을 두고 뭐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다. 바로 짐을 쌌다. 어쩌면 조심스러웠고, 말할 수 없는 무게감에 선뜻 다가오지 못했던 게 아닌가 생각한다.-'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의 공동대표를 맡고 계시다.▲놀이패 '신명'이 5·27일, "우리는 오늘 여기서 패배하지만 내일의 역사는 우리를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라고 한 윤상원 열사의 유훈을 잇는 새벽 '제(祭)를 지내오고 있었다. 감동적이었지만 승리를 기억하기에는 제가 너무 단출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예술인들과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을 만들어 이태째 진행했다. '새벽광장'은 1980년 5월의 마지막 새벽을 오늘의 예술로 되살리려는 시민 예술 프로젝트다. 광주항쟁이 패배의 기억으로만 남지 않도록, 그날의 새벽을 '승리의 시간'으로 재해석하자는 취지다. '우리는 패배한 도시가 아니라, 끝까지 버틴 승리한 시민이다"는 정신을 담아 명칭도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으로 명명했다. 5월 26일 자정부터 27일 새벽까지 24시간 동안 광장 곳곳에서 연극, 마당극, 음악, 캘리그래피, 낭독, 시민참여 공연이 이어진다.연설보다 예술이, 구호보다 행위가 역사를 잇는다. '그날 나갈 수 없었던 사람들도 이제는 그 새벽에 함께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새벽광장은 기억을 애도의 공간에서 공동체적 예술로 확장하려는 시도다.-차기작이 궁금하다.▲준비 중인 작업은 5·18의 기억을 오늘의 언어로 새롭게 해석하는 작품이다. 이름 없는 시민과 생존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해 '기억의 윤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5·18을 오늘의 언어로 해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름 없는 시민과 생존자, 유가족의 목소리를 기록해 '기억의 윤리'를 탐구하는 작업이다. 이를테면 1980년 당시 5월27일 전남도청에 끝까지 남았던 시민군 중 김동수 열사의 경우 대중에게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현대사의 아픔을 모두 안고 있다. 그를 기리기 위해 김동수 열사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를 마고 있다. 그의 부친은 6·25 때 조부모가 국군 양민학살로 희생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평생 심신의 상처에 시달리다 아들까지 1980년 앗겼다. 열사의 고향인 장성 서삼면 부친의 쌀 창고를 기념 갤러리로 조성하는 등 그를 기리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공간은 단순한 추모관이 아니라 '광주의 마지막 새벽을 지킨 이들의 기록을 예술로 복원하는 장소'로 계획되고 있다. 그의 가족사와 도청 최후 항전의 이야기를 통해 '패배가 아닌 인간 존엄의 기록'을 복원하고자 한다.진모영은예술로 인간을 기록하다 …다큐의 윤리에서 광주의 새벽까지진모영 감독은 인간의 존엄과 관계의 품격을 기록해온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표적 영화인이다. 전남 해남 태생으로 전남대 법학과 재학 시절 '시대의 부름'에 기꺼이 투신했다. 방송사와 독립제작사에서 PD·카메라맨으로 활동하며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 이충렬 감독의 '워낭소리' 영향으로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대표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 는 76년을 함께한 노부부의 사랑과 이별을 담은 작품으로, 국내 다큐멘터리 역사를 갈아치웠다.진모영 감독이 조덕진 주필과 대담을 하고 있다.'님아∼'는 덴마크 공영방송 DR TV가 제작 지원, 프랑스 캣앤독스(CAT&Docs)가 해외 배급으로 국제 신뢰를 확보했다. 이후 전주국제영화제,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EIDF) 등 국내 주요 영화제들이 후반 작업비와 마케팅을 지원했다. 이같은 제작 과정으로 '님아∼'는 한국 다큐멘터리가 국제공동제작으로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 사례가 됐다. 또 제21회 로스앤젤레스영화제 다큐멘터리부문 대상, 2015 밀레니엄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등 국내외 영화제 수상 기록을 달성하고, 20여 개 영화제 초청, 480만 관객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21년에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 시리즈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가 190개국에 방영됐다그의 작업은 늘 "예술은 싸움이 아니라 품격의 언어"라는 철학 위에 있다. 최근에는 광주로 돌아와 5·18의 기억을 예술로 되살리는 시민 프로젝트 '5·27 승리의 날 새벽광장' 의 공동대표를 맡아, 예술과 공동체가 함께 기억을 치유하는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영화와 행보는 다큐멘터리를 넘어, 예술이 인간의 품격을 지키는 언어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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