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존재를 다시 세우는 일··· 장애 예술, 존엄을 피워내다"

입력 2025.11.30. 19:10 조덕진 기자
[주필이 만난 사람] 전자광 광주장애예술인협회장
전자광 광주장애인예 전자광 광주장애인예술인협회장이 '광주에이블 아트위트'의 의미를 설명하며, 지역 장애예술인 지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한 어머니가 "너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네 안에도 우주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이 축제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지난달 선보인 '광주 에이블 아트위크'는 비수도권에서 가장 큰 규모와 지속성으로 대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장애 예술을 지역문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린 뜻깊은 전시다. 이 행사를 이끌어온 전자광 광주 장애인예술인 협회장을 만나 예술의 본질과 광주가 열어가는 새로운 문화 지평을 조명해본다.

-'광주에이블아트위크'에 대해 설명해 달라.

▲장애 예술인들에게 전시 무대를 제공하기 위해 광주에이블아트페어라는 이름으로 2022년 첫선을 보인 후 올해 3회째를 맞는 예술 축제다. 올해는 '광주에이블아트위크'로 확장돼 220명의 작가 800여점의 작품이 선보이며 국내 최대 규모로 성장했다. 장애 예술을 지역사회와 예술생태계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는 기획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올 페어는 규모나 열기에 있어서 국제 행사 못지않다. 비결을 말씀해달라.

▲이번 행사가 국제 규모에 버금가는 에너지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턱없이 부족한 예산에도 전국 장애 예술인 발굴을 발굴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생부터 문화계와기업인 등 지역사회 리더들의 참여, 50여명의 자원봉사 시민들이 결집해서 일궈낸 공동체적 힘이 행사의 원동력이었다. 장애 예술을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아니라 문화적 가치로 확장해 가는 지역사회의 힘이라고 본다.

-올 페어의 가장 큰 특징이자 인상적인 장면이 '조직위원회'다. 사회공헌 분야의 명망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직위원회는 이번 행사를 이끈 이묘숙 총감독의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능했다. 기업인, 의료계, 복지기관, 문화예술계, 장애인 당사자까지 지역의 명망가들이 모두 참여해 광주의 사회적 연대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줬다. 단순한 후원이 아니라 직접 기획과 운영의 일원으로 참여하며 장애 예술을 지역의 가치로 확산했다.

-말씀하신 대로 지역사회가 함께, 지역축제로 확대해가는 양상이다. 감동적이다.

▲조직위원회의 출범은 행사가 특정 기관의 행사가 아니라 지역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축제로 확장되는 계기가 되었다. 운영, 홍보, 현장 지원까지 지역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었고 장애 예술이 공동체 문화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감동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광주의 포용성을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5·18 정신과 예술, 장애 예술에 대해 강조를 많이 하셨다.

▲5·18은 억압받고 지워진 존재들의 존엄을 회복하는 운동이다. 장애 예술 역시 오랫동안 비가시화되었던 예술가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복원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맥이 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광주에서 에이블아트페어는 '우리는 예술가다'라는 선언을 통해 5·18의 정신을 예술로 계승하는 일이며, 인간의 존엄을 중심에 둔 광주의 정체성과도 연결된다.

-'아시아 에이블 아트 비엔날레'를 꿈꾸신다고요.

▲'아시아 에이블 아트 비엔날레'는 단순히 전시 규모를 키우는 게 아니라 아시아 각국의 장애 예술가들이 서로의 감각과 세계를 나누는 새로운 문화공동체를 만드는 장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신체적 경험이 만나는 이 비엔날레는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광주에서 이 흐름을 시작함으로써 도시의 역사적 정신과 포용의 가치를 다시 세계와 공유할 수 있다. 특히 광주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도시라는 점에서 꼭 추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시아 여러 나라의 장애 예술을 연결하고,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광주에서 출발시켜 가자는 것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과 연계도 모색하신다고요.

▲ ACC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의 핵심 기관이지만 장애 예술이라는 영역은 아직 본격적으로 다뤄지지 않고 있다. 장애 예술을 아시아 문화권의 공유 자산으로 확장하기 위해 ACC와의 협력을 구상하고 있다. 전시·연구·교류를 통해 아시아 장애 예술 네트워크를 구축해 보자는 거다.

-일각에서 '장애 예술'이 예술을 구획 짓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한다.

▲'장애 예술'이라는 용어는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다만 작금의 심각한 불평등과 배제, 혐오의 한국사회에서 존재를 드러내고 예술적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명명으로서 필요하다고 본다. 지워진 존재를 복원하고 감각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일이다.

-작가를 선발하고 작품을 모으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장애 예술인들은 아직 가관이나 시스템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아 발굴 자체가 어렵다. 복지관·예술단체·SNS 등 가능한 모든 경로를 통해 작가를 찾아야 했고, '도움'을 내세우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은 예술가"라는 메시지로 참여를 끌어냈다. 그렇게 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작가부터 생애 첫 전시에 도전하는 이들까지 다양한 세계가 한곳에 모일 수 있었다.

"'광주에이블 아트위크'가

'아시아에이블 아트비엔날레'로 성장하길 꿈꾼다.

아시아 장애 예술가들이 예술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차별과 배제를 넘어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아시아 전체로 확장하는 거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을 하는 도시에서

아시아의 장애 예술을 연결하고,

'다름을 축하하는 문화'를 출발시켜 가자는 것이다."

-준비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가장 큰 고비는 예산이다. 장애 예술 분야는 구조적으로 지원이 적어 해마다 영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기업과 지역 리더들의 후원과 자원봉사 시민들의 연대로 예산 부족을 넘어서고 있다. 매번 과정이 힘들지만 결국 행사의 가장 큰 자산이다.

-예산부담에도 전시장소를 김대중 컨벤션센터로 선정한 특별한 배경이 있으시다는데.

전자광 광주장애인예술인협회 대표가 서구 동천동 사)광주장애인예술인협회에서 취재진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양광삼기자 ygs02@mdilbo.com

▲김대중컨벤션센터는 호남을 대표하는 품격 있는 전시 공간이다. 장애 예술인들에게 당당한 무대를 제공하고 싶었고, 김대중 대통령의 삶이 가진 '약자의 대변'이라는 사실이 무엇보다 상징적이다.

-장애인 예술 지원을 활발히 하고 계시는데, 예술동아리를 소개해달라.

▲협회는 미술·공예·노래·퍼포먼스 등 다양한 동아리를 운영하며 200여 명의 장애 예술인이 참여하고 있다. 발달·지체·시각·청각 등 다양한 유형의 장애 예술인이 자신의 감각과 표현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부 팀은 비장애 예술가와 협업해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AI 관련 교육에도 심혈을 기울이신다는데.

▲AI 시대가 열리면서 장애인이 기술 격차로 또다시 소외될 위험이 크다. 자영업 기반이 무너지는 시대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 못하면 자립은 물론 존립 자체가 위험하여질 우려가 크다. 저부터 AI를 공부하고, 장애인들을 위한 교육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사회활동도 열정적으로 하고 계신 데 간략히 소개해달라.

▲다양한 생업과 지역사회 활동을 해오고 있다.

서구 사회보장협의체, 풍암동 주민자치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복지·돌봄·고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앞장섰고, 장애 예술과 교육 사업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장애인과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봉사와 지원활동은 일상으로 해오고 있다.

-예술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인가.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곧장 그렸으나 어머님이 아픈 아들의 장래를 걱정하며 그림 곁에는 가지도 못하게 하셨다. 장애인 예술을 지원하면서 오랜 꿈을 살리고 있다. 지금은 작품활동보다 장애 예술가 지원이 과업이다.

-우리 사회 장애 예술에 대해 아쉬움이 크실 것 같다.

▲가장 큰 문제는 관련 지원 제도가 전무하다시피하고 유통 구조도 사실상 없다. 창작은 활발하지만 전시·판매할 공간이나 시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장애 예술의 교육·전시·유통을 통합 지원하는 상설기관이 절실하다. 장애인 스포츠가 육체에 대한 지원이라면 장애인 예술은 영혼에 대한 지원이다. 서구 선진국처럼 국가의 품격에 맞게 정책적 변화가 뒤따라야 한다.

-올 행사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중증 뇌 병변 장애가 있는 청년과 어머니가 작품 앞에서 나눈 대화였다. 한 어머니가 "너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네 안에도 우주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 장면을 보며 이 축제가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삶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희망의 공간'임을 깨달았다.


전자광 회장은

전자광 광주장애예술인협회장은 '광주에이블아트위크'의 대표로, 광주 장애예술운동을 선두에서 이끌고 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장애를 얻은 전 회장은 후진 대한민국의 장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온몸으로 맞부딪히며 엄청난 집중력과 승부욕으로 젊은 시절 군산을 무대로 사업가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장애를 삶을 밀어 올린 힘으로 받아들였다. 청년기에는 빼어난 사업 감각으로 당구장·금은방 등을 성공적으로 운영하며 부침을 달리하면서 자신을 단련했다. 25년 전 광주 서구 풍암동으로 터전을 옮긴 그는 활발한 사업을 펼치는 한편 주민자치 활동, 사회보장협의체 등 지역사회 활동에 적극 참여하며 '약자를 위한 활동가'로서의 면모를 다졌다. 사업을 하면서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한 지원 활동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오고 있다.

장애인 인권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하던 1970~1980년대, 후진 대한민국에서 그는 동료들과 트럭에 올라타 장애인 인권 옹호를 주장하고, 일터에서 장애인 권익을 챙겼다.

장애예술과의 인연은 5~6년 전 광주장애인미술협회 회장을 맡으면서 시작됐다. 당시 연간 예산이 800만 원에 불과한 열악한 현실에 자비로 사무실을 마련하고, 교육과 전시 발굴 시스템을 정비했다. 발달장애 예술 교육을 사비로 운영하는 한편 장애·비장애 협업 공연팀을 육성하는 등 다양한 장애 예술 동아리를 운영해 지역 장애인 예술 생태계 육성을 모색해오고 있다.

2022년 광주에이블아트페어를 창설해 비수도권 최고 규모로 이끌고 있다.

아시아 장애예술비엔날레(아시아에이블아트비엔날레), 광주장애인문화예술진흥원 설립, ACC와의 아시아 예술 교류 구축 등을 꿈꾸고 있다. 이를 위해 각계 요로에 장애인 예술 지원 확대를 호소하고 있다.

그의 생애는 한 개인의 고난이나 성공의 서사가 아니라, 약자의 존엄을 예술 영역에서 구현하려는 실천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조덕진기자 mdeung@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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