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라운지] 광주·전남 통합, 민주주의 안전장치부터

@김영삼 광주전남김대중재단 사무처장 입력 2026.03.03. 18:36
김영삼 광주전남김대중재단 사무처장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는 ‘행정 효율’과 ‘광역 경쟁력’이라는 말로 속도전으로 전개되고 있다. 협력과 연대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러나 통합은 단순한 조직개편이 아니다. 권력의 크기와 경로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설계가 잘못되면 효율을 얻는 대신 민주주의를 잃을 수 있다. 지금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찬반이 아니다. 통합이 지역 민주주의를 두텁게 만드는가, 아니면 더 얇게 만드는가.

광주·전남 정치의 오래된 병폐는 경쟁의 실종이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사실상 당선을 보장하는 구조가 굳어지면서, 선거는 정책 대결의 장이 아니라 내부 서열 경쟁의 종착지로 변했다. 2022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광주·전남 지역의 무투표 당선자는 63명에 달했다. 광주에서는 광산구청장을 포함해 13명, 전남에서는 기초단체장 2명과 광역의원 26명, 다수의 기초의원이 단독 출마로 ‘경쟁 없이’ 당선됐다. 투표가 사라지면 유권자의 선택도 사라진다. 비교·검증의 기회가 줄어들수록 공약은 가벼워지고 책임은 흐려진다. ‘깜깜이 선거’가 반복될수록 시민은 정치에서 멀어지고, 정치는 시민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경쟁 없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오만해지고 무능해진다. 폭우와 재난으로 시민이 고통받는 와중에도 시민 안전은 뒷전으로 밀린 채, 광주시의회가 특정 자리를 둘러싸고 ‘감투싸움’으로 비쳐 논란을 반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행정도 다르지 않다. 민생회복지원금 선불카드를 소득 수준에 따라 다른 색으로 지급해 시민에게 낙인과 모욕감을 안겼다는 비판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권력이 시민의 존엄과 눈높이는 놓치고, 시민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인권 감수성을 잃었음을 드러낸 사건이다. ‘어차피 지지해 줄 것”이라는 확신, 내부 경쟁이 사라진 무사안일이 쌓여 만든 결과다.

정치가 경쟁을 잃는 순간 정책 실험도 멈춘다. 지역경제의 판을 바꿀 산업전략, 인구감소에 대응하는 미래 정책, 교육·돌봄 혁신 같은 생활전략은 뒤로 밀리고, 표가 되는 단기 사업과 인맥 중심의 인사가 앞서기 쉽다. 이런 토대 위에서 광주·전남 통합이 추진될 경우, 가장 큰 위험은 ‘초집중 권력’의 탄생이다. 통합이 만들어낼 통합단체장(가칭 통합특별시장)은 행정·재정·인사·정책 결정에서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다. 예산 편성의 우선순위, 대형 개발사업의 방향, 공공기관 이전과 배치, 핵심 보직 인사까지 지역의 주요 사안이 단일 권력의 판단에 좌우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효율은 높아질지 몰라도, 견제 없는 통합은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조건이다. 민주주의는 숙의·검증·견제·균형으로 유지된다. 권력이 한곳으로 몰리는 순간, 시민이 개입할 통로는 가장 먼저 좁아진다.

선거의 공정한 조건도 우려된다. 통합단체장은 막대한 행정 자원과 정책 이슈, 언론 노출을 구조적으로 독점할 가능성이 크다. 경쟁 후보가 동등한 가시성을 확보하기 어려워지면 선거는 경쟁이 아니라 ‘확인 절차’로 변질될 수 있다. 통합정부의 수장이 사실상 지역 정치의 ‘단일 브랜드’가 되는 순간, 지역은 비전 경쟁이 아니라 충성 경쟁으로 기울기 쉽다. 통합이 ‘독점의 광역화’가 될 수 있다는 경고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재정과 개발의 방향도 중요하다. 광역 통합은 ‘큰 사업’을 부른다. 그러나 큰 사업이 늘 좋은 사업은 아니다. 초집중 권력은 토목·개발 중심의 성과 경쟁을 유혹한다. 누가 더 빨리, 더 크게, 더 눈에 띄게 하느냐가 평가 기준이 되면, 삶의 기반을 지키는 복지·돌봄·주거·교통의 미세한 개선은 뒷전으로 밀린다. 통합이 진짜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은 ‘도시의 확장’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의 생활 개선’이다. 특히 농촌과 소멸위험 지역의 목소리가 통합의 거대한 의제에 묻히지 않도록, 권력과 재정 배분의 원칙을 제도에 새겨야 한다.

절차 또한 민주적이어야 한다. 생활권과 정체성, 재정 배분을 뒤흔드는 사안에서 주민투표와 공론화가 빠진다면 통합은 출범과 동시에 정당성을 잃는다. 시민의 동의 없이 진행되는 ‘속도전’은 단기적으로 추진력을 보장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불신과 갈등의 비용을 폭발시킨다. 통합의 성패는 법조문에만 달려 있지 않다. 시민이 “내가 참여했고, 내가 결정했다”고 말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를 말하면서 정작 주민 동의를 건너뛰는 통합이라면, 그 자체로 자기모순이다. 따라서 통합의 전제는 권한 강화가 아니라 통제 장치 강화여야 한다. 주민투표·주민발안·주민소환 제도의 문턱을 낮추고, 감사·조사 기능을 실질화하며, 정보공개를 확대해 ‘권력의 빛’을 더 밝게 비춰야 한다. 참여예산제를 선언이 아니라 제도로 만들고, 상설 숙의 기구(시민의회)를 설치해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이 상시로 들어올 길을 열어야 한다. 통합정부가 커질수록 감시와 참여의 문은 더 넓어져야 한다. 나아가 주요 보직 인사에 대한 인사청문·검증 절차, 대형 사업의 사전 타당성·환경·인권 영향평가, 이해충돌 통제 장치까지 한 묶음으로 강화해야 한다. 권력을 믿을 게 아니라, 권력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은 더 직접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 첫째, 광역단체장과 교육감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과반 정당성과 경쟁을 회복해야 한다. 둘째, 기초의회 3~5인 선거구제를 확대해 소수정당과 다양한 인물이 진입할 통로를 넓혀야 한다. 셋째, 광역·기초의회에서 비례대표 비중을 과감히 확대(예: 연동형 비례 비율 30% 수준)해 대표성 왜곡을 줄여야 한다. 넷째, 특정 성이 60%를 넘지 않도록 공천 기준을 강화해 정치의 다양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다섯째, 통합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에서는 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이 배분되도록 불비례를 보정하는 장치를 특례로 도입해 대표성의 균형을 보완해야 한다. 동시에 세금으로 집행되는 행정 홍보와 예산 집행이 현직자에게 선거상 우위로 작동하지 않도록, ‘행정과 선거의 경계’를 엄격히 하는 규칙도 강화해야 한다.

통합은 목적이 아니다. 시민의 삶을 지키는 수단이다. 민주주의가 약한 곳에서 권력만 키우면, 그 권력은 시민을 위해 쓰이기보다 시민 위에 군림하기 쉽다. “통합이냐 반통합이냐”가 아니라 “통합이 민주주의를 살리느냐, 삼키느냐”가 핵심이다. 광주·전남이 진짜 미래를 말하려면, 가장 먼저 ‘권력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부터 답해야 한다. 당장은 어렵더라도 반드시 실행하겠다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먼저 세워야 한다. 민주주의 없는 통합은 ‘통합’이 아니라 ‘통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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