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이 직접 나서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시대다. 얼마 전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국민보고회에서 정부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인재 확보와 연구 생태계 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인공지능(AI)과 초거대 기술 경쟁 속에서, 대한민국의 다음 성장을 이끌 동력이 결국 과학기술인에게 달려 있다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 아이들은 지금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2023년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를 보면, 초·중·고 학생들이 가장 많이 희망하는 직업은 초등학생의 경우 운동선수, 의사, 교사, 크리에이터(유튜버), 중학생은 교사, 의사, 운동선수, 고등학생은 교사, 간호사, 생명과학자·연구원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등학생에서 '생명과학자·연구원'이 3위로 크게 상승한 점은 고무적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과학기술인은 여전히 소수의 선택에 머물러 있다. 동시에 컴퓨터공학자 등 신산업 분야 직업을 희망하는 비율이 점차 늘고 있어 디지털 전환이 아이들의 진로 의식에도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금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80~1990년대만 해도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1위는 단연 '과학자'였다. 국가가 과학입국을 외치고, TV와 책 속에서 흰 가운을 입은 과학자가 영웅처럼 그려지던 시절이다. 공부를 좀 한다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이공계로 몰려갔고, 주요 대학의 이공계 학과는 의대보다 더 높은 커트라인을 기록하기도 했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아이들의 꿈의 지형은 크게 달라졌다. 과학기술 자체가 덜 중요해져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일상은 스마트폰, 반도체, AI, 배터리, 로봇 등 과학기술의 산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럼에도 아이들이 과학기술인을 꿈꾸지 않는 이유는, 과학기술이 '힘겨운 노동'과 '불안정한 미래'의 이미지로 비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밤샘 연구와 불확실한 일자리, 수도권에 집중된 연구 인프라, 그리고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과학자는 더 이상 멋진 꿈의 직업이 아니라 '힘들지만 의미 있는 일'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에서도 '멋진 과학기술인'을 다루기 보다 극소수의 일탈이나 비리를 더 비중있게 다룬다.
그래서 이번 국민보고회가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다.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이라는 말 속에는, 과학기술인을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는 요구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 혁신을 외치면서 정작 연구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처우와 미래를 방치한다면, 아무리 거창한 국가전략도 종이에 적힌 문장에 그칠 수밖에 없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정부의 역할이다.
정부는 과학기술인을 단순한 '연구 인력'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설계하는 동반자로 대우해야 한다. 안정적인 연구비와 장기 과제를 통해 연구자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연구 성과만이 아니라 과정과 도전도 평가하는 제도로 바뀌어야 한다. 초·중등 교육에서도 입시를 위한 과학 과목이 아니라, 실제 과학기술인의 삶과 연구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진로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가끔 한 번 과학자의 강연을 듣는 수준을 넘어, 교과서 속 개념이 실제 연구와 산업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연결해 주는 교육과정이 필요하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훌륭한 과학기술업적과 이를 이룬 멋진 과학기술자의 이야기를 교과서에 실어 아이들에게 '나도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는 꿈을 심어주어야 한다.
둘째,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과학기술 인재는 수도권에서만 자라는 것이 아니다. 각 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지역 과학기술인도 필요하다. 광주를 예로 들면, AI 중심도시 조성, 국가 AI 데이터센터 운영 경험, 국가 AI 컴퓨팅센터 유치 추진 등은 단순한 산업 전략을 넘어, 지역 청소년에게 "우리 동네에서도 세계 수준의 과학기술이 탄생한다"는 자부심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다. 지방자치단체는 과학축전, 메이커 페어, AI·로봇 캠프, 지역 연구소·기업 견학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청소년이 연구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넓혀야 한다. 과학관과 도서관, 학교, 연구기관을 연결하는 '지역 과학 생태계'를 촘촘히 짜는 것이 지자체의 중요한 책무다.
셋째, 무엇보다 선배 과학기술인들의 역할이 크다.
어린 시절 우리의 꿈을 바꾼 것은 교과서가 아니라, 눈앞에서 만났던 한 사람의 모습이었을지 모른다. 선배 과학자들이 연구실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학교와 지역사회로 나와야 한다. 화려한 성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시행착오, 연구비 걱정과 밤샘 실험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를 들려줘야 한다. "과학자로 산다는 것"의 현실과 보람을 솔직하게 나누는 멘토링이야말로, 아이들에게 가장 강렬한 진로 교육이다. 용어를 조금 덜 쓰더라도, 눈높이를 낮춰 자신의 연구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과학자가 많아질수록,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아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아이들은 TV와 인터넷 속 스타만을 보고 꿈을 꾸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서,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서 만난 어른을 보며 꿈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그려나간다. 그래서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은 과학기술보고회 한 번으로 완성될 수 없다. 정부의 정책, 지자체의 현장 프로그램, 선배 과학기술인의 진심 어린 동행이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현실이 된다.
과학기술은 더 이상 일부 엘리트만의 언어가 아니다.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고령사회, 디지털 격차 등 우리가 당면한 난제는 모두 과학기술과 깊이 연결돼 있다. 이 문제들을 풀어갈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 바로 오늘의 어린이와 청소년이다.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그들의 선택이 개인의 모험이 아니라, 사회가 함께 책임지는 길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의미의 과학기술 강국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과학기술인을 꿈꾸는 대한민국"이라는 문장은 결국 이렇게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과학기술인의 꿈을 끝까지 지켜주는 대한민국."
그런 나라를 만드는 일은 과학기술인만의 과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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