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8월 18일, 광주광역시는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실시 계획을 고시했다. 시는 "정율성 선생 생가 2곳 부지를 역사공원으로 지정하여 매입 후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을 알렸다.
광주광역시의 고시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정율성은 1930년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공산당 당원이 되어 공산주의 혁명에 참여한 혁명가였다.
음악가로서 정율성은 중국인민해방군가가 되는 팔로군 행진곡을 작곡했으며, 해방 이후 북한으로 이주, 북조선노동당 당원이 되었고, 1950년에는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리고 정율성은 한국 전쟁 이후 중화인민공화국에 남아 활동했다. 한마디로 그는 소위 '빨갱이'였다. 이 계획에 대해 한국의 보수는 반발했다. 하지만 광주광역시는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도 역사공원 건립 계획을 취소하지는 않았다.
그 상황 속에서 국가보훈부가 비판의 전면에 나섰다. 보훈부장관은 "김일성도 항일운동을 했으니 기념 공원을 짓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데 앞장선 그를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기념한다는 것은 5·18 묘역에 잠들어 계신 우리 민주주의 투사들을 욕보이는 일"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국민의 힘 또한 "국민 세금 48억 원을 들여 정율성 기념 공원을 짓는 것은 독립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지켜온 광주시민에 대한 모욕 행위나 다름없다",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고 우리 국민의 가슴에 총부리를 겨눈 자들을 어떻게 기릴 수 있단 말인가"라고 논평했다.
그와 유사한 문제를 우리는 육군사관학교에 설치된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논쟁에서 만날 수 있다. 2023년 8월 25일, 육군사관학교는 "생도들이 학습하는 건물 중앙현관 앞에 설치된 독립군, 광복군 흉상은 위치의 적절성이나 국난 극복의 역사가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문제 등에 대한 논란이 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 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그 중에서도 1927년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경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가장 논쟁적인 대상이 되었다. 같은 날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한 이종섭 국방부 장관의 발언이 그 이유를 알게 해준다. 그는 "북한을 대상으로 전쟁을 억제하고 전시에 이기기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곳인데 공산주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겠느냐는 지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정율성과 홍범도를 국가적으로, 국민적으로 기억하고 기념해서는 안 된다는 보수 주장의 핵심에는 '자유민주주의'란 개념이 자리하고 있다. 위의 에피소드가 말해주는 것처럼, 보수가 추앙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반공주의'의 대립어다.
제주 4·3, 여수 10·19, 한국 전쟁을 필두로 하는 현대사의 결정적 국면들을 지나오면서 자유민주주의와 반공주의라는 두 언어는 어떠한 공존 가능성도 없는 배타적 관계로 성립하고 운동해 왔다. 그렇게 움직여온 정치적 시간 속에서, 대한민국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어 온 자유민주주의는 북한으로 표상되는 공산주의에 대한 적대감의 체화에 비례해 반드시 수호해야 할 이념의 위상을 갖추어갔다.
현대사의 굴곡 속에서 단단하게 주조된 '성스럽고 신성한 이념,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의 정치적 지형과 세력을 선함과 악함, 정의와 불의, 성스러움과 오염이라는 규범적 이분법의 체계 안에 배치해 온 마법의 언어였다.
오랜 시간, 보수적 정치권력은 한국의 정치적 구성원들에게 그 언어적 질서를 내면화할 것을 강요하고 설득하고 권장해 왔다. 그 과정에서 보수는 자신들의 집단적 체험과 기억의 역사를 자양분으로 특정한 정치 문법을 구축했다. 반공주의의 안티테제로서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절대적으로 성스럽다는 문법이다.
우리는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18년에 전개된, 헌법 개정을 둘러싼 이념적 갈등의 본질을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한다. 한국의 보수는 제6공화국 헌법 전문을 구성하고 있는 언어인 자유민주주의를 민주주의로 수정해야 한다는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의 개헌 제안에 전면적인 반대를 표명했다.
보수는 그것을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고 전복하려는 의도로 해석했다. 일면 우리는 보수 세력의 그러한 해석적 스탠스를 이해한다. 한국 보수는 자신들의 정치적 정체성을 반공으로 체화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율성, 홍범도와 같은 민족주의 운동가를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념적 틀에 가두어 그들을 애국적 표상의 바깥으로 축출해 버리는 행위는 참으로 기묘하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역설적인 또는 모순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자유민주주의로 전락한 이상, 그 이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그 점에서 지난 2018년 개헌론이 본격적인 논쟁 국면으로 진입하기 이전에 닫혀 버린 것은 매우 중대한 오류였다. 이에 새로운 정부는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언어의 적실성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할 것을, 개헌 의제를 공론화할 것을 제안한다. 어떠한 정치공동체도 완전한 이념적 자유를 향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정치공동체의 이념적 금기들을 없애가는 과정이 민주주의 본질이라 한다면,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한 대한민국 정치공동체는 구성원의 정치적 사유와 상상력을 봉쇄해온 이념적 터부를 개방적인 공론에 붙여, 민주주의에 관한 보다 자유로운 이념의 지평을 열어주는 노력을 전개해야 한다. 새 정부가 그 문을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 앞서 정율성과 홍범도의 민족주의적 정통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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