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사회대개혁의 길 위에서, 평등의 공화국을 향해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학과교수 입력 2025.03.09. 17:34
하상복(목포대 정치언론학과교수)

1919년 봄, 전국에서 3·1 만세혁명이 일어났다. 그에 대한 반성으로 그로부터 한 달 여 뒤인 4월 11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임시정부는 같은 날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제정했다. 총10개조로 이루어진 임시헌장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임'(제1조)을, 그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인민은 남녀귀천과 빈부 계급이 없이 모두 평등한 존재임'(제3조)을 명문화하고 있다. 그 국가 이념은 지금까지 면면히 내려와 6공화국 헌법 제1조로 이어지고 있다.

국가권력이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그들의 생각에 맞서 역진할 때, 1919년의 봄처럼, 국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같이 외치고 노래불러온 것이 근대국가 대한민국의 정치적 역동성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찬미하는 그 민주공화국은 어떤 국가인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국민주권의 나라임을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통치자로 군림해온 왕이 아니라 피치자로 살아온 국민에게로 주권이 이행된 정치공동체가 민주공화국의 본질이다. 우리는 주기적 선거를 통해 그 국민주권을 느끼고 실천한다. 그리고 부패하고 정의롭지 않은 국가권력을 국민의 이름으로 끌어내릴 때 국민주권이라는 이념의 빛은 더 강렬하게 발한다. 모름지기 민주공화국에서라면 국가권력은 주권자의 정치적 선택과 결정에 늘 초조하고 불안해야 한다.

그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은 이미 완성된 것이 아닐까? 군주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주권을 가진 국민이 권력을 생성해내고, 그 권력을 불신임하는 정치 과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5년 대한민국의 정치가 주권자의 정치적 위대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 헌장에 구현된 이념적 지향인 '인민의 평등'이라는 가치에서 보면 아직 한국은 민주공화국을 완결하지 못했다. 대한민국의 남녀는 결코 평등하지 않다.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경제적 격차도 심각하다. 지역과 지역의 불평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리하여 남자와 여자들은 서로를 돌아볼 겨를 없이 각자도생의 길로 나아가고 있고, 가난한 자들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자신의 빈곤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소외된 지역의 주민들은 언제든 더 나은 기회와 가능성이 있는 다른 지역으로 떠날 계획을 세우기에 바쁘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불평등과 불안과 아노미의 리스트를 말하자면 끝도 없다. 평등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민주공화국 대한민국 지금의 자화상이다

여기서 우리는 루소(Jean-Jacques Rousseau)를 떠올린다. 고독의 프랑스 사상가는 물질적 불평등과 그에 따른 사회적 분열과 심리적 증오가 민주공화국을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지를 통찰했다. 그는 사유재산제의 신성함에 사로잡혀 부자들의 공화국을 만들고자 했던 당대의 부르주아 사상가에 맞서 물질적 평등 위에 단단하게 서 있는 민주공화국을 염원했다. 그리고 그 유토피아적 소망은 프랑스혁명에서 산악파의 거두였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의 인민공화국으로 실험된 바 있다.

루소는 부자와 빈자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부자는 자기 물질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빈자는 부자를 질투하며 자기 몸을 팔 수 밖에 없는, 그러한 극단으로 치닫는 불평등을 만들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가 물질적 불평등을 두려워한 근본적인 이유는 불평등 자체가 아니다. 그러한 불평등의 자리에서는 서로를 향한 공감, 연민, 배려, 연대와 같은 사회적 마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함께 할 수 있을 때라야 민주공화국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불평등이 만연해 있는 우리 공동체는 온통 고통스런 마음들로 가득하다. 모든 사회적 구조와 가치와 생각이 이분법으로 나뉘어버린 이곳에서 타인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도덕적 타자, 윤리적 타자라는 말은 이미 무의미하다. 어쩌면 우리는 영화 '기생충'의 공화국 위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우리의 민주공화국은 제도적 형식은 갖추었을지언정 그 내용적 본질에서는 공허하고 무기력하다.

무도한 대통령의 파면을 앞두고 있는 지금, 사회대개혁의 외침이 우리 주위 여기저기서 들리고 있다. 사회대개혁을 향한 프로그램은 다양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좋은 사회와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한 개혁 과제들의 다채로움 앞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설계한 근대적 정치공동체가 바로 평등의 민주공화국이었다는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사회는 민주화,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치열한 고민과 실천을 해왔지만, 우리 정체의 또 다른 축인 공화국과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그렇지 못해왔다. 이제 사회대개혁의 핵심에는 공화국과 공화주의에 대한 넓고 깊은 사유와 논쟁이 자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는 오랜 언어적 금기, 그러니까 사회주의, 인민, 사람 등 북한의 언어라면 사용해서도 허용해서도 안 된다는 그 이념의 금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화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만의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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