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투자·탱크데이·배제고 계기 지역 혐오 절정
'광주 출신' 낙인에 오래전부터 위축된 삶 살아와
한낱 즐거운 놀잇감 전락에 지역민·아이들 상처만

요즘 아침 뉴스를 볼 때마다 불편합니다. ‘나이들어 예민한 탓일까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빠졌다’는 소식에 덜컹 내려앉습니다. 간만에 들려온 고향 소식과는 무관하겠지 애써 위안도 해봅니다. 며칠 전, 대통령이 TV에 나와 직접 발표한 ‘삼성·SK의 광주 반도체 팹(Fab) 투자’ 이야기입니다. 마치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처럼 논리정연했던 대통령의 남다른 애정 표현에 눈시울이 뜨거워지더군요. 묵묵히 지켜보던 마눌님은 “주책”이라며 퉁을 놨죠. 나이 60에 희망을 봤습니다. 드디어 내 고향에도 미래 산업이 생기는구나. 우리 아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내 일처럼 들떴습니다.
하지만 기쁨은 찰나였습니다. 보수 정치인과 언론 등을 보며 자괴감이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공장이 전남광주에 들어서면 나라가 망하는 걸까’. 뉴스와 포털에서 댓글 창을 확인한 순간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형마트 하나 제대로 없는 미개하고 낙후된 동네에 무슨 반도체 공장이냐”, “‘홍어들’한테 퍼주다니 기업이 미쳤다”라는 식의 날 선 조롱과 저주 가득한 혐오 표현이 폭포수처럼 쏟아진 탓이었습니다.
트라우마가 되살아 났습니다. 저는 전라도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지역 감정·차별이 극심했던 때였습니다. ‘전라도 혐오’는 익숙했습니다. 전라도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먼저 고개를 숙였고, 위축된 삶을 살아 왔으니까요. 분명히 같은 대한민국에서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는 데도 특정 지역은 균형발전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유독 전라도에게만은 가혹합니다. ‘내 자식과 손주 만큼은 이런 삶을 살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고향 소식이 마냥 반갑지 않습니다. 최근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과 광주일고 야구 선수들을 향해 가해진 조롱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럴 때면 어김없이 1980년 5월, 갓 중학교에 입학했던 그날의 총성이 귓가에 맴돕니다. “밖에서 총소리가 나니 절대 집 밖으로 나가지 말아라.” 사르르 떨리는 손으로 저를 꼭 껴안으며 문을 걸어 잠그시던 어머니의 절박함, 그리고 그 오월에 목숨을 잃은 또래 학생 18명의 기억은 평생의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매해 이팝나무가 피는 5월이면 한집 건너 한집마다 곡소리가 들리던 고향을 애써 외면했던 이유입니다. 나이 탓인지 갈수록 나 지신이 못나 보이네요. 자꾸 쪼그라들고 위축 되서죠. 뻔뻔한 ‘그들’은 되레 더 당당합니다. 거짓된 혐오를 생산하고, 역사적 비극을 조롱하는 그들에 대해 정작 위축되는 것은 우리의 몫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거대한 낙인은 아주 오래전부터 삶을 옥죄어 왔습니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로 향했을 때 비로소 고향을 벗어난 전라도인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의 벽을 실감했습니다. ‘빨갱이냐’, ‘간첩질 하지 마라’는 말은 가벼운 농담 축에 속했습니다. 군대에서는 광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참들에게 “너희 동네 놈들은 다 폭도냐”라는 모욕과 함께, 심한 구타를 당해야 했습니다.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나라지키는 군인들이 시민들에게 총을 쐈던 기막힌 현실을 경험’했던 전남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입대해서도 전라도에서 왔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아야만 했었죠.
취업 때도,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태어난 호남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면접 볼 때가 생생합니다. “우리 회사는 솔직히 전라도 출신은 잘 안 뽑는데, 자네는 전라도 사람처럼 보이지 않네”라던 면접관의 말에 숨이 턱 막혔습니다. 당시 TV 드라마나 영화 속 조폭, 사기꾼, 하층민들은 어김없이 전라도 사투리를 쓰곤 했습니다. 그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죠. 회사 생활은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몇 차례 승진 기회 때마다, 번번히 미끄러졌습니다. 주변에선 “전라도 출신 때문”이라며 수군댔습니다. 결국 환멸을 느꼈던 서울 생활을 접은 채 고향으로 내려와 작은 가게를 차렸습니다.

민주화 되고 세상이 조금 달라진 줄 알았습니다. 2010년대에 접어드니 과거와 차원이 다른 잔인한 혐오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2013년 일베 사이트에서 5·18 희생자들의 관을 ‘택배 상자’에 빗대어 조롱하는 것을 보았을 때의 절망감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피눈물이 그들에게는 한낱 즐거운 놀잇감이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이 같은 전라도 혐오가 일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전남광주와 관련된 뉴스의 댓글 창은 ‘홍어, 라도, 전라디언, 7시, 알보칠, 까보전’ 등 입에 담지 못할 단어들로 도배됐습니다. 온라인에서 댓글을 보지 않는 이유죠. 신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뿐, 끊이지 않는 왜곡과 혐오에 무력감만 쌓였습니다.
정치권은 전라도를 철저하게 이용만 합니다.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는 ‘민주주의의 성지’라며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을 약속하지만, 지금껏 달라지는 건 없었습니다. 보수 정당은 외연 확장을 말하다가도 호남을 고립시키는 지역감정 프레임을 다시 꺼내 들어 진절머리 나게 만들죠. 더 가슴 아픈 것은 이 독버섯 같은 전라도 혐오 문화가 우리 아이들의 삶까지 갉아먹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전라도일까요’. 수십년 간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은 채 ‘전라도 집단 린치’ 현상이 되풀이되는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걸까요. 이제는 놀이 문화로까지 변질·확산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마저 먹먹해집니다. 60 평생 뼈져리게 느꼈던 절망감을 내 손주들에게 또다시 대물림 해야 할까요. 장맛비에 한기가 돕니다. 겨우내 떨어지지 않았던 된장과 멸치 넣고 양파와 감자 썰어 끓였던 어머니의 된장국이 간절한 밤이네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늘 같은 밤, 막걸리 한 잔하며 그 간 왜 광주인지 담아뒀던 그 고민의 해결책을 한 번 찾아 보려합니다.
유지호기자 hwaone@mdilbo.com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와 포털에서 10·20세대의 ‘밈(Meme)’과 오프라인 놀이 문화로 변질·확산하고 있는 ‘전라도 혐오’를 다룬 이 기사는 서사적 글쓰기인 ‘내러티브 저널리즘(narrative journalism)’을 활용했습니다. 우리 사회와 일상 생활 곳곳에 독버섯 처럼 스며든 전남광주에 대한 무차별적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혐오 표현)의 문제점 등을 현장감 있게 전달해 보자는 취지에서입니다. 관찰자로서 기자가 단순 사실 전달식 기사 형태에서 벗어나, 소설처럼 이야기하듯 구성했습니다. 현재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는 ‘전라도 린치’ 현상이 어디에서 어떻게 기인했는지 등 근본적인 원인은 물론 제도 개선 등 해결 방안에 대한 고민 등을 독자 여러분들께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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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인데"···외면받는 광주백범기념관, ‘하루 17명 꼴’
13일 오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학동 광주백범기념관을 방문한 원아들이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제81주년 광복절을 이틀 앞둔 13일 오전 10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 동구 학동 광주백범기념관에는 유치원 원아 27명이 줄지어 전시관에 들어섰다. 아이들은 전시 해설을 들으며 백범 김구 선생의 독립운동 업적과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조성된 백화마을의 역사를 살펴봤다. 다소 낯선 역사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광복의 의미를 하나씩 알아가는 모습이었다.하지만 아이들의 방문으로 잠시 활기를 띠었던 기념관은 단체관람이 끝난 뒤 다시 한산해졌다. 전국에 단 두 곳뿐인 김구 선생 전문기념관 중 하나이자 김구 선생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각별한 인연을 간직한 공간이지만, 상징성에 비해 시민들의 발길은 여전히 뜸하다.광복절뿐만 아니라 3·1절과 현충일 등 역사적 기념일이 해마다 이어지고 있음에도 광주백범기념관의 연간 관람객은 2015년 개관 이후 한 번도 1만명을 넘지 못했다.이날 광주백범기념관 등에 따르면 기념관 관람객은 2023년 5천125명에서 2024년 7천206명, 지난해 8천530명으로 증가했다. 2년 사이 3천405명, 66.4% 늘었지만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관람객은 23명에 그친다.올해 들어서는 7월 말까지 3천599명이 방문했다. 월평균 514명, 하루 평균 17명 수준이다. 광복절이 있는 8월과 유치원·학교의 단체 해설이 집중되는 9월에 방문객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올해 연간 관람객 1만명 돌파 여부는 불투명하다.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자리한 백범김구기념관과 비교하면 격차는 더욱 두드러진다. 서울 기념관의 최근 연간 관람객은 약 15만명으로, 지난해 광주 기념관 관람객의 17.6배에 달한다. 광주 기념관 관람객은 서울의 5.7%에 불과한 셈이다.두 기념관은 김구 선생을 기리는 전문기념관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설립 배경과 운영 방식은 다르다. 서울 기념관은 김구 선생의 묘소와 독립운동가 묘역이 있는 효창공원에 자리하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가 위탁 운영하고 있다. 김구 선생의 후손들도 운영에 참여하고 있다.2015년 10월 문을 연 광주백범기념관은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조성된 학동 백화마을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백범문화재단과 당시 국가보훈처, 광주시가 총 12억4천200만원을 투입했으며, 지상 3층·연면적 488㎡ 규모로 전시실과 교육실 등을 갖췄다. 건립 이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 기부채납돼 시 소유 시설이 됐으며 현재 백범문화재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기념관은 상설 전시해설과 함께 유아와 초·중·고등학생, 성인을 대상으로 체험 프로그램과 보드게임, 역사기행 등을 운영하고 있다. 3·1절과 현충일, 광복절 등 주요 기념일 행사와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포함해 매년 10개 이상의 사업을 진행한다. 단체뿐 아니라 가족 단위 개별 관람객도 매달 달라지는 체험 프로그램에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기념관 측은 시설을 직접 방문한 관람객 수만으로 전체 사업 성과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해 온라인 프로그램과 외부 체험 부스, 협력기관 행사 등에 참여한 인원은 모두 2만3천516명에 달했다. 기념관 밖에서 김구 선생의 삶과 정신을 알리는 활동까지 포함하면 실제 사업 참여 규모는 연간 방문객 수보다 훨씬 크다는 설명이다.다만 외부 행사 참여 실적이 기념관의 인지도와 방문객 증가로 충분히 이어지지 못한 점은 과제로 꼽힌다. 학교 교육과정과 연계한 정기 단체관람을 확대하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양림동 역사문화마을, 광주학생독립운동 관련 시설 등을 연결하는 역사 탐방 코스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광복절 등 특정 기념일에 집중된 일회성 방문을 넘어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찾을 수 있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기능하도록 홍보와 콘텐츠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광주백범기념관 관계자는 “개관 이후 연간 관람객이 1만명을 넘은 적은 없지만 최근 들어 방문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지난 해에는 기념관 방문객뿐만 아니라 온라인 프로그램과 외부 행사 참여자까지 포함해 2만3천여명이 사업에 참여했다”고 설명했다.이어 “광주백범기념관은 김구 선생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백화마을과 지역의 인연을 기억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며 “가족 단위 방문객도 전시 해설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만큼 더 많은 시민이 찾아 김구 선생의 삶과 지역에 남겨진 뜻을 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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