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상규명에도 치유는 피해자의 몫···"이젠 국가가 답할 차례”

입력 2026.05.13. 08:03 강주비 기자
■5·18 46주년 기획-고통의 5월, 성폭력 피해 넘어 치유로 (4)진실 이후, 책임의 공백
국가폭력 인정됐지만 지원없어
피해자가 단체 꾸려 공백 메워
비영리 등록조차 거절당해 '막막'
대통령 공식 사과·후속 조치 절실
2024년 9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피해자분이 눈물을 닦고 있다. 뉴시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의 진상이 규명되고 관련 보상법까지 개정됐지만, 피해자들의 치유와 회복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 피해 사실은 43년 만에 국가폭력으로 인정됐으나 지원 체계는 여전히 미비해 피해자들은 스스로 모임을 꾸려 서로를 치유하고 기록하며 버텨내고 있다. 5·18 46주년을 맞아 ‘더 늦기 전에’ 국가가 실질적인 책임 이행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024년 9월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용기와 응답’에서 피해자분들과 국회의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12일 5·18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와 관련 자료 등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보상 절차 대응과 국가손해배상 소송, 치유 프로그램 운영, 기록 사업, 정책 제안 활동 등을 병행하며 국가 책임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지난 2023년 조사 결과를 통해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국가폭력으로 인정했다. 피해 발생 이후 43년 만이었다. 이후 피해자들과 조사 참여 인력 등을 중심으로 모임이 꾸려졌고, 현재는 ‘과거사 젠더폭력 진실과 치유의 길을 여는 5·18 열매’라는 이름으로 공식 출범했다.

문제는 진상규명 이후에도 국가 차원의 후속 지원 체계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사무실. 열매 제공

열매는 현재 자조모임과 상담, 회복 메커니즘 연구, 참여 관찰 및 기록 작업 등을 자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또 대통령 공식 사과 촉구와 국가손해배상 소송 공론화, 진실·치유 아카이브 구축, 정책 제안 활동 등을 목표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피해자들의 경험을 단순 상담이나 일회성 지원에 그치지 않고 기록과 연구, 정책 제안까지 연결해 국가 책임 이행을 끌어내겠다는 취지다.

피해자 공동체가 사실상 국가가 나서야 할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지만, 운영 상당 부분은 민간의 자발적 연대와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활동가 인건비와 공간 마련, 외부 재원 연계 등이 절실하지만 피해자 지원 체계는 여전히 제도권 안에 안착하지 못했다.

법적 테두리 안으로 들어서기 위한 첫 단계인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과정에서도 광주시와 행정안전부, 성평등가족부 등 여러 부처와 부서를 거쳤지만 끝내 반려됐다. 공유 사무실 형태의 거점 운영과 전국 단위 활동 여부, 자조모임 단계 당시 예산안·결산 자료 부족 등이 반려 사유였다.

피해자 공동체 특성상 초기 활동은 신뢰와 돌봄, 자발적 연대를 바탕으로 이어져 온 만큼 정식 예산이나 결산 체계 같은 일률적인 행정 기준으로 증빙하기 어렵다는 게 열매 측 설명이다.

열매 관계자는 “비영리민간단체 등록이 곧바로 실질적인 지원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공익단체로서 활동 기록을 남기고 공모사업 참여 자격 등을 확보하기 위해 최소한의 법적 지위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 보상 역시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는 5·18 성폭력 피해자를 보상 대상에 명시하는 내용의 5·18 보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기존 보상 기준이 사망·행방불명·상이 중심으로 구성돼 있어 성폭력 피해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진 데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보상법 개정 이후에도 시행령 정비와 보상 기준 마련 등 후속 절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열매는 오는 6월 관련 공청회를 열고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 결과를 반영한 피해 기준 마련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처럼 진상규명과 법 개정 이후에도 후속 조치가 더디게 진행되면서 국가 책임이 여전히 선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46년 만에 성폭력 피해자 모임이 조직화된 만큼 이제는 대통령 공식 사과와 장기 치유 지원 체계 구축, 제도 정비 등 실질적인 후속 조치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열매는 최근 이재명 대통령에게 전달한 공개서한에서 “‘선례 없음’이 국가 책임 지연의 근거처럼 반복되고 있다”며 ▲과거사 젠더폭력 지원 주무부처 지정 ▲부처 간 조정 체계 구축 ▲보상·기념·예우 체계 연계 ▲대통령 공식 사과 등을 요구했다.

지난 2024년 4월21일 5·18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 모임 ‘열매’ 회원들이 치유회복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열매 제공

윤경회 5·18열매 간사는 “최근 보훈부로부터 5·18 기념식 초청장이 도착했다. 열매 회원들이 국가폭력 피해자로 인정됐음에도 보상 절차가 완료되지 않아 공식 초청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했는데, 다행히 공식 초청 내빈 자격으로 기념식에 참석할 수 있게 됐다”며 “다만 과거사 젠더폭력 문제를 전담할 주무 부처 지정이 필요한데, 대통령실이나 국무조정실 차원의 공식 의지 표명이 없다면 각 부처가 법적 근거 부족 등을 이유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올해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공식 사과와 함께 실질적인 후속 조치 의지가 함께 나오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성폭력 피해자 14명과 가족 3명 등 총 17명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진행 중이다. 오는 15일 서울중앙지법에서는 관련 3차 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 연관뉴스
슬퍼요
3
후속기사 원해요
3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