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 했다"더니 이틀간 흉기 들고 배회···광주 여고생 피살 의문 증폭

입력 2026.05.06. 17:39 강주비 기자
"공부밖에 모르는 착한 아이"…장례식장·사건 현장 추모 발길
가해자,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 챙겨, 세탁소 방문, 증거 인멸 정황
경찰, 계획범죄 가능성 무게, 7~8일 신상공개 심의 전망
새벽시간 흉기 습격을 당해 숨진 고등학생을 추모하는 국화꽃과 꽃다발이 사건 현장 가로수 밑에 놓여있다. 강주비 기자

응급구조사를 꿈꾸던 여고생은 늦은 밤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참변을 당했다. 경찰은 “자살하려다 충동적으로 범행했다”는 피의자 진술에도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를 소지한 채 배회한 점과 범행 뒤 행적 등을 토대로 계획범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

“어떻게 보내…나는 못 보내….” 6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 일면식도 없는 남성에게 흉기 피습을 당해 숨진 고등학생 A양의 빈소에는 유족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입구에 설치된 안내 화면에는 앳된 얼굴의 영정사진과 함께 나이를 알리는 ‘18’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빈소 너머 복도에까지 흐느낌이 번졌고 조문객들은 무거운 표정으로 자리를 지켰다.

A양은 지난 5일 오전 0시11분께 광주 광산구 월계동 한 대학교 인근 보행로에서 장모(24)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공부 욕심이 많던 A양은 사건 당일에도 평소처럼 스터디카페에서 늦은 시간까지 공부한 뒤 귀가하던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 근처에 있던 또 다른 고등학생 B군도 비명을 듣고 다가갔다가 흉기에 다쳤다.

유족과 주변 지인들은 A양을 “꿈을 향해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착한 학생”이라고 입을 모았다.

평소 A양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냈다는 김영두(40)씨는 “어릴 적부터 가족끼리 자주 왕래해 A양은 거의 내 딸과 다름없는 아이였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새벽시간 흉기 습격을 당해 숨진 고등학생의 빈소가 6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강주비 기자

김씨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면 응급구조사나 구급대원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또래 중에 그렇게 일찍 꿈을 정하고 노력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얼마 전 제 생일이라고 기프티콘도 보내줬다”며 “그 마음 씀씀이가 아직도 눈에 선한데 이렇게 떠났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이 기프티콘을 어떻게 쓰겠냐”고 말을 잇지 못했다.

A양 어머니의 친구도 “어릴 때부터 워낙 사랑스럽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며 “사춘기 시절에도 말썽 한 번 피운 적이 없었다. 가족들이 너무 큰 충격에 빠져 있다”고 전했다.

A양의 국어학원 교사 역시 “시험이 끝난 뒤에도 바로 학원에 나와 공부할 정도로 성실한 학생이었다. 고민 상담도 자주 해 정말 친구 같은 학생이었다”며 “당장 지난주 토요일에도 수업을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건 현장에도 추모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날 오후 찾은 광산구 월계동 한 고등학교 앞 인도의 가로수 아래에는 시민들이 놓고 간 국화꽃과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이상동기 범죄, 이른바 ‘묻지마 살인’으로 보고 수사 중인 가운데 장씨의 범행이 단순 우발이 아닌 계획범죄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는 게 재미없어 극단적 선택을 고민했다”며 “미리 챙겨 나온 흉기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피해자인 A양을 두 차례 마주친 뒤 범행 충동을 느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장씨가 범행 이틀 전부터 흉기를 소지한 채 광주 일대를 배회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장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살 방법을 여러 가지 고민했다”고 진술했지만, 흉기 소지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범행 직후 행적 역시 석연치 않다.

경찰은 이날 광산구 첨단지구 한 배수로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발견했다. 장씨는 범행 약 11시간 뒤인 검거 당시에도 가방 안에 또 다른 흉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흉기는 포장을 뜯지 않은 상태였으며, 장씨는 경찰에 “평소 차량 안에 보관하던 것을 도주 과정에서 챙겼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버릴 장소를 미리 물색했는지, 별도의 흉기를 소지하고 다닌 이유와 추가 범행 의도가 있었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다.

새벽시간 흉기 습격을 당해 숨진 고등학생의 빈소가 6일 오전 광주 광산구 한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강주비 기자

또 장씨는 범행 직후 차량과 택시를 번갈아 이용해 이동했고, 중간에 무인세탁소를 들른 정황도 확인됐다. 경찰은 흉기 은닉 여부와 함께 혈흔 제거 등 증거 인멸 시도가 있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현재까지 음주나 약물 투약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정신질환 치료 이력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심리 분석과 면담을 진행하는 한편, 휴대전화 포렌식 등을 통해 범행 준비 과정과 추가 범행 가능성 등을 조사 중이다.

한편 경찰은 장씨에 대해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광주경찰청은 7일 또는 8일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를 열어 장씨의 신상 공개 여부를 결정하고, 사이코패스 진단 검사도 실시할 방침이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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