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신뢰 잃은 선거 관리

@이정민 입력 2026.06.04. 16:33
[서울=뉴시스] 조수원 기자=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인 3일 서울 송파구 잠실2동 제6표소에서 투표용지 부족으로 유권자들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2026.06.03.tide1@newsis.com

6·3 지방선거가 끝났다. 승자와 패자가 갈렸고, 민심은 다시 한 번 표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결과와 별개로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문제가 나타났다.

서울 송파구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투표가 중단되거나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이와 관련 허철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은 “국민께 불편을 드리고 공정한 선거 관리에 대한 국민 신뢰를 훼손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문제는 선관위가 내놓은 해명이다.

선관위는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로 인해 준비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송파구 일부 투표소의 경우 유권자의 50% 수준만큼 투표용지를 인쇄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선거를 관리하는 기관이 투표율을 낮게 예상했다는 것 자체가 이해하기 어렵다. 투표율은 선거 당일 얼마든지 변동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관위는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야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국민이 선거 결과를 믿지 못하면 민주주의 역시 흔들린다.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어왔다. 대법원과 선관위, 사법기관이 여러 차례 부정선거 의혹에 근거가 없다고 밝혔음에도 일부 극우 세력은 선거 불신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또 다른 의혹과 음모론의 불씨를 제공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일부 주민들은 재투표를 요구했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서울시 선거는 오염된 선거”라며 재선거와 개표 중단을 주장했다.

물론 선거 결과를 뒤집을 정도의 법적 사유가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더욱이 서울시장 선거에서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가 승리하면서 정치권의 공방도 예상보다 빨리 잦아들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게 나왔느냐와 선거 관리의 책임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만약 승패가 수백 표, 수천 표 차이의 초접전이었다면 어땠을까. 투표를 포기하고 돌아간 유권자가 있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선거 결과에 대한 불복과 사회적 갈등은 지금보다 훨씬 커졌을 것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선관위가 국민 신뢰를 얼마나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이다.

부정선거 의혹이 자라날 수 있는 틈을 만드는 무능과 안일함은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을 선관위는 명심해야 한다.

이정민 취재1본부 차장 ljm7da@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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