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강원도 강릉 해변가에서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83)씨의 장례식이 열렸다. 하지만 그는 아직 살아 있다. 아직은 낯선 생전 장례식이었다.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의 마지막 장례장면 촬영을 앞두고 그가 지인들에게 '꽃 대신 기억을 들고 오라'며 부고장 보냈다. 이 자리에 박씨와 평생 인연을 맺었던 탤런트 강부자와 소리꾼 장사익 등 한국의 내로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 150여 명이 모여 잔치같이 유쾌한 장례를 치렀다.
박씨는 지인들에게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 안고 오세요"라고 인사말을 남겼다.
박정자씨가 기획한 생전 장례식이 새롭거나 낯선 건 아니다.
'모두 웃는 장례식'이라는 책이 있다. 암에 걸려 몇 년째 투병 중인 할머니가 "죽은 뒤에 몰려와서 울고불고한들 무슨 소용이야? 살아 있을 때 한 번 더 보는게 낫지"라며 돌아오는 생일에 장례식을 치르겠다고 한 것이다.
유방암 조기 발견을 돕는 자선 단체 '코파필'을 세운 영국인 크리스 할렌가는 자신이 사망하기 1년 전인 2023년 생전 장례식을 치렀는데, 장례식 이름이 'FUN-eral'이었다. 조문객들은 할렌가의 바람처럼 '유쾌한 장례식'을 즐겼다고 한다.
2018년 전립선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고 김병국 옹의 생전 장례식도 인상 깊다. '고인이 되어서 치르는 장례가 아닌 임종 전 가족, 지인과 함께 이별 인사를 나누는 살아서 치루는 장례식을 하려고 합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라고 그가 직접 쓴 부고장을 받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그와 추억을 나누고 포옹하며 이별했다.
넷플릭스 영화 '첫눈에 반할 통계적 확률'은 '생전 장례식'을 소재로 만들었다. 넷플릭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어 '생전 장례식'에 대한 인식이 더 확산할 것으로 보인다.
죽음 앞에 모두가 허망하다. 고인은 하지 못했던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테고, 가족·지인들은 고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삼켜야 한다.
생전 장례식은 주인공이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감사와 용서, 화해를 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생전 장례식의 핵심은 '웃음'과 '축복'이다. 자기 죽음을 스스로 준비하는 모습에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과 영감을 남긴다.
선정태 취재2본부장 wordflow@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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