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강학
이곳서 '투사회보' 제작하며
진실 알리고 시민 궐기 호소
회화·사진·영상 작업 등으로
연대·공동체 정신 가치 재조명

80년 5월 광주 시민을 대변해 계엄군에 맞섰던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이 된 윤 열사는 일찍이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은행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업을 그만두고 고향인 광주에 내려와 위장 취업해 노동 운동을 이끌었다. 힘든 노동에 자신의 권리마저 챙기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밤에는 들불야학에서 강학을 했다.
그가 강학한 들불야학은 훗날 80년 5월 광주 시민에게 당시의 진실을 알리는 실천의 거점이 됐다. 계엄군에 의해 도시가 고립되고 언론마저 침묵하던 항쟁 초기, 윤상원 열사는 들불야학 강학들(들불 7열사)과 함께 ‘투사회보’를 만들어 현재 광주가 처한 상황을 알리고 시민 궐기를 호소했다. 노동자와 시민이 스스로 현실을 이해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했던 들불야학의 정신이 항쟁의 한복판에서 시민 연대를 이끄는 힘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같은 들불야학을 재조명하며 80년 5월 광주 공동체의 연대와 가치를 되짚는 전시가 열려 눈길을 모은다. 항쟁의 기억을 품은 대의동 은암미술관에서다.
‘들불야학’이라는 전시명 아래 펼쳐지는 이번 전시는 다양한 매체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회화는 물론 사진, 문학, 영상, 설치 등이다. 전시는 크게 들불야학의 터전이었던 광천시민아파트 일대와 그곳에서의 기억을 조명하는 1층 전시와 들불야학에서 강학을 펼쳤던 들불7열사를 만나는 2층 전시로 구성됐다.

광천시민아파트와 그 일대, 그리고 그곳에서의 기억을 담아낸 1층 전시에서는 1980년대 초 그려진 광천동 풍경, 광천시민아파트 내부 모습이 시대를 건너 관람객을 마주한다. 그곳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윤상원 열사의 모습, 야학 운동회를 갖고 모두 어울렸던 풍경 등은 지금은 철거가 논의되는 공간이지만 한때는 뜨거운 삶과 연대의 에너지가 가득했던 곳임을 보여준다.
철거를 앞두고 이곳의 모습을 남겨둔 작품들도 의미를 더한다.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 등으로 지금의 모습을 보존한 작품뿐만 아니라 지난해 들불열사기념사업회가 주최한 행사를 통해 시민이 직접 그린 광천시민아파트의 철거직전 모습 등이 어우러져 사라져가는 공간의 기억을 함께 이어간다.

2층 전시에서는 박종석 작가의 신작 ‘윤상원 열사 ’ ‘박기순 열사’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에 문병란 시인이 바쳤던 축시 ‘부활의 노래’ 육필 원고가 처음으로 공개된다. 또 80년 5월 도청의 마지막날 밤을 기록한 작품, 남녀노소의 이해를 돕는 샌드애니메이션 작품도 들불열사들의 길을 조명한다.

특히 눈길을 모으는 것은 은암미술관이 한 달 여에 걸쳐 준비한 구술채록 영상이다. 지역사 아카이빙 다큐를 찍어온 임성엽 감독과 협업해 만들어진 이번 구술채록 영상은 들불야학에서 강학했던 김상윤·서대석·임낙평·전용호와 2018 광천시민아파트 철거를 반대하는 게릴라 퍼포먼스를 가졌던 주홍 작가를 인터뷰했다. 이를 통해 들불야학에 대한 기억을 기록으로 붙잡고 오늘날 우리들에게 연대의 의미와 가치를 묻는다.
채종기 은암미술관 관장은 “1년 여 동안 열심히 준비한 전시로 들불야학과 들불7열사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해 마련했다”며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들의 공동체 정신과 연대의 가치를 되새기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특히 갈등과 반목이 깊어지는 오늘날에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7일부터 6월 5일까지. 개막식은 7일 오후 3시 진행된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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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과 5월 광주의 교차 지점 바라보다
강수지·이하영 작 ‘독버섯’광주의 5월은 ‘너무 견고해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사회를 ‘보잘 것 없는 줄 알았던’ 목소리가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이자 용기이다. 동시대 예술도 그렇다. ‘완전한 것들’로부터 틈을 발견하고 이를 이야기한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G.MAP)은 이러한 예술의 저항정신, 참여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광주의 5월과 동시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하며 오월정신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임을 보여준다.이번 전시 ‘완전한 것들의 틈’은 G.MAP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5·18민주화운동 특별전이다. 우리 지역 청년 작가팀부터 이란, 우크라이나 등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120년 서사시’라 볼 수 있는 첫 번째 섹션부터 역사성이 뚜렷한 두 번째 섹션, 동시대 시각이 더욱 드러나는 세 번째 섹션으로 구성됐다.그중 1층에 자리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 ‘민족해방운동사’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민중해방운동사’는 전국의 미술 집단, 대학 미술패가 모인 ‘민족민중미술운동 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가 1989년 3개월 동안 제작한 걸개그림으로 가로 77m의 초대형 작품이다. 동학농민운동부터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1989년 통일운동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던 장면들을 담았다. 서울, 광주,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전국 순회 전시를 가졌으나 한양대에서 경찰과 백골단에 압수 당한 뒤 소각돼 사라졌다. 이것을 G.MAP이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4개 벽면에서 77m의 초대형 작품이 살아 움직이며 에너지가 극대화된다. 당시의 민중 염원과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도 하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오는 7월 15일까지 갖는다.2층에서 만나는 두 번째 섹션 전시는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는 윌리엄 켄트리지가 고국의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 차별정책)를 러시아 소설로 은유하며 비판, 이같은 부조리함이 어디서든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작된다. 또 양복을 입고 물물 속에서 걷는 인물을 통해 IMF시대 속 ‘숨 쉬기’ 조차 버겁고 무거운 걸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이용백의 작품,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졌으나 한때는 권력을 상징했던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이 건물 건축 도면을 바탕으로 3D 모델링하며 권력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문경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이념 대립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 당한 국군보도연맹이 일어난 광주·전남 지역의 숨겨진 학살지를 찾아나서는 권승찬의 작품, 기억되어야 할 4·3과 10·19, 5·18이 제거해야할 ‘독버섯’처럼 취급되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강수지·이하영의 작품은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보다 우리 시대 이야기를 전하는 세 번째 섹션 전시는 전시공간 자체를 광장처럼 꾸미기 위해 가벽을 최소화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절제해 더 많은 의미를 담고자 수화(手話)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장민승의 작품,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 쓰이는 구호를 외치는 연극배우들의 모습을 매우 느리게 만들어 이들이 짓는 찰나의 표정이나 포즈를 통해 한순간의 집회로 보았던 노동운동자들의 연대를 가만히 지켜보게 만드는 가브리엘라 골더의 작품은 여운을 남긴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기념해 ‘민족해방운동사’를 몰입형 미디어아트작품으로 복원했다.대만의 원시 신앙부터 네온사인 등 현대 문명까지를 포착하며 상이한 존재들이 대립하기 보다는 공존하고 있음을 전하는 처지엔취안의 작품, 40여 개의 서로 다른 국가의 말로 쓰인 ‘나’라는 글자가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통해 언어와 문화,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사하르 호마미의 작품은 우리의 오늘날을 마주할 수 있다.또 우크라이나 작가 올리아 페도로바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미처 수확하지 못한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을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중간의 짧고 수상한 움직임은 평범했던 풍경이 경계심을 일으키는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암시한다. 거센 강풍에 맞서 숨을 들이 쉬고 내뱉는 퍼포먼스를 담은 그의 또다른 작품은 이같은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그럼에도 맞서 하나의 주체로 끝까지 존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김허경 G.MAP센터장은 “이번 전시는 G.MAP의 첫 5·18 특별기획전으로 오월정신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의 예술가 혹은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피며 오월정신을 예술적 관점에서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지난 7일 오픈해 오는 7월15일까지 펼쳐진다.글·사진=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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