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 기술의 우연성 시각화
인간 신체 결합한 인공지능 등
디지털 기술 달리 바라보게 해

지난 12일 찾은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G.MAP)에서 열린 양숙현 개인전 '사변적 물질들' 전시장. 커다란 모니터가 전시장 곳곳을 채우고 있어서인지 벽면에 걸린 평면 작품이 유달리 눈에 띈다. 작품에는 보석으로 다듬어지기 전의 원석 같기도 하고, 어떤 결정체 같기도 한 9개 물체의 모습이 담겨있다.
이 작품명은 '같은 의미를 지닌 다른 것들'. 이 작품은 생성형 AI(텍스트나 이미지 등을 만들어내는 인공지능)를 통해 만든 것으로 같은 명령값에도 각기 다른 결과물이 도출된 것을 한데 모은 것이다. 이는 작가가 이번 전시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준다 할 수 있다.
산업 혁명 시대를 거쳐 온 영향으로 '기술'하면 보통 기계를 떠올리기 때문에 최근의 기술인 디지털, AI를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으로 보는 한편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작가는 꼭 그렇지 않음을 보여주려한다.
앞서 살펴 본 작품은 논리 연산으로 만들어진 동시대 기술에도 우연성은 존재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해한 대로라면 AI는 같은 명령에 같은 값을 내야하지만 서로 다른 값이 나온 것처럼 말이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이자 작가의 근작인 'OOX 2.0_지구물질인간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 또한 동시대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술 발달과 함께 터부시해왔던 비논리적인 개념을 AI에 도입했다.

이 작품은 관객참여형 작품으로 관객이 자신이 태어난 해와 월, 일을 입력하면 동양철학에 기반해 이에 어울리는 시(詩)와 영상을 생성해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AI 데이터 형성에 있어 누락되는 비영어권, 비서구권의 데이터에 대해서도 메시지를 전한다.
'로봇 생태계의 외래종'은 웨어러블 로봇(착용할 수 있는 형태의 로봇)을 만날 수 있다. 이는 인간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로봇을 상상한 결과물로, 인공지능이 로봇에 합성돼 인간의 신체를 공유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작품은 작가가 상상한 웨어러블 로봇 시제품 3가지와 인간의 신체성을 바탕으로 가까운 미래에 나타날 법한 로봇의 등장을 담은 영상으로 구성됐다.
비물질이라 생각했던 동시대 기술이, 데이터가 어떻게 신체를 획득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작품으로 더이상 인간이 인간과만 사는 세계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양숙현 작가는 "기술을 기계로 이해하는 시대를 지나오다 보니 디지털 기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비물질적 존재라 생각하지만 이제는 이 기술이 물질로 다가오고 있는 시대이다"며 "이런 시대 속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해야할 것인지 고민할 수 있는 자리이다. 동시대 기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6월15일까지.

한편 양숙현은 광주 출신으로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인터랙션 디자인으로 석사 학위를, 영상학으로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2010년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 다빈치 아이디어 1기로 데뷔해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리에이터스 인랩, 국립현대미술관 창동 프로젝트팀에서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서울문화재단과 한국과학창의재단, 현대자동차그룹 제로원 등에서 작가 지원을 받앗으며 아르스일렉트로니카센터, C-LAB 타이페이, 백남준아트센터, ACC 문화창조원, 창원조각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부산현대미술관, 제주도립미술관, GAS 2017, 다빈치크리에이티브 등에서 전시했다.
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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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 예술과 5월 광주의 교차 지점 바라보다
강수지·이하영 작 ‘독버섯’광주의 5월은 ‘너무 견고해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사회를 ‘보잘 것 없는 줄 알았던’ 목소리가 변화를 촉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이자 용기이다. 동시대 예술도 그렇다. ‘완전한 것들’로부터 틈을 발견하고 이를 이야기한다. 광주미디어아트플랫폼(이하 G.MAP)은 이러한 예술의 저항정신, 참여의식에 초점을 맞추고 광주의 5월과 동시대 예술이 교차하는 지점을 조명하며 오월정신이 동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임을 보여준다.이번 전시 ‘완전한 것들의 틈’은 G.MAP이 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5·18민주화운동 특별전이다. 우리 지역 청년 작가팀부터 이란, 우크라이나 등 전쟁의 상흔을 안은 채 작업하고 있는 작가들까지 다양한 문화권의 작가들이 참여한 이번 전시는 ‘우리나라 근현대사 120년 서사시’라 볼 수 있는 첫 번째 섹션부터 역사성이 뚜렷한 두 번째 섹션, 동시대 시각이 더욱 드러나는 세 번째 섹션으로 구성됐다.그중 1층에 자리한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 ‘민족해방운동사’는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민중해방운동사’는 전국의 미술 집단, 대학 미술패가 모인 ‘민족민중미술운동 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가 1989년 3개월 동안 제작한 걸개그림으로 가로 77m의 초대형 작품이다. 동학농민운동부터 5·18민주화운동을 지나 1989년 통일운동까지 우리나라 근현대사 속 민중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던 장면들을 담았다. 서울, 광주, 부산 등 주요 도시에서 전국 순회 전시를 가졌으나 한양대에서 경찰과 백골단에 압수 당한 뒤 소각돼 사라졌다. 이것을 G.MAP이 몰입형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복원시킨 것이다. 4개 벽면에서 77m의 초대형 작품이 살아 움직이며 에너지가 극대화된다. 당시의 민중 염원과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도 하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오는 7월 15일까지 갖는다.2층에서 만나는 두 번째 섹션 전시는 ‘남아공의 피카소’로 불리는 윌리엄 켄트리지가 고국의 아파르트헤이트(유색인종 차별정책)를 러시아 소설로 은유하며 비판, 이같은 부조리함이 어디서든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시작된다. 또 양복을 입고 물물 속에서 걷는 인물을 통해 IMF시대 속 ‘숨 쉬기’ 조차 버겁고 무거운 걸음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은유하는 이용백의 작품, 지금은 철거되고 사라졌으나 한때는 권력을 상징했던 국군기무사령부 건물을 이 건물 건축 도면을 바탕으로 3D 모델링하며 권력의 덧없음을 나타내는 문경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이념 대립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 당한 국군보도연맹이 일어난 광주·전남 지역의 숨겨진 학살지를 찾아나서는 권승찬의 작품, 기억되어야 할 4·3과 10·19, 5·18이 제거해야할 ‘독버섯’처럼 취급되는 사회적 이해관계의 폭력성을 보여주는 강수지·이하영의 작품은 우리 지역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보다 우리 시대 이야기를 전하는 세 번째 섹션 전시는 전시공간 자체를 광장처럼 꾸미기 위해 가벽을 최소화했다. 직접적으로 말하는 대신 절제해 더 많은 의미를 담고자 수화(手話)로 세월호 참사를 애도하는 장민승의 작품, 아르헨티나 노동운동에 쓰이는 구호를 외치는 연극배우들의 모습을 매우 느리게 만들어 이들이 짓는 찰나의 표정이나 포즈를 통해 한순간의 집회로 보았던 노동운동자들의 연대를 가만히 지켜보게 만드는 가브리엘라 골더의 작품은 여운을 남긴다.G.MAP이 5·18민주화운동 특별기획전 ‘완전한 것들의 틈’을 기념해 ‘민족해방운동사’를 몰입형 미디어아트작품으로 복원했다.대만의 원시 신앙부터 네온사인 등 현대 문명까지를 포착하며 상이한 존재들이 대립하기 보다는 공존하고 있음을 전하는 처지엔취안의 작품, 40여 개의 서로 다른 국가의 말로 쓰인 ‘나’라는 글자가 결국엔 하나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통해 언어와 문화, 국경을 넘어 하나가 되고 있는 현대사회를 보여주는 사하르 호마미의 작품은 우리의 오늘날을 마주할 수 있다.또 우크라이나 작가 올리아 페도로바는 러-우 전쟁으로 인한 상흔을 미처 수확하지 못한 아름다운 해바라기밭을 통해 대비적으로 보여준다. 중간의 짧고 수상한 움직임은 평범했던 풍경이 경계심을 일으키는 일상이 되어버렸음을 암시한다. 거센 강풍에 맞서 숨을 들이 쉬고 내뱉는 퍼포먼스를 담은 그의 또다른 작품은 이같은 행위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그럼에도 맞서 하나의 주체로 끝까지 존재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김허경 G.MAP센터장은 “이번 전시는 G.MAP의 첫 5·18 특별기획전으로 오월정신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보편성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대의 예술가 혹은 다른 나라의 예술가들은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또 이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살피며 오월정신을 예술적 관점에서 만나보길 바란다”고 말했다.전시는 지난 7일 오픈해 오는 7월15일까지 펼쳐진다.글·사진=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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