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3월 중단 이후 1년 만 재개
아이스크림·음료 판매...쉼터 기능 회복
묘지소장 임용까지...오월 준비 본격화

“작년엔 문이 닫혀서 그냥 돌아갔는데 올해는 뭐라도 사 먹으며 쉴 수 있어 좋네요.”
5월을 앞두고 국립5·18민주묘지가 참배객 맞이에 나섰다. 한동안 운영이 중단됐던 매점이 다시 문을 열고 장기간 공석이던 묘지관리소장도 임용되면서 본격적인 오월 맞이에 들어갔다.
28일 오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민주관 1층 매점 앞에는 아이스크림과 음료를 손에 든 참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의자에 앉아 목을 축이거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이어지며, 한때 자판기만 남겨둔 채 문을 닫았던 매점에도 다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매점 내부에는 음료 자판기와 아이스크림 매대, 지역 공예 작가들이 5·18민주화운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념품이 놓였고, 한쪽에서는 아이스크림을 구매하거나 기념품을 손에 들어보며 의미를 살펴보는 참배객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날 친구들과 함께 묘지를 찾은 정규철(67)씨는 “15년간 묘지를 방문했는데 그동안 4~5월이면 더워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이나 음료수를 사 먹고 쉼터에서 수다를 이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코스였는데, 작년에는 매점이 문을 닫아 많이 허전했다”며 “4월 초에 들렸을 때 다시 매점을 연다는 소식을 듣고 오늘 방문했다. 여러 사람들이 오가며 분위기도 살아나 훨씬 낫다”고 말했다.
무안에서 온 박선아(30)씨는 “민주묘지는 2023년에 처음 방문했다가 올해 두 번째인데 기억하던 매점과 모습이 많이 달라 신기하다”며 “예전에는 단순히 쉬어가는 공간이었다면 지금은 전시처럼 볼거리도 많아져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념품도 다양하게 준비돼 있어 국립중앙박물관 굿즈샵처럼 5·18 굿즈를 구매하려는 젊은 참배객들도 늘어날 것 같다. 오월을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에 따르면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기간을 앞두고 묘지 내 매점 운영을 재개하고 팔찌와 키링, 엽서, 브로치 등 오월 기념품 팝업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이번 팝업은 유족회와 지역 공예 작가들이 협업한 ‘오월의 빛 프로젝트’ 결과물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앞서 매점은 유족회가 2022년 공법단체로 전환되면서 운영 문제가 제기됐다. 과거 사단법인 시절에는 유족회 회원이 자원봉사 형태로 매점에 상주하며 운영 수익을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공법단체 전환 이후 수익사업을 하려면 ‘5·18민주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따라 단체가 직접 운영해야 했지만 민주묘지는 4~5월 기념기간을 제외하면 매출이 크게 줄어 직영을 위한 상시 전담 직원을 둘 수 없어 매점 운영은 지난해 3월 잠정 중단됐다.
이에 유족회는 국가보훈부와 협의를 거쳐 기념기간에 한해 팝업 형태로 매점 운영을 재개했다. 상시 고용 대신 중앙회 인력을 팝업 기간 동안만 활용하고 기존 컵라면과 과자를 판매하는 대신 지역 공예 작가들의 제품을 위탁 판매하는 방식으로 운영 부담을 줄였다.
이계벽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사업국장은 “이번 ‘오월의 빛 프로젝트’는 단순한 판매가 아니라 오월의 기억을 일상 속에서 이어갈 수 있도록 기획한 것”이라며 “매점이 참배객들이 잠시 머물며 의미를 되새기는 공간이라는 점을 살리면서 유족들의 기억과 지역 작가들의 해석을 결합해 과거의 사건을 현재의 삶과 연결된 가치로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오월 참배객 맞이는 매점 재개뿐 아니라 묘지 운영 전반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보훈부는 전날인 27일 약 10개월간 공석이었던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에 이경률 신임 소장을 임용했다. 이 소장은 광주시 인권담당관과 문화체육관광부 옛전남도청복원추진단 전시콘텐츠팀장,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하며 5·I18 관련 정책과 현장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
이경률 국립5·18민주묘지 관리소장은 “5·18민주묘지에 영면하신 민주유공자들의 민주·인권·평화 정신을 계승·확산시키고, 묘지를 국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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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무대 영창 버텼는데”...도청 지킨 기동타격대원 무너진 자부심
1980년 5월26일 도청 최후 항쟁을 위해 결사된 기동타격대원 박영수씨는 2023년 진행된 8차 보상 재심을 신청했지만 올해 4월 1993년 3차 당시 판정을 유지하겠다는 기각 판정을 받았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상무대 영창에서부터 지금까지 46년 동안 혼이 나간 채로 살고 있습니다.”1980년 5월 옛 전남도청 최후 항전에 참여했던 기동타격대원 박영수(64)씨는 지금도 당시 고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내란죄로 실형까지 살았지만 박씨는 신체 장해 정도에 따라 판정하는 5·18 부상자 등급(1~14급)은 인정받지 못한 채 ‘기타상이 1급’에 머물러 있다. 2023년 진행된 8차 보상 재심을 신청했지만 지난 4월 받은 결과는 ‘기각’이었다.11일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에 따르면 박씨는 1980년 5월 당시 18세였다. 계엄군의 무차별 폭행과 시민들의 시신을 목격한 뒤 시민군에 합류했고, 5월26일 오후 옛 전남도청 사수와 광주시민 보호를 위해 조직된 기동타격대 2조에 편성됐다.박씨는 26일 자정을 넘긴 27일 새벽 1시께 공용터미널(현 롯데백화점 광주점) 일대를 순찰하던 중 극심한 피로를 견디지 못하고 인근 여인숙에 들어가 잠시 몸을 눕혔다. 주인이 차려준 밥을 먹고 있던 순간 계엄군 차량이 여인숙 주변을 포위했고, 입구를 향한 집중 사격이 시작됐다고 한다. 박씨는 화장실로 몸을 피했지만 계엄군은 화장실 쪽으로도 총격을 퍼부었고 결국 붙잡힌 그는 도청으로 끌려간 뒤 조원들과 함께 상무대 영창으로 이송됐다.이후 광주교도소에 수감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다고 회상했다.박씨가 1993년 3차 광주민주화운동 보상 심사 당시 제출한 진술서에는 당시 상황이 비교적 상세히 담겨 있다. 그는 포승줄에 묶인 채 곤봉과 군홧발로 머리와 온몸을 짓밟혔고 상무대에서는 매일같이 폭행과 고문이 이어졌다고 진술했다.조사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사람을 죽였느냐”, “총을 쐈느냐”고 물었고 “아니”라고 답하면 곡괭이 자루와 곤봉으로 허리와 척추 등을 집중 폭행했다고 한다. 얼굴에 천을 덮은 채 물을 붓는 물고문과 천장에 매달아 놓고 구타하는 가혹행위도 이어졌다.계엄사령부 재판부는 박씨를 비롯한 기동타격대원들에게 내란실행, 내란부화수행, 계엄법 위반 등의 혐의를 적용했다. 박씨는 내란부화수행 혐의로 장기 1년6개월·단기 1년형을 선고받고 광주교도소에 수감됐다가 1980년 11월7일 집행면제로 풀려났다.그러나 출소 이후 삶도 정상 궤도로 돌아오지 못했다.박씨는 “수사관들이 ‘상무대 영창과 교도소 이야기를 하면 간첩죄로 처벌된다’고 협박했다”며 “겁이 나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몸은 망가졌는데 병원에 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당시 친구들과 동네 주민들이 거동조차 어려운 박씨를 위해 약을 가져다 주기도 했지만 경제적 어려움 탓에 제대로 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결국 박씨는 도망치듯 광주를 떠났다. 이후 30년간 전국을 떠돌며 건설현장 타일공과 목수 조수 일을 전전했지만 오래 버티지 못했다. 극심한 불면과 대인기피증 때문이었다.박씨는 “출소 후부터 몸이 계속 망가졌고 지금도 정신과 약 없이는 잠을 제대로 못 잔다”며 “사람 만나는 게 무서워 도망 다니듯 살았다. 아내를 만나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삶조차 꿈꾸지 못했다”고 말했다.박씨는 오랜 칩거 생활 끝에 1993년 3차 보상 심사 때 처음으로 국가 보상을 신청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부상자가 아닌 ‘구속자’로 인정돼 기타상이 1급 판정을 받았다. 기타상이 1급은 5·18 피해 사실은 인정되지만 현행 신체장해등급 체계로 분류되지 않는 피해자에게 부여되는 별도 등급이다. 5·18 당시 기동타격대원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급수를 받는 부상자로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1993년 3차 보상 신청 당시 부상자로 인정 받았으나 기타 1급 판정을 받아 2023년 8차 보상 신청때 등급 재분류를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사진은 1993년 3차 보상심의위원회와 8차 보상심의위원회 결과. 박영수씨 제공박씨는 2023년 시행령 개정으로 기타상이 1·2급도 재분류 신청이 가능해지자 다시 보상 재심을 신청했다. 상무대 영창 구금 기록과 군사재판 판결문, 고문 피해 진술 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올 4월22일 돌아온 결과는 기존 등급 유지에 따른 ‘기각’ 통보였다.박씨는 “나는 5·18 명예에 누가 될까 봐 돈 이야기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숨어 살았다. 그런데 46년 동안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 살아온 시간까지 없었던 일처럼 느껴져 너무 억울하다”며 “기동타격대라는 이유로 더 심한 고문을 당하고 국가폭력 희생양이 돼 실형까지 살았는데도 행정은 내 삶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소명 기회도 부족했고 왜 기각됐는지도 명확히 설명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양기남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장은 “박씨는 도청을 지키다 붙잡혀 상무대 영창에서 고문을 당하고 군사재판으로 실형까지 산 사람”이라며 “그런데 조사 한 번 제대로 없이 신체검사 결과가 기존 등급과 같다는 이유로 기각됐다. 광주를 지켰다는 자부심 하나로 살아온 사람에게 너무 가혹한 결과”라고 말했다.광주시는 심사는 시행령이 정한 기준으로 등급을 정하기 때문에 등급에 이의가 있으면 재심의를 요청하면 된다는 입장이다.광주시 관계자는 “지정 병원 신체검사 결과를 토대로 장해등급판정위원회가 5·18 관련성, 진술 일관성, 진료 기록 등을 종합 검토해 보상심의위원회에서 최종 판단한다. 기존 등급과 동일하게 판정될 경우 결과는 기각으로 통보된다. 신체장해 등급은 법에서 정한 노동력 상실률 기준에 따라 판단된다”며 “위원회 논의 과정이나 개인별 세부 기각 사유는 비공개 심의 원칙상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박씨는 기각 통보를 받자마자 이의를 신청했으며 내년 중 기각에 대한 재심의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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