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추모의 땅에 묻힌 반역자들"···국립대전현충원 안장 기준의 모순

입력 2025.12.01. 11:20 박소영 기자
현충원에내란·계엄 가담자 다수 안장
5·18 오적 박준병 안치…유족 “모욕적"
반란 막은 자와 완성한 자 나란히
오월 단체 “국립묘지법 개정 이뤄져야”
국립대전현충원 장군2묘역에는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에 맞섰던 장태완 장군(수도경비사령관)의 묘가 안치돼 있다. 바로 왼쪽에는 군사반란의 주역인 당시 보안사 공작 책임자 정도영의 묘가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살인자. 우리 아들·딸들을 무참히 죽인 인간이 여길 왜 들어와 있어. 정말 참담해."

지난 29일 찾은 국립대전현충원. 육군 대장이자 32대 국회의원을 지낸 박준병의 묘 앞에서 김형미 오월어머니집 관장은 눈을 떼지 못한 채 울부짖었다.

박준병은 1980년 5월 당시 20사단장으로 광주 진압 작전을 수행한 인물로, 전두환(당시 보안사령관)·정호용(당시 공수특전사령관)·노태우(당시 수경사령관)·이희성(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5·18 오적'으로 불린다. 그런 비석이 '구국의 영웅'을 모시는 장군묘역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었다.

5·18기념재단은 이날 시민·연구자·단체 관계자 30여명과 함께 '5·18 역사왜곡 현장 탐방'을 진행했다. 탐방 해설을 맡은 정성일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은 국립대전현충원 안장자의 행적을 오래 추적해온 연구자다. 그가 집필한 '대전현충원에 묻힌 이야기'는 왜곡된 국가 기억을 짚어낸 책으로, 올해 세종도서 교양 부문에 선정됐다.

정 팀장은 "국립묘지는 국가가 누구를 영웅으로 남길지를 결정하는 공간"이라며 "반헌법적 폭력의 주체가 아무 걸림돌없이 안장되는 현실을 함께 확인해보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박준병 묘 앞에서는 5·18민주화운동공로자회 김운영 이사는 표정을 굳혔다. 그는 "계엄군에 끌려가 수백 대를 맞고 풀려날 때 박준병 사단장이 '교통비 있냐'고 비웃듯 말하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시민을 향해 무자비한 폭력을 가한 사람이 '공훈'으로 기려지고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며 "반란과 학살 책임이 분명한데도 형사처벌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장군묘역에 누워 있다는 현실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분노했다.

5·18기념재단는 지난 29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아 '5·18 역사왜곡 현장 탐방'을 진행, 현행 '국립묘지법'을 개정하고 국립현충원에 뭍힌 5공화국 주요 인사들의 파묘를 요구했다.

5·18기념재단 기록에 따르면 대전현충원에는 5·18 당시 광주 시민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들이 다수 안장돼 있다. 유혈진압을 승인한 진종채 2군사령관, 전남북계엄분소장을 맡아 작전을 지휘한 소준열 전투병과교육사령관, 광주에 투입된 20사단장 박준병, 1군단 보안부대장 홍성률 등이 대표적이다.

신군부 핵심 인물들 상당수가 국립묘지에 적지 않게 묻혀 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 가담자 34명 가운데 사망이 확인된 18명 중 13명이 국립묘지에 안장돼 있으며, 이 중 10명이 대전현충원, 3명이 서울현충원에 누워 있다. 이들의 묘비에는 하나같이 '충성', '공훈' 등 국가에 헌신한 군인을 상징하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장군 1·2묘역으로 올라가자 영화 '서울의 봄'으로 대중에게 익숙해진 장태완 장군의 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장태완은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 직후 반란군에 맞서 군을 동원해 대응하려 했던 인물이다. 그는 반란을 막으려 했다는 이유로 체포·구금과 강제 예편을 겪었고 이후 반란군 정권 감시 속에 비참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장태완 장군의 묘 바로 옆에는 12·12 반란을 실무로 완성한 보안사 공작 책임자 정도영의 묘가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정 팀장은 "정도영은 도감청·선전·공작 등 반란 실행의 실무를 설계한 핵심 인물이었는데, 장태완 장군과 똑같이 현충원에서 기려지고 있다"며 "이 구조 자체가 국가 기억의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두 비석을 번갈아 살핀 시민 박병호(62)씨는 "반란을 막으려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과, 반란을 성공시킨 사람이 같은 예우를 받는 현실이 충격적"이라며 "누군가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다 파멸했고, 누군가는 쿠데타로 권력을 얻어냈는데 현충원에서는 아무 구분이 없다"고 말했다.

참가자 장상원(25)씨는 "12·12 반란군과 5·17 쿠데타군 인사의 묘를 엄청 많이 목격했다. 인원 수가 여러 명이라는 점에 놀랐다. 최소한 그들의 행적을 알 수 있는 설명문이나 안내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호소했다.

국립묘지 안장 기준을 새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현행 '국립묘지법'은 내란·반란죄로 형이 확정된 사람의 안장을 금지하지만, 신군부 인사 상당수는 무죄 판결 또는 사망으로 재판이 중단돼 이 조항을 피해갔다. 이 때문에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장성·무공훈장 경력으로 국립묘지 안장 대상이 될 수 있는 구조가 유지돼 왔다.

정 팀장은 "지금 기준대로라면 반헌법적 범죄 가담자도, 친일 행위자도 국립묘지에 들어올 수 있다. 기존 안장자의 이장이 어렵다면 최소한 묘비에 '반란·내란·국가폭력 가담 사실'을 함께 명기해 시민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란을 막은 장태완과 반란을 완성한 정도영이 같은 형식의 비석으로 기려지는 구조 자체가 문제이며, 안장 기준 재정비는 선택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위한 최소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5·18기념재단은 "헌정 질서를 파괴한 국가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인 5·18유공자와 마찬가지로 '국가 명예' 공간인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라며 "국가유공자의 기준을 왜곡하고 시민들에게 '누가 유공자인가'라는 혼란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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