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외롭게 떠난 5·18 기동타격대 故 김재귀씨 마지막 길 지킨 동지들

입력 2025.05.14. 17:36 박승환 기자
안장식 기동타격대동지회장으로 거행
동지들 “모든 짐 내려놓고 영면하길”
고 김재귀(61)씨의 안장식이 열린 1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양기남 5·18 기동타격대동지회 회장이 허토를 하고 있다.

"동지여. 그곳에선 모든 짐 내려놓고 행복하길."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홀로 외롭게 떠난 5·18 기동타격대 고 김재귀(61)씨의 마지막 길을 동지들이 함께했다.

동지들은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노태우 처단 투쟁 등 5·18 이후로도 한평생 몸을 아끼지 않고 선봉에 나섰던 김씨를 떠올리며 그가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영면하기를 기원했다.

김씨의 안장식이 열린 1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장으로 치러진 이날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양기남 5·18 기동타격대동지회 회장과 회원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김씨의 유해가 2묘역에 도착해 하관되자 곳곳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관을 멀리서 지켜보던 동지들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유골함 위에 삽으로 흙을 세 번씩 덮는 '허토'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동지들은 "재귀야 이제 밤에 떨지 마", "그동안 따뜻하게 못 대해줘 미안해", "먼저 가 있는 동지들 만나서 편히 쉬어", "그곳에서 남은 동지들 지켜줘" 등의 마지막 말을 했다. "이쁜이 잘가"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기동타격대는 활동 당시 별명을 사용했는데, 김씨는 막내인 데다가 이쁘게 생겼다 해서 별명이 '이쁜이'였다고 한다.

고 김재귀(61)씨의 안장식이 열린 1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한 5·18 기동타격대동지회 회원이 고 김씨에게 경례를 하고 있다.

안장식은 '5·18 유공자 고 김재귀의 묘'라고 적힌 목비를 임시로 세우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임시 목비는 향후 평장와비가 제작되면 교체된다. 평장와비에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5·18 기동타격대 7조원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오래전 동지회를 결성하며 맞춘 비문이다.

유가족 대표 김씨의 아들 김수호씨는 "아버지께서는 평생 5·18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제 모든 짐을 내려 놓고 편히 쉬길 바란다. 아버지를 대신해 5·18 정신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지난 9일 홀로 거주하고 있는 광주 북구 용봉동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7세 때,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이 리어카에 실려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한 그는 곧장 옛 전남도청으로 향해 자발적으로 5·18 기동타격대에 합류했다.

어머니가 도청까지 찾아와 눈물로 집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김 씨는 "시신 옆에서 밥도 먹었는데 어떻게 집에 갑니까. 어차피 시민군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죽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이후 계엄군의 총에 손을 맞고 체포된 그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내란 부화 수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끝에 장기 4년·단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뒤에도 고인은 광주 학살의 책임자 처벌, 5·18 암매장지 발굴, 옛 전남도청 철거 반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 다양한 활동에 앞장섰다.

양 회장은 "재귀는 5·18을 위해서라면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섰다"며 "지난 45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앓아 왔다. 이제는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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