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들 “모든 짐 내려놓고 영면하길”

"동지여. 그곳에선 모든 짐 내려놓고 행복하길."
5·18민주화운동 45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홀로 외롭게 떠난 5·18 기동타격대 고 김재귀(61)씨의 마지막 길을 동지들이 함께했다.
동지들은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노태우 처단 투쟁 등 5·18 이후로도 한평생 몸을 아끼지 않고 선봉에 나섰던 김씨를 떠올리며 그가 모든 짐을 내려놓고 영면하기를 기원했다.
김씨의 안장식이 열린 14일 오전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 2묘역.
5·18 기동타격대동지회장으로 치러진 이날 안장식에는 유가족을 비롯해 양기남 5·18 기동타격대동지회 회장과 회원 등 20여명이 함께했다.
영락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김씨의 유해가 2묘역에 도착해 하관되자 곳곳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관을 멀리서 지켜보던 동지들도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어 참석자들은 유골함 위에 삽으로 흙을 세 번씩 덮는 '허토'를 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
동지들은 "재귀야 이제 밤에 떨지 마", "그동안 따뜻하게 못 대해줘 미안해", "먼저 가 있는 동지들 만나서 편히 쉬어", "그곳에서 남은 동지들 지켜줘" 등의 마지막 말을 했다. "이쁜이 잘가"라는 말이 들리기도 했다. 기동타격대는 활동 당시 별명을 사용했는데, 김씨는 막내인 데다가 이쁘게 생겼다 해서 별명이 '이쁜이'였다고 한다.

안장식은 '5·18 유공자 고 김재귀의 묘'라고 적힌 목비를 임시로 세우는 것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임시 목비는 향후 평장와비가 제작되면 교체된다. 평장와비에는 '불꽃 같은 삶을 살다간 5·18 기동타격대 7조원 여기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오래전 동지회를 결성하며 맞춘 비문이다.
유가족 대표 김씨의 아들 김수호씨는 "아버지께서는 평생 5·18 정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이제 모든 짐을 내려 놓고 편히 쉬길 바란다. 아버지를 대신해 5·18 정신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김씨는 지난 9일 홀로 거주하고 있는 광주 북구 용봉동 빌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7세 때, 계엄군의 총탄에 희생된 시민들의 시신이 리어카에 실려 있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참지 못한 그는 곧장 옛 전남도청으로 향해 자발적으로 5·18 기동타격대에 합류했다.
어머니가 도청까지 찾아와 눈물로 집에 가자고 설득했지만, 김 씨는 "시신 옆에서 밥도 먹었는데 어떻게 집에 갑니까. 어차피 시민군에 들어왔으니 여기서 죽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
이후 계엄군의 총에 손을 맞고 체포된 그는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받았다. 내란 부화 수행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끝에 장기 4년·단기 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받았다.
형 집행정지로 출소한 뒤에도 고인은 광주 학살의 책임자 처벌, 5·18 암매장지 발굴, 옛 전남도청 철거 반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 등 다양한 활동에 앞장섰다.
양 회장은 "재귀는 5·18을 위해서라면 항상 모든 일에 앞장섰다"며 "지난 45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에 들지 못할 정도로 고문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앓아 왔다. 이제는 편히 쉬길 바란다"고 말했다.
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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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으로 되살아난 80년 5월 '안병하 치안감' 극단 도깨비가 지난해 진행한 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쇼케이스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을 향한 발포를 거부해 신군부에 의해 모진 고문을 당했던 고(故) 안병하 치안감의 이야기가 연극으로 돌아온다.극단 도깨비는 오는 21일 오후 7시와 22일 오후 3시 광주 서구 서빛마루문화예술회관에서 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무대를 올린다. 극단 도깨비의 창작극인 이번 작품은 광주문화재단의 광주문화자산콘텐츠화제작지원사업으로 제작됐다.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연극은 45년 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와 전남의 치안을 책임진 인물이었던 안병하 치안감의 삶을 조명한다.공연은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최 기자가 안병하 치안감을 취재하면서 과거 속으로 들어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세상에 순응하며 살고 있던 최 기자는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 격투기 영상을 보고, 학교생활은 '안전'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다 최 기자는 안병하 치안감과 관련된 기획 취재로 지방에 가게 된다.취재를 이어가던 중, 최 기자는 5·18 당시 경찰들의 진압 과정, 신군부의 진압 명령 등의 상황 속에서 안 치안감이 광주 시민을 지키고자 했던 일생을 알게 되고 1980년 5월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현장 속으로 들어가게 된 최 기자는 안 치안감의 선택의 순간을 같이 하면서 지금의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작품은 이재의 작가의 '안병하 평전'을 원작으로, 극작과 연출은 최용규가 맡았다. 안병하 역에 김예성, 전임순 역에 김수옥, 최 기자 역에 송민종을 비롯해 총 12명의 배우가 무대에 오른다.극단 도깨비가 지난해 진행한 연극 '경찰은 시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없다' 쇼케이스연출을 맡은 최용규 씨는 "기획 단계에서 동료들에게 안병하 치안감을 아느냐고 물으면서 시작했다"며 "이 공연을 통해 5·18 당시 광주 시민을 지킨 안병하 치안감의 위민 정신과 숨겨진 영웅들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1928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난 안병하 치안감은 한국군 최초로 압록강에 도착한 초산부대 지휘관 출신으로, 1962년 총경으로 경찰에 투신했다. 안 치안감은 1980년 5월25일 광주를 방문한 최규하 당시 대통령 앞에서 "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며 발포 명령을 거부했고, 이에 전남도경 국장 직위가 해제되고 보안사로 연행돼 8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는 1988년 10월10일 고문 후유증으로 8년간 투병 중 별세해 현재 국립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공연 티켓은 전석 1만원이며, 현장 구매만 가능하다.한편 극단 도깨비는 '온 가족에게 재미와 웃음'이라는 슬로건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왔으며 최근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주제로 한 인권 인형극과 민주 평화 아동극, 성인극 등을 시리즈로 제작해오고 있다.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김종찬기자 jck4151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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