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출판사 '무제' 설립해
최근 김금희 작 '첫 여름, 완주' 발간
시각장애인 위한 오디오북 프로젝트
한강 작가 특유 시선·목소리에 애정
'하얼빈' 촬영 당시 광주 책방 방문해
"지역의 다양한 이야기도 다루고 싶어"

'소외된 것을 위하여'
배우 박정민은 2019년 돌연 출판사 '무제'를 설립했다. 영화 '동주'의 송몽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유이, 드라마 '지옥'의 배영재 등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 그가 선택한 새로운 무대는 '책'이다. 스낵 컬처가 부상한 시기, 텍스트 기반 콘텐츠에 대한 실험은 그의 출판 철학처럼 '이름 없는 것들에 대한' 낯선 도전이었다.
최근 출판사 무제는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작품으로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첫 여름, 완주'를 발간하고, 지난 17일 서울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북토크를 열었다.
무등일보는 지역 책방의 소멸과 독립출판사의 생존 위기가 맞물리며 다양성의 목소리가 약해지고 있는 현실 속에서, '소외된 것'에 주목하며 다양한 연대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정민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박 대표는 신작에 얽힌 이야기와 무제를 통해 확장해나가고자 하는 출판의 방향성, 그리고 그 속에서 지역성과 연대의 가능성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편집자주>
박 대표가 무제를 시작한 계기는 책방을 운영하던 시절, 막연하게 '책을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됐다. 그는 "출판사의 이름을 '무제'로 지은 이유도 그래서다. 아무 생각 없이 시작을 하다 보니 이름을 짓는 것이 어려워 '제목 없음'이라는 뜻으로 '무제'로 출발하게 됐다"며 "박소영 작가가 쓴 무제의 첫 책 '살리는 일'을 만들면서 어쩌면 '무제'라는 이름이 '이름 없는 것들을 위한' 이름이 되어드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이름 없는 것들에 대하여', '소외된 것을 위하여'와 같은 회사의 방향성이 설정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처럼 무제의 모토는 '소외된 것을 위하여'다. 박 대표는 이 모토와 관련해 지역의 이야기를 다룬 적은 없지만, 앞으로 더 공부하고 싶다는 의지를 전달했다. 그는 "어떤 지역이든 스피커가 될 만한 것이 있다면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며 "특히 광주·전남 지역에는 여러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배우로서 활발하게 활동 중임에도 책방에 이어 출판사까지 이끌게 된 박 대표는 책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문난 팬이기도 한 그는 한 작가가 '잊고 살지만 잊고 살지 않아야 할 것들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선'을 사랑한다고 역설했다. 박 대표는 "한 작가의 담담히 울부짖는 목소리를 사랑한다. '아름다운 슬픔'을 사랑한다"며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셨을 때 행복하고 감사했고, 한편으로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신간 '첫 여름, 완주'는 '너무 한낮의 연애', '대온실 수리 보고서' 등을 쓴 김금희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다. 주인공 손열매가 자신의 돈을 들고 사라진 절친 고수미를 찾아 헤매다 수미의 고향 완주를 찾아가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았다. 이 책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듣는 소설 프로젝트'의 첫 결과물로, 기존 서사와는 달리 오디오북에 최적화된 원고로 제작됐다. 배우 고민시, 염정아, 김의성 등이 재능기부 형태로 녹음에 참여해 완성도를 더했다. 앞서 박 대표는 지난 23일 세계 책의 날을 맞아 ‘첫 여름, 완주’ 오디오북을 한국장애인재단에 기증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듣는 소설' 프로젝트는 시력을 잃으신 아버지를 위해 시작된 프로젝트다. 내가 하는 일로서 아버지에게 무언가 선물을 드릴 수 있다면 평소 하지 못하는 효자 노릇도 해볼 수 있겠다 싶었고, 그래서 오디오 북을 먼저 만드는 책을 구상하게 됐다"며 "이는 비단 아버지뿐 아니라 아버지와 같이 눈이 불편하신 분들에게 선물이 되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정체를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사명감이 생겨 최선을 다해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평소 김금희 작가의 글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한 명의 독자이다. 특히 김 작가가 쓰는 '대사'들에 감복할 때가 많다"며 "대사가 더 많은 반(半) 희곡 형식의 '듣는 소설'과 가장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해 조심스레 제안을 드렸는데, 놀랍게도 동참해주셔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밝혔다.

책을 향한 애정으로 시작한 일들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몇 해 전 책방을 운영할 당시 박 대표에게도 여느 책방지기들처럼 운영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닥쳐오기도 했다고. 그는 "책을 파는 것은 낭만을 파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서 서점, 특히 동네 서점은 많은 사람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준다고도 믿는다. 많은 책방지기들이 힘들 것을 안다"며 "동네의 책방 곳곳에 종종 찾아뵙겠다"고 전했다.
그는 영화 '하얼빈' 촬영차 광주에서 보름께 머물렀을 때 광주의 작은 책방을 찾았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박 대표는 "촬영 중 쉬는 날 '책과 생활'이라는 작은 동네 책방에 들른 적이 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꽤 시간을 보내다 온 것으로 기억한다"며 "말 그대로 전쟁 같은 촬영 사이에서 잠시나마 낭만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래도록 남아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찾아보니 아직 그 자리에서 운영 중이신 것 같다. 이렇게 동네 책방들은 독자로 하여금 하나의 추억으로 남는 것도 같다"고 회고했다.
무제는 외부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동시에 박 대표의 취향과 관점이 담긴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출판사를 시작하면서 '만약 내가 책을 다시 쓸 일이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 만들지는 않겠다'고 결심했다. 조금 남사스러운 일이 아닐까 해서였다"며 "그런데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나의 글을 제일 잘 이해하는 것은 주변 동료들일 테니 만약 그럴 일이 있다면 우리 회사에서 만드는 것이 가장 적절하겠다 싶기도 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빠르게 변화하는 출판 환경 속에서 무제의 운영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책은 늘 그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없어질 수 없다. 수천 년의 시간 동안 인간의 옆에는 늘 책이 있었고 지금도 그러하다는 것이 증명이다"며 "물론 형태와 형식, 그리고 수요는 시절마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 용기를 얻고 지금처럼 꾸준히 만들 예정이다. 구체적인 기획이나 바람은 없지만, 회사의 철학을 꺾지 않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정민 대표는 지난 17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김금희 작가와 함께 대담자로 나서 '첫 여름, 완주' 북토크를 진행했다. 도서관의 날, 장애인의날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기념해 마련된 이번 행사는 장애인 독자를 초청해 신간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꾸며졌다. 책 '첫 여름, 완주'는 이달 말 오디오북 플랫폼 윌라를 통해 정식 서비스를 시작하며, 종이책은 내달 출간될 예정이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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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시조로 펼쳐낸 삶의 사유와 서정 글은 삶의 시간과 풍경을 펼쳐내는 캔버스이다.경제학자에 이어 시인으로 인생 제2막을 채우고 있는 정언(柾彦) 손형섭씨가 제2시조집 '새벽'(도서출판 서석刊)을 펴냈다.그는 지난 2023년 '월간문학' 신인상 등당으로 시조시인의 이름을 얻고 지난해 5월 첫 시조집 '눈 내리는 저녁'을 펴낸 뒤 1년 만에 두 번째 시조집을 발표했다.이번 시조집에는는 단시조(短時調)만 100편이 실렸다.1부 '첫차', 2부 '고향의 강', 3부 '가을 산책', 4부 '첫눈' 등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4계절에 관해 각각 17편씩 68편을 수록했다. 5부 '인연'과 6부 '전라도여'에는 삶과 시대에 대한 32편을 담았다."아련히 들려오는/ 조선 닭 울음소리// 눈곱 낀 찬바람이/ 창문을 두드린다// 새벽은/ 새날을 믿는/ 희망이요 출발이다"('새벽'전문)동트기 전 눈을 뜨며 이를 하루를 시작하는 시인은 창으로 몸을 움직이며 새로운 문을 연다.어느새 황혼에 이른 나이에도 아침은 늘 새롭고 인생은 설렌다.그가 말하는 아침은 희망이자 출발이며 행복이며 기쁨이다.손 작가는 시인의 말에서 "시조는 정형률에 더한 민족 고유의 시이고, 품격을 얹어 감동을 우려낼 수 있어서 단시조를 쓰고 싶었다. 45자 내외의 짧은 언어로 사물에 대한 사유와 서정을 정형 틀로 담아내고 싶었다"면서 "그것은 고려 말부터 우리 선조들이 조상 대대로 즐겨 노래했던 멋과 풍류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우리 민족의 문학적 양식이므로 우리의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이어 "그러나 막상 단시조를 쓰면서 느낀 것은,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단, 한 편의 단시조를 쓰기 위해 얼마나 깊은 사색과 성찰이 필요한 것인가를 배우게 되었다"며 "따라서 '빈 항아리'란 나의 단시조 한 편을 소개하면서 시인의 말로 대하고자 한다"고 적었다.'몇천 번/ 다그쳐야/ 둥글게 되는 걸까// 몇천 도/ 견뎌 내야/ 소리가 나게 될까// 몇천 년/ 기다려야만/ 체워질 수 있을까.' (빈 항아리)손형섭 시인은 1942년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상고와 전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를 나와 전남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국립목포대학교에서 대학원장·사회대학장·경영행정대학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지난 2007년 정년퇴임 후 고(故) 문병란 시인의 서은문학연구소에서 시 창작을 수강하며 늦깎이로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75세인 2017년 '문학예술' 봄호에 시 부문 신인상을, 가을호에 수필 부문 신인상을 각각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이후 왕성한 창작욕으로 시집 '별빛', '파도', '만추', '겨울 나그네' 등 4권과 수필집 '삶의 흔적', '추억', '아무려면 어떠랴' 등 3권을 발간했다.또 2023년 '월간문학' 9월호에 시조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뒤 2024년 첫 시조집 '눈 내리는 저녁'을 펴냈다. 한국문학예술가협회 광주전남지회장과 광주시문인협회 이사를 지냈고, 현재 한국문인협회 이사와 국제펜 한국본부 이사, 광주시시인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광주시시인협회 문학작품상, 도서출판 서석 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문학상 등을 받았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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