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 외길 36년···가구로 '느림의 미학'을 전하다

입력 2025.09.11. 10:28 최소원 기자
[화제의 인물-최광문 소목장]
19세부터 시작 나주서 창작활동
활동 초창기 부상으로 엄지 잃어
한옥 부재 활용 특유 깊은 맛 가미
동·서양 매력 조화 …'퓨전' 특징
업계 불황에 아르바이트 병행도
"가구는 함께 나이드는 귀한 생명"
최광문 소목장이 자신이 만든 가구를 소개하고 있다.

그의 부르튼 손바닥은 나이테와 같다. 수만 번 나무에 쓸리고, 날카로운 면에 베여 거칠어진 손바닥은 오롯이 한 길만 걸어온 세월을 말해준다. 오른손 엄지는 한 마디가 짧아져 있지만, 그것은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삶을 증명하는 훈장처럼 보인다. '나무의 근원'이라는 뜻을 담은 그의 호 '목원(木原)' 역시 이런 삶의 궤적과 닮아있다. 호처럼 그는 나무를 단순한 재료가 아닌, 함께 숨 쉬고 시간을 쌓아가는 벗으로 여긴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나무는 소년에게 열매를 주고, 가지를 내어주고, 줄기마저 내어주더니 결국엔 밑동까지 내어준다. 얼핏 무익해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최광문 씨에게도 나무는 그런 의미다. 그에게 나무는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재료가 아니라, 삶을 지탱하고 영감을 주는 근원이다.

나주에서 소목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최 씨는 열아홉 살 때부터 나무와 함께했다.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는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창작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광문 소목장

◆열아홉부터 시작된 나무와의 인연

최 씨가 주로 제작하는 것은 나무 가구다. 시중에 판매되는 가구들과 달리 그의 작품은 철거된 한옥에서 나온 부재를 활용해 만들어진다. 보통 원목은 베어낸 뒤 몇 년간 말려 숨을 죽이고 나서야 작업에 들어가지만, 이미 충분히 말라 숨이 죽은 옛 나무를 사용하면 그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무엇보다도 한옥에 사용되었던 나무는 세월의 질감이 그대로 남아 있어 깊은 맛을 내는 장점이 있다.

순천에서 태어난 최 씨는 광주농고(현 광주자연과학고)에 진학하면서 광주로 올라왔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부터 광주의 공방을 돌며 가구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여름방학 취업반에 들어가 진로를 모색하던 그는 한 달에 네 번이나 집을 옮겨 다니며 직업을 탐색했고, 마지막에 전통 가구를 만드는 공방에 들어가게 됐다. 그는 "스무 살 무렵, 기계의 성능도 제대로 모른 채 시키는 일만 하다 오른손 엄지를 잃었다"며 "일을 막 배우던 시절 다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손가락 한 마디만 다친 게 다행이지, 일을 못할 정도로 크게 다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어릴 적엔 단순히 직업 하나 가져야겠다는 생각으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천직처럼 느껴진다"며 "대목(大木)이었던 할아버지에게 직접 가구를 배우진 못했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할아버지의 유전자가 작용한 것 같다"고 웃었다.

최광문 소목장이 30대 때 제작했던 장식장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의 보람

그는 "가구를 키우면 집이고, 집을 줄이면 가구다"라고 말했다. 현재는 가구 제작이 주된 활동이지만, 30대까지는 집까지 지어내던 다재다능한 목수였다.

최 씨의 장식장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은 동양과 서양의 매력이 어우러진 '퓨전 가구'라는 점이다. 유럽풍 장식장을 우리나라 정서에 맞도록 소박하게 풀어냈다. 형태는 유럽식이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적이어서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한다. 어린 시절 익힌 전통 가구 제작 기술에 서양의 감각을 접목해 새로운 작품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최광문 소목장의 장식장

그가 소목장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머릿속에 그린 상상이 스케치를 거쳐 실제 가구로 탄생하는 과정을 볼 때다. 특히 퓨전 가구를 만들 때는 소비자들이 자신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 기대하며 설렘을 느낀다고 한다.

그의 애착이 가장 깊은 작품은 서른 살 무렵 만든 장식장이다. 이 작품을 계기로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가구를 본격적으로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주에 위치한 최광문 소목장의 작업실

나주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은 최 씨의 성격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다. 문을 열면 은은한 나무 향이 반기고, 곳곳에 쌓인 목재는 그의 손길을 기다리듯 가지런히 놓여 있다. 그의 작품 대부분이 큰 규모여서, 혼자 쓰고 있는 작업실 또한 넓다.

최근 현대인들의 취미생활로 '원데이 클래스' 같은 체험 프로그램이 늘고 있지만, 그는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보다는 직업으로서 나무를 다루려는 이들에게만 기술을 전수하고 있다. 그는 "가구를 배우고 싶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을 소개한다"며 "나는 가르칠 때 온 열정을 쏟아 알려주기 때문에, 취미로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이 될 수 있다. 일단 다른 목수들에게서 기본기를 익히고 오게 한다"고 말했다.

최광문 소목장이 자신이 만든 가구를 소개하고 있다.

◆기계 날조차 닳지 않는 불황에도 창작 활동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가구 업계에 몸을 담다 보니 크고 작은 시련도 숱하게 겪었다. 최 씨가 스무 살이던 해, 가구 수입 자율화가 시작되면서 국내에서 제작된 가구의 소비가 급격히 줄었고 그때부터 업계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IMF 외환위기, 최근에는 코로나19까지 굵직한 위기가 한 번씩 찾아올 때마다 가구점들은 하나둘 문을 닫았고, 그 모습을 지켜볼 때마다 마음이 무겁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내가 만드는 가구는 일반 가정집을 대상으로 하기보다 대형 상가나 호텔 로비처럼 넓은 공간에 배치해 조형물로서 기능하는 작품에 가깝다"며 "그러다 보니 특정 수요층에게만 팔리곤 했는데, 코로나 직전 갑자기 가구를 찾는 사람이 늘어 '드디어 이런 날이 오나 싶다' 싶었지만, 팬데믹이 터지면서 모든 게 순식간에 멈춰버렸다"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처럼 시장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몇 해 전부터는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다. 가구 제작 대기업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면서 개인 목수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업계 전반의 침체를 실감했던 순간은 뜻밖에도 기계 전문점에서였다. 최 씨는 "가구 제작자들이 쓰는 기계의 날을 전문적으로 갈아주는 곳이 있는데, 최근에 날을 갈러 갔더니 주인장이 '요즘은 일이 없다'고 하더라"며 "가구를 만들어야 기계가 닳고, 날이 마모돼 손님이 찾아올 텐데 그렇지 않다는 건 나뿐만 아니라 업계 전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시중에 판매되는 가구와 최 씨 작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칠'의 유무다. 그는 주로 소나무를 사용해 작품을 만드는데, 나무 본연의 질감과 특성을 살리기 위해 오일만 바를 뿐 별도의 색을 덧입히지 않는다. 칠을 하지 않은 가구는 해를 거듭할수록 자연스럽게 색이 변해 매년 새로운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을 선사한다. 그러나 칠을 하지 않으면 온도와 습도의 변화에 따라 목재가 갈라지기도 한다. 이에 최 씨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담아 균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그는 "내가 만든 가구와 함께 있으면 그것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느껴진다. 해마다 색이 달라지고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일수록 정적인 가구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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