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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근의 잡학카페
재정적·시간적 여유가 없던 시대에는 취향과 취미가 사치로 여겨졌다. 그러나 어느 시대에서나 개인의 개성과 정체성을 표현하는 취향은 하나의 문화적 언어였다. 오늘날 취향은 단순한 기호를 넘어 불확실한 시대를 견디기 위한 심리적 생존 전략이 되었다.
최근 확산된 비움의 ‘클린(Clean)’과 채움의 ‘클러터(Clutter)’는 표면적으로 상반된 미학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흐름은 모두 ‘예측할 수 없는 시대를 어떻게 견딜 것인가’라는 동일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오늘날 사회는 과도한 경쟁, 관계의 유동성, 경제 및 고용 불안, 주거 문제, SNS가 만들어 내는 비교 문화 등 다양한 위험이 일상화된 사회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가 보여 주듯, 구조적 불안은 점차 개인의 심리적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개인은 이러한 사회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방과 책상, 옷장, 몸 관리 등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취향에 따라 관리하며 안정감을 회복하려 한다.
클린 미학은 이러한 심리를 잘 보여 주는 사례다. 절제된 색감, 미니멀한 공간, 정돈된 생활과 규칙적인 루틴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현실 속에서 질서를 회복하려는 심리적 시도다. 정돈된 공간은 인지적 부담을 줄이고 심리적 안정감을 높인다. 따라서 정리는 단순한 청소가 아니라 불안을 조절하는 자기 돌봄의 기술인 셈이다.
하지만 질서는 쉽게 새로운 규범으로 변한다. 미셸 푸코가 지적했듯 현대의 권력은 외부에서 직접 강제하기보다 개인이 스스로를 관리하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오늘날 정리 정돈은 성실함과 자기 관리 능력을 상징하는 문화적 기준이 되었다. 깔끔한 삶은 성공적인 생활 양식으로 소비된다. 그 결과 정리는 치유의 기술인 동시에 자기 검열의 기술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미니멀리즘이 어느새 또 하나의 사회적 규범으로 변모했음을 보여 준다.
반대로 클러터와 맥시멀리즘은 채움을 통해 불안에 대응한다. 사람들은 여행 기념품, 오래된 티켓, 포스터, 인형, 문구류 등을 수집한다. 이러한 물건들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삶의 시간을 저장하는 기억의 매개체다. 발터 벤야민이 말했듯 수집은 시간을 보존하는 문화적 행위이며, 물건은 기능을 넘어 개인의 경험과 감정을 담는 상징이 된다. 따라서 채움은 소비를 넘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심리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움과 채움 모두가 소비 사회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미니멀한 삶을 실현하기 위해 정리 용품과 수납 시스템, 감성적인 가구를 구매한다. 반면 맥시멀한 취향을 표현하기 위해 굿즈와 디자인 소품을 끊임없이 소비하기도 한다. 오늘날의 취향은 순수한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 사회적 구조 속에서 형성되는 문화적 실천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늘날의 취향은 구조적 불안에 대응하는 심리적 선택인 동시에 소비 사회의 논리가 작동한 결과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현대 자본주의는 불안 자체를 새로운 시장으로 전환한다. 사회는 불안을 만들어 내고, 개인은 취향을 통해 이를 완화하려 하며, 시장은 정리와 감성, 빈티지와 브랜드를 통해 심리적 안정감을 상품으로 판매한다. 미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영역을 넘어 감정을 관리하는 산업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취향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취향이 삶을 지탱하는 도구인지, 아니면 삶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변질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비움만이 자기통제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거나, 채움만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또 다른 불안의 메커니즘이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가 성찰해야 할 것은 어떤 취향이 더 우월한가가 아니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왜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공간과 몸 관리에 집중하는가이다. 또한 사회가 만들어 낸 불안을 스스로 극복하기보다 시장이 마련한 선택지에 휩쓸리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해야 한다. 이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취향과 자기 관리의 문제로 환원하는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때 필요한 것은 완벽한 미니멀리스트도, 완벽한 맥시멀리스트도 아니다. 각자는 주체적인 취향을 통해 마음의 안정과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 때로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소한 것들을 만들고 가꾸며, 삶의 의미를 회복할 수 있는 마음속 꽃밭을 가꾸어야 한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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