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타인이 만든 제2의 이름은 찬사인가 감옥인가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입력 2026.06.21. 14:28
■김용근의 잡학카페

■김용근의 잡학카페

이름은 씨족 사회의 부산물로 지어진다. 씨족의 고향인 본관과 직업, 서구의 성씨, 그리고 서열인 항렬로 고정되고, 여기에 고유한 이름이 붙는다. 이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지어지고, 성장하면서 성격과 재능에 따라 또 다른 수식어, 곧 제2의 이름인 별명이나 ‘호(號)’가 붙는다. 별명은 극단적인 비유가 대부분이지만, 호는 자기 긍정의 수용이다.

제2의 이름은 한 존재를 해석하는 방식의 언어이다. 인간은 자신이 불리는 이름 속에서 타인의 시선을 만나고, 그 시선을 통해 스스로를 다시 구성한다. 반복되는 호명은 단순한 말의 습관을 넘어, 한 사람의 내면에 보이지 않는 형상을 새긴다. 다정한 이름은 존재가 자신을 긍정하도록 이끌지만, 조롱의 별명은 존재를 부정의 의미 안에 가둔다.

이름은 존재를 향한 문이며, 별명은 그 문에 새겨지는 또 하나의 표지다. 우리는 불리는 방식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때로는 그 이해에 갇힌 채 살아간다. 좋은 별명은 사람을 속박하지 않고, 그가 더 넓은 자기 자신으로 나아가게 한다.

특히 천재적 재능을 지닌 음악가에게 제2의 이름을 인간 밖의 영역으로 넘기는 경우가 있었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파가니니에게 붙은 이름은 ‘악마의 소리’, ‘악마의 연주자’였다. 그는 지옥의 문턱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자처럼 보였다. 반면 베토벤과 리스트는 하늘에서 내려온 성자나 신의 손처럼 숭배되었다. 이런 제2의 이름인 별명은 모두 찬사이면서 동시에 감옥이었다. 인간이 도달한 극단의 재능을 사람들은 인간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가니니의 음악은 인간의 한계를 조롱했다. 가느다란 현 위에서 그의 손가락은 현란함을 넘어 거의 기괴하게 질주했다. 사람들은 상상의 정도를 넘어 그가 악마와 계약하여 연주한다고 믿었다. 공동체가 이해하지 못하는 재능을 신성화하거나 악마화하는 것은 한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방식이다.

베토벤과 리스트는 악마의 반대편에 있었다. 이들은 무대를 신의 제단으로 만들었다. 이들의 곡과 연주는 음악이 아니라 기적을 목격하는 대상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베토벤을 ‘음악의 성자’라 부르고, 리스트를 ‘신이 내린 존재’라 부르는 말 역시 잔인하다. 이들의 인간적인 노력과 고통은 흐릿한 배경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음악의 지평을 넓힌 위대한 음악가이자 인간이었지만, 죽음 후에도 별명은 영향을 주었다. 파가니니의 죽음 후, 그의 장례는 ‘악마’라는 꼬리표 때문에 신의 대리인인 신부에 의해 거부되었다. 그의 시신은 신의 섭리가 깃든 교회나 마을 안이 아닌, 성 밖의 악마의 영역으로 밀려났다. 방부 처리된 그의 시신은 지하실, 병원, 공장 등을 떠돌며 36년 동안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 이는 별명이 신과 악마의 상징성으로 그를 분리시킨 결과였다. 그러나 결국 교황과 파르마 공국의 허락으로 1876년에 이르러서야 이탈리아 파르마의 빌레타 기념 묘지에 정식으로 묻힐 수 있었다. 그 별명은 아직도 그의 재능보다 크게 울린다.

베토벤은 음악의 성자, 곧 성인이라는 뜻으로 ‘악성’이라 불린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사람들은 그의 성스러움을 간직하기 위해 머리카락과 여러 물건을 나누어 가졌고, 얼굴을 석고로 떠 데스마스크를 만들어 성자를 기렸다. 베토벤의 장례식은 빈 시민 수만 명이 애도한 대규모 국가적 행사였고, 군중이 너무 많이 몰려 관이 단 1㎞를 이동하는 데 3시간이나 걸렸다. 그는 음악의 성자로 안식하였다.

리스트의 장례는 작곡가 바그너를 중심으로 독일 바이로이트의 묘지에서 치러졌고, 그는 신이 내린 음악가로 안식하였다. 이후 이 도시는 음악 도시가 되었고, 부다페스트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박물관이 세워졌다. 별명은 삶을 설명하는 듯하지만, 때로 삶을 가둔다. 음악 천재의 마지막 거처는 하늘도 지옥도 아니라 음악 안에 있다.

우리에게는 극단의 별명보다 이름 앞에 아름다운 ‘호(號)’와 ‘아호(雅號)’가 있다. 호는 그 사람을 어떤 태도로 대할 것인가를 드러내는 언어적 예의이며, 인격과 사상, 삶의 방향을 담은 예술적·문학적 언어이다. 백범, 난설, 추사, 퇴계 등의 호는 서구적이고 극단적인 비유의 별명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장 짧고 따뜻하게 함축된 호는 존재를 존중과 가능성의 자리로 초대하는 언어이다. 현대 사회에서 별명이나 가명의 닉네임이 아닌, 주체적인 아호를 쓰는 문화의 부활이 필요하다.

김용근 학림학당 학장, 창의융합공간 SUM 대표

슬퍼요
0
후속기사 원해요
1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전남광주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