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칼럼] 교실이 작아질수록 배움은 두꺼워진다

@김경훈 대촌중앙초등학교 교사 입력 2025.11.04. 17:56
김경훈 광주 대촌중앙초등학교 교사

지난 9월 교육부·경기도교육청·충청북도교육청이 공동 주최한 교육정책네트워크 토론회에서 "학생 수가 줄었다고 수업의 품질까지 줄일 수는 없다"는 말이 나왔다. 핵심은 분명하다. 교원 정원은 줄일 대상이 아니라 제대로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이 원칙은 더 직접적으로 작동한다.

아침 첫 시간 교실을 떠올려 보자. 전날 수학에서 문장제 풀이를 어려워하던 아이가 있다. 얼굴이 무거운 아이도 있다. 말하기는 활발하지만 받아쓰기에서 자주 막히는 아이도 있다. 보통 한 반에 24명 가까이 되면 이런 신호를 그때그때 붙잡기 어렵다.

반대로 학급 인원이 줄면 교사는 한 명 한 명의 학습과 정서를 살피며 즉시 재수업과 개별 피드백을 제공할 수 있다. 이건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테네시주의 프로젝트 STAR 실험은 초등 저학년 학급을 약 13~17명으로 줄였을 때, 보통 학급(약 22~25명)보다 성취도가 유의미하게 올랐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초등학교는 "한 줄로, 같은 진도"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어의 읽기 유창성 지도, 수학의 기초 연산 보정, 과학·사회 탐구 활동, 체육·미술·음악의 개별·소집단 활동, 창의적 체험활동의 프로젝트 수업, 심리·정서·행동 지원, 특수·다문화 지원, 돌봄교실까지 교실 옆과 앞·뒤에서 동시에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데 학생 수에만 맞춰 교사 수를 줄이면 가장 먼저 축소되는 것은 소규모·개별화 지도와 보충·심화 학습이다. 학생 수는 줄었는데 배우는 기회까지 줄어드는 모순이 생긴다. 정원은 학생 수만이 아니라 학교가 실제로 운영하는 수업과 지원 활동을 기준으로 정해야 한다.

현장의 장면으로 바꿔 보자. 초등에서는 두 명의 교사가 동시에 들어가는 이른바 '팀티칭'이 현실적으로 드물다.

그렇다면 가능한 방식으로 소집단 재수업, 순회 개별지도, 동학년 분담 수업(예: 동시간대 분반 운영), 교과전담과의 협력(영어·체육 등)을 촘촘히 돌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담임 1명만으로는 부족하다. 학급 보조 인력, 전문상담(Wee 클래스)교사, 특수교사, 다문화·한국어 지원 인력, 보건·돌봄 인력이 함께 서야 한다. 정원이 빠듯하면 학생들의 맞춤형 수업은 끊기고, 개인별 피드백 시간은 줄어들며,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더 뒤처진다.

교사 번아웃 문제도 정원과 맞닿아 있다. 담임은 수업만 하지 않는다. 상담, 생활지도, 학부모 소통, 학교 행사, 교육행정 업무가 겹친다. 정원이 충분하면 수업·상담·행정을 역할 재설계로 나눌 수 있다. 교육행정은 시스템과 별도 인력이 맡고, 교사는 수업과 학생 상담에 집중한다. 광주교육 종합실태조사 설문에서도 업무가 과할수록 수업 준비와 상담의 질이 떨어진다는 응답이 일관되게 나타난다. 정원 확보는 곧 수업의 질과 교사 회복력의 확보다.

지역 격차도 빼놓을 수 없다. 농산어촌의 작은 학교일수록 한 교사가 여러 교과 및 업무를 떠안고, 돌봄교실까지 책임지는 경우가 많다. 학생 수만 보고 정원을 줄이면 작은 학교부터 먼저 타격을 받는다. 국내에서도 도서‧벽지와 농산어촌 소규모학교에 대해 교육부 지침과 시‧도교육청 정원 기준에서 가산 배치와 특례를 운영하고 있다(「도서‧벽지 교육진흥법」에 따른 지정, 복식학급·분교장 운영 가산 등). 다만 지역 여건 차가 큰 만큼, 학교 유형과 지역을 더 정밀하게 반영한 최소 배치 기준을 한층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늘려야 할까. 방법은 단순하다. 첫째, 학급 규모의 목표치는 학교급(초·중·고)과 지역 여건(도시·농산어촌 등)에 차등을 두어 설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목표가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려면, 법·규정·협약으로 학급당 학생 수의 '상한'을 명확히 정해 관리해야 한다. OECD 자료에서도 다수 국가가 이런 방식으로 기준을 제도화하고, 초등 저학년은 더 작게, 농산어촌은 별도 특례를 두는 식으로 차등 적용한다. 우리도 초·중·고 및 지역 유형별 상한선을 명시하고, 소규모학교·복식학급에는 추가 감산 기준을 적용하자. 둘째, 학교 정원 산정 기준을 다층화하자. 모든 학교에 필요한 기초정원(담임·전담·행정지원)을 보장하고, 소집단 수업·특수·상담·다문화·돌봄 등 교육수요에는 추가정원을 더한다. 농산어촌 등에는 지역 가산을 붙인다. 셋째, 재정 운영 방식을 바꾸자. 교사 인건비는 경기와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사업 예산은 효과를 따져 운영한다. 그래야 "과제는 늘었는데 정원은 그대로"라는 모순이 줄어든다.

이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학급 규모 축소와 맞춤형 수업 확대는 문해·수해 기초 실력을 끌어올린다. 취약 집단의 학력 격차 완화에도 효과가 있다(프로젝트 STAR, 1999). 담임 1인당 학생 수가 줄면 관찰·상담 시간이 늘고, 위기 신호의 조기 발견 가능성이 커진다. 교사의 번아웃은 낮아진다. 창의적체험활동·탐구 수업이 살아나면 아이들의 흥미와 진로 탐색의 싹이 자란다. 성적 향상, 격차 완화, 안전한 학습 환경이라는 세 가지 목표가 동시에 앞당겨진다.

결론은 분명하다. 교원 정원 확보는 비용이 아니라 투자다. 학생에게 배움의 권리를 지키고, 교사에게 수업의 시간을 돌려주며, 지역에는 학교라는 생활 인프라를 유지한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 시대일수록 수업은 더 개별화되고 돌봄은 더 섬세해져야 한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교원 정원을 제대로 세우는 것이다. 내일 아침 교실 문이 열릴 때, 선생님이 맞춤형 수업과 학생 상담 사이에서 허덕이지 않도록 충분한 교사 배치가 먼저 서 있어야 한다. 그러면 교실은 더 안전해지고, 배움은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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