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난해 강진 참 수고 많았고, 2026년 다시 힘차게

@곽복률 강진군청 문화관광홍보담당관 입력 2026.01.04. 14:17
곽복률 강진군 문화관광홍보담당관


시골 건너 마을에 올해 아흔다섯을 넘긴 '엄마'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을 곁에서 함께하기 위해 삶의 자리를 고향으로 옮긴 딸이 있다. 나보다 한 해 아래 후배다. 학창 시절, 황순원의'소나기'를 읽을 때 누구보다 먼저 마음을 적시던 아이가 이제 중년의 숙녀가 되어 돌아왔다.

도시에선 분주하게 흘러가던 시간이 고향에선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쌓인다. 아흔다섯 해를 살아낸 어머니의 하루를 곁에서 바라보는 일은 과거를 돌보는 일이자, 미래를 다시 배우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지난해의 강진도 그랬다. 빠르게 자랑할 일만 모아두기에는 너무 많은 땀과 인내의 시간이 먼저였다. 기후가 제 마음대로가 아니어서 '벼 잎 깨씨무늬병'이 번졌고, 논두렁엔 걱정이 먼저 내려앉았던 해였다. 그럼에도 농민들은 포기 대신 손을 더 거칠게 만들었고, 각자의 생업 속에서 끝내 소득이라는 결실을 지켜 냈다.

장사 또한 쉬운 해는 아니었다. 상가 곳곳에 '임대'라는 종이가 붙는 시대, 강진읍의 골목과 상점들은 서로를 불러 세우며 버텨냈다. '반값여행 성공다짐대회'라는 이름 아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손을 맞잡았고, 사람의 발걸음은 다시 상권을 데웠다.

재정이 넉넉해서가 아니라 군민의 삶이 먼저였기에, 강진군은 전액 군비로 군민 1인당 20만원의 '군민행복지원금'을 지급했다. "참 요긴하게 잘 썼다", "나는 마누라한테 다 넘어갔다"는 웃음 섞인 한마디 속에서 정책은 숫자가 아니라 삶의 체감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관광은 단순한 구경거리를 넘어 농업과 상권, 온라인 유통까지 서로를 살리는 연결의 통로가 됐다. 작은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을 살리고, 끝내는 국가 정책의 방향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했다.

그 모든 성과의 이면에는 중앙부처와 국회를 오가며 발품을 아끼지 않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국·도비 확보라는 숫자 뒤에는 '그래도 해보자'는 공직자들의 집요함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쌀도 길을 건넜다. 미국과 일본, 몽골을 거쳐 이제는 더 먼 나라를 향해 강진의 논이 말을 걸 준비를 하고 있다.

청정한 물과 땅, 그리고 농부의 손끝이 만든 품질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연말이 되면 경제가 다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그럼에도 강진은 비교적 단단한 일상을 유지해 왔다. 서로 이해하고, 조금씩 양보하며, 함께 버텨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강진을 둘러싼 교통 환경에도 변화의 흐름이 시작됐다. 철도망과 도로망 확충 논의가 본격화되며 동서와 광역을 잇는 접근성이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다. 길이 열린다는 것은 사람이 오고, 생각이 오고, 가능성이 온다는 뜻이다.

아흔다섯 해를 건너온 '엄마'의 시간을 지키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딸처럼, 강진 역시 자신의 시간을 지키며 조금 더 멀리 가려 한다. 2026년은 더 크게 자랑하기 위한 해가 아니라, 더 단단히 걷기 위한 해였으면 한다.

서두르지 않되 멈추지 않고, 서로의 등을 밀어주며 나아가는 한 해. 지난해, 강진은 참 수고 많았다. 그리고 2026년, 우리 모두 다시 힘차게 걸어가자. 아흔다섯 해를 살아낸 삶이 그러했듯, 지역의 시간도 결국 사람의 마음으로 이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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