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 그중에서도 질 좋은 일자리가 모두의 꿈과 소망인 시대이다. 청년들은 그 작은 쿼터에 들어가고자 무한 경쟁에 뛰어들고, 정치인과 기업가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일자리를 공급하고 창출한다는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해 열심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는 말은 이미 도덕적 수사가 돼버린 지 오래다. 분명히 세상에는 좋은 일자리와 비교적 좋지 않은 일자리를 나누는 선이 존재하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 그런데 질 좋은 일자리에 대해 흘러가는 논의들을 보고 있자면, 항상 그런 일자리들을 새로 만드는 데에만 온통 관심이 쏠리는 것 같다.
문득 의문이 든다. 질 좋은 일자리와 그렇지 않은 일자리를 나누는 선을 지워나가는 데는 관심이 없는 걸까. 꼭 새로 만들어야만 하는 걸까? 이미 존재하고 필요한, 하지만 대우받지 못하는 일자리들을 보다 질 좋은 일자리로 업그레이드하거나 그 격차를 줄이려는 시도는 애초에 고려 사항이 될 수 없는 걸까?
왜 우리가 그런 논의에는 소홀하고 새로 만드는 데에만 집착하는지, 답은 사실 간단하다. 사회 전체의 총합, 곧 파이 전체를 증가시키는 것은 그 누구의 이익도 침해하지 않지만, 기존의 일정한 크기의 파이를 재분배하는 것은 곧 누군가의 이익을 침해할 수밖에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AI를 필두로 한 첨단 산업의 발전, 그를 통한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은 언제나 환영받는 일이지만,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거나, 최저임금을 올린다거나, 과도한 심야 노동 또는 근로 시간 자체를 단축한다거나 하는 일에는 항상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정치인들 입장에서도 '좋은 일자리'를 '새로' 만드는 것이, 표 떨어질 걱정 없이 매끄럽게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지이기도 하다.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로 모두가 그 이익을 공유할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질 좋은 일자리의 증가가 비교적 질 나쁜 일자리의 대체로 이어지진 못한다. 우리는 그런 질 나쁜 일자리의 값싸고 위험한 노동 역시 필요로 하며, 따라서 누군가는 계속 그곳에 종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쿠팡과 같은 혁신기업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자신의 생명을 갉아가며 심야 노동을 감수하는 택배기사들이 있다. 쿠팡의 물류 혁신은 택배기사들의 과도한 심야 노동으로써 진정으로 실현되고 완성된다. 이들의 노동은 여전히 필요하며, 아무리 질 좋은 일자리를 늘린다 하더라도 아예 없애버릴 수 없는 일들이다.
그런 노동 혹은 일자리를 없애버리고 모두가 질 좋은 일자리로 단번에 이동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현재 좋지 않은 상황에 놓여있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필요로 하는 그런 일자리들을 개선하는 작업 역시 질 좋은 일자리를 새로 창출하는 것 못지않게 논의돼야 마땅한 일 아닐까.
누군가의 일과 직업을 경험해 보지도 않은 채 함부로 질이 좋다, 나쁘다 재단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직업에 귀천은 없다는 말이 도덕적 수사가 아닌 현실에서도 유효한 말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물론, 이미 내면화된 한국 사회의 서열 나누기 속에서 의사니, 법률가니, 교수니 하는 소개를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숭배해 버리곤 하지만. 그래도 의식적으론 귀천을 따지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하는 편이고, 모든 노동은 그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라면 존중받아 마땅하다고 믿는다. 모든 일자리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 어떤 이유로도 일하다 죽는 극악한 노동 조건을 정당화할 순 없다. 그건 정당한 차별이라는 말로는 옹호할 수 없는 범주의 일이다. 질 좋은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내는 것 못지않게,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일자리들을 개선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마찰이 불편하다고 외면하기에는 스스로를 부당하게 소진시키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