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대한민국을 뒤흔든 '초코파이 절도 사건'은 법의 무게와 현실적 감각 사이의 괴리를 여실히 드러냈다. 전북 완주에 있는 한 물류회사 보안직원이 동료들의 냉장고에 있던 초코파이(450원대)와 커스터드(600원대)를 먹은 사소한 행위로 재판정에 서게 됐고, 1심에서 벌금 5만 원이 선고됐다. '빵 한 조각을 훔쳐 인생이 망가진' 빅토르 위고의 소설 속 장발장의 비극이 21세기 대한민국 법정에서 재현된 셈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동료들은 "평소에 누구나 자유롭게 먹던 것"이라며 '관행적 사용'에 대한 확인서를 제출했다. 이는 검찰의 항소 결정에 대한 사회적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법의 잣대로는 명백한 절도 행위였을지 모르나, 인간적인 상식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가혹한 처사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검찰은 항소를 취하하며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법은 과연 약자의 삶의 맥락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 그리고 이러한 엄격한 잣대는 힘 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초코파이 사건'이 던진 불편함은 수십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자금과 권력이 오가는 사건들에서 법의 판단이 모호해지거나 무죄가 선고되는 일이 반복되면서 더욱 증폭됐다. 이는 법이 약자에게는 450원짜리 초코파이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정경유착 및 국정농단과 관련된 거액의 비리 혐의자에게는 관대하게 적용되는 듯한 이중잣대를 보여줬다.
대표적인 사례는 곽상도 전 의원의 '아들 퇴직금 50억'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규모 개발 사업의 특혜 의혹과 맞물려 거액의 뇌물 수수가 의심되는 사안이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이 거액의 자금을 뇌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50억 원이 과연 우연한 퇴직금인가'라는 국민들의 의문을 해소하지 못했다. 그러나 2023년 12월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을 뇌물죄로 인정해 곽 전 의원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1심과 2심의 판결이 극명하게 엇갈린 이 사례는 사법부가 한 사건에 대해 얼마나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국민의 법 감정과 법원의 논리가 충돌하는 지점을 명확히 드러냈다. 비록 2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졌지만, 여전히 대법원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고 있어 사법부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은 해소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또한,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전달 혐의로 재판에 올랐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 이는 억대의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사건이었음에도, 법원은 관련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법이 힘없는 자에게는 엄격하게, 권력 있는 자에게는 느슨하게 적용된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사법부에 대한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사법부의 신뢰는 단순히 한두 번의 판결로 무너지거나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법관의 독립성은 사법부의 중요한 가치이지만, 그 독립이 '책임 회피'나 '불투명성'으로 오해받아서는 안 된다.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 불출석 논란은 사법부의 공적 책임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켰다. 사법부 수장이 국회 소환에 불응한 일련의 사태는 법적 독립과 공적 책임의 균형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에서 사법부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법관의 독립은 철저히 지켜져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다. 이를 위해 사법부는 다음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한다. 첫째, 판결의 투명성을 확대해야 한다. 심리 과정과 판결 근거를 더욱 충실하게 공개해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둘째, 이해충돌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법조계 내부의 부적절한 관계를 차단해 공정성을 높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약자에게는 인간적 맥락을, 권력에는 엄정한 잣대를 적용하는 균형 잡힌 판결을 보여야 한다.
초코파이 한 개를 둘러싼 재판은 사법부가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와 감수성을 시험하는 중요한 리트머스지다. 법원이 판결로써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일 때, 국민은 비로소 법정을 다시 신뢰하게 될 것이다. 공정한 법 집행은 사회 정의를 지키는 최소한의 조건이며, 이는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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