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선이 끝났다. 예측 가능한 결과였던 만큼, 누가 당선됐는지는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주목했듯이 20대 남성들의 표심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같은 20대 남성으로서 이준석에 대한 지지 기류를 어느 정도 느끼곤 있었지만, 제3당이 특정 성별과 연령대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정말 이례적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는가? 또 이러한 현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같은 20대 남성이라는 범주에 묶였을 뿐, 갈수록 개인화, 다원화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내가 그 지지자들을 충분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저 펨코(커뮤니티 사이트)나 일베에 쩔어있다느니, 여혐 정서라느니 하는 것은 폭력적으로 20대 남성들을 단순화하는 짧은 생각에 불과하다.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을 하나의 예외나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가장 쉬운 해법이지만, 사회의 통합과 발전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 자체는 언제나 중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20대 남성의 이준석 지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로 삶이 너무 힘들고 막막해서다. 사회구조적 요인에 따라 경쟁은 계속해서 심해지고, 모두가 꿈꾸는 좋은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동시에 SNS의 발달로 비교 의식은 높아져만 가고,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심해진다. 특히 청년 남성들은 병역이라는 특수한 의무로 인해, 또래 여성들보다 사회 진출도 늦어진다. 이들이 느끼기에 페미니즘은 여성들의 권리만을 외치며 얼마 있지도 않은 나의 권리를 뺏어만 가는 것 같다. 동시에 중장년층도 연금 개혁과 같은 의제에서 드러나듯, 청년들의 미래보다는 당장 자신의 밥그릇 챙기기에만 급급해 보인다. 자연스레 여성과 중장년 세대에 대한 반감이 형성된다. 여기서 진실이 무엇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중요한 것은 실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이다. 작금의 시대에 진실은 여러 개 존재하며, 결국 감정과 느낌이 사회를 추동하는 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한다.
둘째로 이런 상황에서 20대 청년 남성들을 결집시킬 만한 정치적 구심점이 부재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분명 다르지만, 청년들의 실제적인 문제(청년 취업난, 연금, 집값 등)에 있어선 '그놈이 그놈'이라고 느껴졌다. 반면 여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로 어느 정도 단결했고, 실제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대 남성들은 자신들이 점차 정치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있다고 느꼈다. 자신들을 대변해 줄 정치적 대표 혹은 의제가 필요했다.
이준석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사회 저변에 형성돼 있던 청년 남성들의 반감을 정치적 목소리로 구체화하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을 구사했다. 꼭 이번 대선만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여성과 중장년층을 집요하게 공격하며, 20대 남성들의 반감을 대변했고 동시에 부채질했다. 이에 대한 판단은 물론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그 반감이 향하는 방향이 정말 합당한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검투사의 진짜 적은 누구인가. 콜로세움에서 나와 칼을 맞대고 싸우고 있는 이는 사실 나와 똑같은 처지의 노예일 뿐이다. 진정으로 그들의 칼끝이 향해야 할 곳은 저 건너편의 관중석이 아닐까. 그리고 그 관중석과 경기장을 가르는 벽은 특정 성별이나 세대가 아니다. 그래서, 전선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이준석이 가리키는 칼의 방향은 어째서인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 즉 각각의 검투사를 향하는 것만 같다.
누구의 말마따나 어려울 때 사이비가 다가오는 법이다. 그건 포퓰리즘성 정책뿐 아니라, 어려운 청년들의 상황에 다가오는 이준석, 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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