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어장 사라지며 '굴비 고장' 정체성 위기
식탁 물가 올라가고 '특산물' 지역 경제도 타격
기후 변화 대응한 '고수온 내성 품종' 개발 병행

"영광 칠산 앞바다가 (참조기) 씨가 말랐어요. 지금은 제주도와 추자도까지 내려가서 잡고 있죠."
김상국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영광지원장의 설명이다. 21일 영광 서해특산시험장에서 만난 그는 영광 인근 바다에서 참조기가 사라지면서 '영광산 굴비'의 브랜드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굴비 가공업체는 여전히 많지만 정작 이 곳에서 잡히는 참조기가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김 지원장은 "과거에는 영광 앞바다 칠산어장에서 참조기가 풍성하게 잡혔다"며 "이 곳에서 만든 굴비는 영광산이라는 이름에 손색이 없었다"고 했다. 지구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 탓이다.
지역 경제도 위기다. 참조기 어장 남하와 어획량 급감, 굴비산업 위축이라는 이중·삼중 위기가 겹치면서다. 그는 "영광굴비의 명성은 단순히 많이 잡히던 곳이어서가 아니라 천일염 염장, 해풍 건조, 저온 숙성 같은 전통적 가공방식과 하늬바람과 일조량 같은 지역 고유의 기후가 만든 결과"라면서도, 참조기 파시 어장이 사라지면서 '굴비의 본고장'이라는 지역 정체성이 흔들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조기 어장을 살리는 노력도 진행되고 있다. 바다 양식과 종자 방류, 고수온에 강한 종자 개발 등 과학적 접근을 통해서다. 해양수산과학원은 2005년 인공 수정란 생산에 성공했다. 2013년에는 세계 최초로 30만 마리의 참조기 인공 종자 대량 생산에 성공했다. 이후 양식 매뉴얼을 완성하고 민간 어가에 기술을 이전하며 산업화를 추진해왔다. 우선, 자원을 회복해야 국민 생선인 참조기 물가도 낮추면서 어업인들과 지역경제 모두 선순환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5㎝ 크기의 참조기 치어를 해상 가두리에 분양해 100g 이상으로 키우고 있다. 김 지원장은 "과거엔 겨울을 두 번 넘어야 출하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번의 겨울만 나도 시장 선호 크기인 350g까지 자란다"며 "양식 기술의 상업화가 큰 진전을 이뤘다"고 덧붙였다. 실제 올해 1월 영광수협 법성 위판장에선 7t 규모의 양식 참조기 8만 마리가 출하됐다. 이는 지난해 전체 양식 참조기 위판량 13.3t의 절반에 해당한다. 가격은 자연산의 65%로 책정됐다.
방류도 중요한 대책이다. 그는 "2011∼2024년 126만 마리의 종자를 영광 앞바다에 방류했는데, 2014~2015년 회귀율은 13%로 나타났다"면서 "치어 방류는 지속적인 수자원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어민과 굴비가공업체들에게 호응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고수온 내성 품종 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김 지원장은 "참조기와 함께 굴비 원물로 수요가 높은 부세의 내온성 품종을 개발하고 있고, 두 어종 모두 30℃ 환경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참조기는 워낙 귀한 이미지라 단가가 높아지면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일정 규모의 안정적 양산이 가능해져야 가격도 잡히고 소비층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양식과 방류, 연구개발을 통한 기술 축적이 함께 이뤄지면 참조기로 만든 굴비도 고가 선물용이 아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일상식이 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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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적응과 상업화 가능성은 별개···선제적 준비 필요 신민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 "기후변화에 따른 '과일 주산지' 개념 재정립이 불가피 해요. 이 같은 변화에 맞춰 농작물 재배 지형도도 새롭게 그릴 때죠."신민지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 농업연구사의 분석이다. 그는 지금의 기후 변화를 "과거의 계절 편차 수준을 넘어선, 작물 생육 환경 전반을 재구성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전에는 생육 기간 중 폭염이나 저온이 한두 차례 오는 정도였다면, 현재는 생육 시기 전체에 걸쳐 기상이 불안정한 경우가 많아졌다는 취지에서다.실제로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과수나 채소 작물의 피해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봄철 이상고온과 여름철 극한호우, 겨울철 이상고온 현상이 되풀이 되면서다. 과거와 같은 품종, 방식, 지역 만으로는 더는 재배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재배 현장의 공통된 목소리다. 신 연구사는 "특히 사과·배처럼 저온이 일정 기간 지속돼야 하는 과일의 경우 재배 한계선이 북상하고 있다"며 "전북, 경북 남부에서도 품질 저하나 개화 이상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고 말했다.지구온난화는 이 같은 현상을 가속화 하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이 아주 높은 수준일 때를 가정한 기후변화 시나리오인 'SSP5-8.5'를 기준으로 분석하면 2070년쯤엔 강원도 고지대 일부 만이 재배적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전통적인 '과일 주산지'의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에 따라 농촌진흥청은 과수 재배 지도를 새롭게 구축하는 있다.신 연구사는 현재, 장기 시나리오에 따른 작물별 적지 변화를 예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농촌진흥청은 최근 20여 년 간의 기후 분석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아열대기후대가 10% 수준에서 2050년께면 56%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제주도나 남해 일부에서만 가능했던 열대·아열대 작물 재배가 내륙 중부권에서도 가능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아열대기후대는 연평균기온이 18℃ 이상이고 겨울철 최저기온이 작물의 생육에 치명적이지 않은 지역이다. 동백나무·감귤 등의 아열대 작물이 노지에서 월동 가능한 기후권을 뜻한다.신 연구사는 "온난화가 무조건 위기라고만 볼 수는 없다"며 "그러나 문제는 속도"라고 강조했다.그는 "애플망고나 패션프루트, 레드키위 같은 작물은 이미 도입이 이뤄졌고 일부는 상업화 단계에 들어섰다"며 "그러나 이 역시 품종 개량, 하우스 인프라 구축, 재배 기술 전수 등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관건은 '선제적 준비'다. 정밀한 기후 모형을 바탕으로 행정과 농가가 공유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이 시급하다는 거다.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고랭지 배추의 적지 분석에 이어 복숭아·포도 등 주요 과수의 재배 적지도를 새롭게 작성하고 있다. 그는 "단순히 '지금 재배 가능한 지역'이라는 정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기후 조건을 고려해 지속 가능한 재배 전략을 마련할 수 있도록 돕는 데이터를 만들고 있다"면서 "단기 기상이변에 대한 대응과 중장기 품종 재배 전략, 기술 전환이 동시에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김혜진기자 hj@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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