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난화에 '황금어장' 직격탄…어획량 급감·대형조기 품귀 현상 지속
달라진 입맛과 높은 제조원가 상승에 어민·가공업체 등 '이중고'

지난 21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영광수협 법성 제2위판장. '참조기 위판장'으로 불리는 2천300여 ㎡ 규모의 작업장이 을씨년스럽다. 제 철인 11월∼12월이면 매일 50여 명의 작업자들이 달라붙어 갓 잡아 온 참조기들을 크기별로 선별해 5천∼6천개의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내는 곳이다. 1박스 당 평균 100마리가 들어가는 데, 크기·무게 등에 따라 75∼120마리가 담기기도 한다. 이날에는 고무장갑을 낀 10여 명의 손길만 분주했다. 칠산어장과 신안 흑산도까지 내려가 조업한 참조기 량이 적은 탓이다. 강진호 참조기배 선장은 "참조기 철에는 통상 한 번 조업에 500박스, 많게는 1천 박스까지도 잡았다"면서 "요즘은 30박스도 겨우 잡는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의 후과다. 참조기 어장이 남해안으로 내려가서다. 수온변화 탓이다. 한 때 참조기하면 영광 칠산어장이었지만, 제주 추자도 인근 해역으로 내려간 지 오래다. 지도상 170∼200㎞ 가량 떨어진 곳이다. 이마저도 강 선장은 "요즘에는 아무 데서도 안 나온다"며 헛웃음을 지었다.
◆ 수온 1.44℃ 상승에 사라진 칠산어장
민어과에 속하는 참조기는 회유성 어종이다. 겨울에는 제주도 인근 남쪽으로 내려가 월동을 하고 봄이 되면 서해 북쪽(발해만)으로 북상해 산란한 뒤 다시 남쪽으로 이동한다. 영광 앞바다는 일명 '목진지'였다. 참조기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데다 떼로 몰려다니는 특성상 그야말로 '조기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조선시대로 거슬러간다. 바다 위에서 열리는 시장인 파시가 역사상 최초로 등장한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영광의 파시(波市) 기록이 남았다. 얼마나 많은 참조기 어선이 영광 앞바다에서 몰리는지 '그 세금을 받아 나라살림에 이바지한다'고 적었을 정도였다.
영광 앞바다는 더 이상 참조기 파시의 중심지가 아니다. 수온 상승으로 대표되는 기후변화가 초래한 해양 생태계의 변화 때문이다. 참조기는 1980년대 영광 앞바다와 흑산도, 연평도 인근이 주요 어장이었다. 하지만 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이 본격화 된 2000년대 이후에는 제주도 서남쪽 해역이 중심 어장으로 자리잡았다. 영광은 직격탄을 맞았다. 참조기 어획량은 물론 자원량 감소로 소위 '잡을만한' 크기 또한 줄어든 것이다. 허승준 전남도 해양수산과학원 서해특산시험장 연구사는 "참조기 어획량 감소와 어장의 변화는 기후변화 즉, 온난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저 50~100m 깊이의 황해저층냉수(Cold Intermediate Layer)의 변화를 주목했다. 허 연구사는 "저층냉수가 남서쪽으로 확장되면 참조기의 서식 가능 수역은 넓어지지만 밀도는 분산되면서 어획량은 오히려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면서 "영광 앞바다에서 참조기 파시가 사라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참조기가 얇고 넓게 퍼지면서 어획하기가 까다로워졌다는 의미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1968년부터 2023년까지 연평균 표층 수온은 약 1.44℃ 상승했다. 같은 기간 0.7℃ 상승한 전 세계 평균에 비해 두 배가 넘게 올랐다. 서해는 수심이 얕아 수량이 적다보니 표층 온도 상승 요인에 취약하다. 표층 수온이 높아질수록 참조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는 "영광수협 참조기 위판 크기만 봐도 100g 이상 대형 참조기는 2% 이내고, 70% 이상이 50g 미만 소형어"라고 말했다.
대형 근해 어선 장비가 발달도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산란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포획되는 구조가 고착됐기 때문이다. 영광 칠산어장은 참조기의 성육과 산란장 역할을 했던 곳이다. 지금은 이른바 회유하기도 전에 참조기를 잡아버리면서 '영광산 참조기'를 더욱 찾아보기 어렵게 만들었다.

◆서민들도, 어민들도 눈가에 시름 가득
참조기 값이 매년, 요즘 같은 때는 매일 치솟지만 전혀 반갑지 않다. 물량이 줄어든 만큼 가격이 오르는 게 아니어서다. 강 선장은 "농사와 마찬가지로, 바다에서 고기를 많이 잡는 게 중요하다"면서 "예를 들어, 사과나무에 10개 열려 한 개 만원에 파는 것보다, 100개 열려 한 개에 2천원, 3천원 받는 게 더 낫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국내 참조기 어획량은 통상 10년 주기로 2만∼5만여 t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어획량이 줄어드는 추세는 뚜렷하다. 해양수산부 통계에 따르면, 2020년 4만1천39t이었던 어획량은 2024년 1만7천719t으로 절반 넘게 줄었다.
이는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법성포 수협 위판 기준으로 2018년 ㎏당 3만2천96원이던 위판 단가는 2024년 5만5천484원으로 58%나 올랐다. 특히 100g 이상 대형 참조기는 전체 어획의 2%에 불과하고, 50g~100g 사이가 9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큰 상품을 써야 하는 보리굴비를 더는 참조기로 만들기 어려워진 이유다. 생산량 감소로 대형 조기는 그야말로 귀한 몸이 됐다. 강 선장은 "75미(25㎝ 이상)는 10마리에 20만원, 비싸면 40만원까지도 간다"면서 "그런 건 돈 있는 사람들만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위험성도 커졌다. 먼 바다로 나가야 돼서다. 더 큰 배가 필요한 데다 인건비·연료비는 더 높아지고 조업 성공률은 낮아지는 탓이다. 가공업체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영광굴비 시장은 연간 3천억여 원에 이르렀지만 최근 2천억원대로 급감했다. 젊은층을 중심으로 식문화가 변한 것도 있지만 참조기 가격 급등으로 굴비 같은 가공품 제조원가가 크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국내 굴비 생산량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영광은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영광군에 따르면, 영광굴비 판매량은 2019년 1만4천600t에서 2023년에는 5천600t으로 크게 줄었다. 같은 기간 판매액 또한 2천916억원에서 1천803억원으로 급감했다. 참조기 가격이 비싸진 것도 있지만, 대체재 역할을 하던 중국산 부세마저 중국 내 수요 증가로 가격이 크게 뛰었기 때문이다. 영광군 관계자는 "해마다 굴비 판매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면서 "굴비가 워낙 비싼데다 가정에서도 쉽게 먹을 수 없다보니 해마다 수요가 줄어드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영광=한상목기자 alvt715@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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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리스크, 전남 축제 무너뜨린다 전남을 대표하는 봄꽃 축제인 광양 매화축제가 늦은 개화로 예전 방문객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관광객을 유치한데 머무르며 아쉬움 속에 막을 내렸다. 광주·전남지역 지자체들이 축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상 기후의 영향 탓이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축제를 여는 전라남도가 대표적이다. 봄·가을엔 먹거리·볼거리를 내세우는 축제가 풍성하게 열린다. 일부는 경기 활성화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문제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아졌다는 점이다27일 전남도 '남도여행길잡이'가 제공하는 전남지역 축제를 분석한 결과, 올해 개최했거나 개최 예정인 축제는 모두 125개다. 22개 시·군 마다 평균 6개의 축제를 여는 셈이다. 특히 1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신안에선 32개의 축제가 개최된다.예측 불가능한 기후 취약성은 상수가 됐다. 올해 초, 봄 이상저온 현상이 강타한 전남지역은 봄꽃의 개화 시기가 늦어지면서 '봄꽃 없는' 봄꽃 축제를 치러야만 했다. 대표 봄꽃 축제인 광양매화의 경우 축제가 시작하고도 매화 개화율이 10%에 그쳤다. 그러면서 열흘가량 되는 축제 기간 한 해 100만명 가까이 찾는 관광객 수가 올해는 37만명으로 급감했다.이처럼 기후리스크에 노출된 축제가 절반 가량에 달한다는 점이다. 주제(테마) 자체가 지역 고유의 자연 특성, 예컨대 꽃이나 농·수산물과 같은 지역 특산물에 기반한 축제는 총 67개(53.6%)다. 다시 말해, 전남지역 축제 2개 중 1개는 기후변화 또는 이상기후에 영향에 취약하다는 의미다.기후 리스크는 고스란히 지역 축제의 위축 혹은 존폐로 이어진다. 기후의 영향에 따라 관광객이 줄어들고, 축제에 의존하던 마을의 경제 순환 구조가 깨질 구조적 위험까지 안고 있다. 구례 산수유꽃축제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개화가 늦어짐에 따라 당초보다 일주일 연기했지만 꽃이 본격적으로 피기 시작한 건 축제가 끝난 직후였다. 결과적으로 관광객 수는 전년 대비 20% 감소했다.남·서해안 바다를 끼고 있는 시·군에서 개최되는 수산물 축제들은 기후변화에 정체성마저 흔들거린다. 온난화가 직격한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어장이 이동하면서 주산지로서의 상징성을 잃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벌교꼬막축제의 경우 벌교지역 꼬막 생산이 씨가 말라감에 따라 축제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예전엔 '홍어=흑산도'였지만 최근 주산지가 군산으로 넘어가면서 홍어축제 위상마저 추락하고 있다.이삼섭기자 seob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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