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시평] 엄흥도와 양팽손

@이광이 작가 입력 2026.04.05. 14:03
이광이 작가
이광이 작가

영화 ‘왕과 사는 남자’. 보는 간간이 울먹한 장면들을 무사히 넘기다가 끝부분 자막이 올라가는 대목에서 눈가가 젖었다.

‘노산군이 해를 입었을 때 아무도 거두어 돌보지 않았었는데 그 고을 아전 엄흥도가 곧바로 가서 곡하고 관곽을 준비해 염하여 장사를 치렀으니 지금의 노묘가 바로 그 묘이다. -현종실록’

엄흥도가 강에 버려진 단종의 주검을 수습하는 장면, 1457년 11월이다. “나으리 차갑지요. 나갑시다. 따뜻한 곳으로 나갑시다.” 절정에 오른 배우 유해진의 통절한 몸짓은 탄복할만한 것이었다. 영화는 끝이 나고, 자막이 오른다.

‘뭇사람들이 만류하는데도 엄흥도가 말하기를 “의(義)로운 일을 하고 화(禍)를 당하는 것은 내가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요,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국조인물고’

단종의 주검에는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울며 떨며 그저 바라볼 뿐이다. 엄흥도가 세 아들을 데리고 나선다. 단종의 주검 앞에 곡하고 염하여 영월 엄씨 선산에 안장했다. 엄흥도는 장례를 치르고 나서 단종의 피 묻은 옷을 챙겨 계룡산 동학사로 간다. 동학사에는 사육신의 주검을 수습한 설잠(雪岑) 김시습이 은거하고 있었다. 설잠은 눈이 내려 허연 산등성이라는 뜻이다. 둘은 단을 쌓아 어린 임금의 옷을 걸어놓고 초혼하여 제를 올린다. 엄흥도는 이후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사라졌다. 동학사 숙모전(肅慕殿)에는 단종과 사육신 생육신, 그리고 엄흥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로부터 63년이 흐른 1520년 1월, 전남 화순 능주 마을 길가에 한 주검이 버려져 있다. 기묘사화로 사약을 받은 정암(靜庵) 조광조. 이 주검에도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이 떨어져 있다. 사람들은 울며 떨며 그저 바라볼 뿐이다. 학포(學圃) 양팽손, 장남 응기를 데리고 곡하고 염하여 주검을 수습한다. 섣달 찬바람을 헤치고 60리 먼 길을 걸어 쌍봉리 뒷산 증리에 묻었다. 학포는 이듬해 정암을 선영이 있는 용인의 심곡으로 떠나보낸다. 빈 무덤 아래 이엉을 얹어 사당을 짓고 춘추에 제를 지냈다. 그 일로 장남 응기는 벼슬길이 막힌다.

정암과 학포, 생원시에 함께 합격한 동기이자, 정암이 다섯 살 많은 형제이자, 개혁의 길을 함께 걸었던 동지이자, 기묘의 화를 함께 입은 동병상련의 인연이다. 그 초가 사당이 지금의 죽수서원이다. 정암의 신원이 회복된 1570년 사액을 받아 죽수서원이 되었다. 뒤에 양팽손을 함께 향사하였다. 두 사람은 죽어서도 죽수서원에 함께 있고, 용인 심곡서원에도 함께 있고, 정암 유배지에도 강론하던 모습이 밀랍 인형으로 남아 있다. 정암은 학포를 이렇게 말했다. ‘그와 더불어 이야기하면 난초의 향이 풍기는 것 같고, 기상은 비 갠 뒤의 가을하늘이요. 얕은 구름이 막 걷힌 뒤의 밝은 달과 같다. 인욕을 초월한 삶이다.’

학포가 정암과 사화를 당한 제현들을 변론하는 글에 이런 대목이 있다. ‘몸소 폭악스럽게 도륙을 하신다면 어찌 충성을 바치겠나이까’라고 왕에게 물은 뒤 ‘천지신명이 굽어보시는 처지에 사생영욕(死生榮辱) 간에 구차하게 굴 수가 없다’

엄흥도는 ‘의(義)로운 일을 하고 화(禍)를 당하는 것은 내가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라고 하였고, 양팽손은 ‘사생영욕 간에 구차하게 굴 수가 없다’고 했다. 둘은 주검을 수습하는 대목도 같고, 화(禍)와 사(死)를 감내하는 대목도 같다.

하나를 취한다는 것은 대체로 하나를 버리는 일이다. 의가 높은 것은 뭔가를 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의에는, 홀로 서 있어야만 하는 독존(獨存)의 냄새가 있다. 덕은 이웃이 있어 외롭지 않다(德不孤必有隣)고 했지만, 의에는 절체절명의 순간을 홀로 감내해야 하는 실존의 지극한 고독이 있다. ‘생(生)도 내가 바라는 것이고 의(義)도 내가 바라는 것이되, 둘을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捨生取義)’고 맹자는 이렇게까지 말하고 있지 않은가. 옳음과 목숨을 저울에 달아보되, 종국에는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라는, 가을 서리 같은 말이다.

5.18로부터 거슬러 광주 정신과 남도 ‘의향(義鄕)’을 말할 때, 일제강점기 광주학생운동과 동학, 구한말 의병과 임란 의병을 이야기하고 대개는 1515년 눌재(訥齋) 박상의 ‘신비복위소’라는 뿌리에 닿는다. 그리고 눌재 5년 뒤 학포가 있다. 학포가 정암의 주검을 수습하는 장면, ‘의향’에서 빠뜨리지 않아야 할 대목이다. 엄흥도의 영화에서 양팽손이 떠오르는 것은, 두 사람이 ‘시신을 거두는 자는 삼족을 멸한다’는 어명을 거역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를 궁행한다는 것이 어찌 배워서 될 일인가? 삶의 어느 순간 또 어느 순간, 가슴 속에 늘 저 푸르른 하늘을 박차오르는 가을 매의 기상을 품고 있어야 가능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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