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제는 끝났다. 아니 한바탕 전쟁이 끝났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요, 축제라는데 뒷맛이 그리 개운치는 않다.
음흉한 비상계엄에서 비롯된 조기대선인지라, 그러려니 했지만 계엄내란 세력을 심판하는 게 이리도 지난한 과정인지 자괴감이 컸다.
선거기간 내내 국민들의 얼굴을 찌푸리게 했던 진흙탕식 진영싸움이 그랬고, 계엄내란 종식이라는 엄연한 시대정신에도 불구하고 방조세력 국민의힘 후보가 얻은 41%대 득표율이 그랬다. 뿌리 깊은 진영갈등의 민낯을 다시 본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28년 만에 기록한 역대 최대 투표율 79.4%. 이재명 후보의 역대 최다 득표 1천728만7천513표, 민주계 후보 사상 최대 득표율 49.42%.
눈앞에서 생생하게 펼쳐졌던 비상계엄의 광란에 국민들은 차갑게 화답했다.
12월3일 그날로부터 딱 6개월이다.
마치 6년 같았을 악몽의 시간 동안 국민들이 느꼈떤 분노와 충격, 절망이 하나로 응축돼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개혁의지로 표출됐다.
비상계엄과 내란세력 척결, 윤석열 정부의 오랜 실정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 이번 대선에 담긴 민심의 선 굵은 의미다. 산고 끝에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시작은 일단 신선하다.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
박정희의 정책이든, 김대중의 정책이든 유용하면 구별 없이 쓰겠다'는 취임사 메시지에서 오랫동안 잘 준비된 품격이 엿보인다.
국민통합과 경제성장, 민주주의 회복에 대한 대통령의 분명한 의지가 담겨 있다. 되돌아보면 지난 3년 주구장창 '자유민주주의'만 외쳐댔던 대통령의 메시지, 거기에 식상했을 국민들에게는 신선하고 역동적으로 다가왔을 취임사라는 데 이견이 없다.
경제회복·내란종식 등 과제 산적
출발은 담대하지만 이재명 정부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는 녹록지 않다.
윤석열 정부가 남긴 암울한 유산이 비상계엄의 폐해만큼이나 크기 때문이다. 경제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고, 국민들의 민심은 갈가리 찢기었다. 민주주의는 한없이 후퇴했으며 국격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한민국 시스템 자체가 통째로 흔들렸다. 미국의 통상압력을 비롯한 외부 환경도 벽이 높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四面楚歌)다.
이재명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 가운데 가장 시급한 것은 역시 민생·경제 회복이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내수, 수출, 금리, 환율, 골목상권 등 어느 것 하나 성한 곳이 없다.
경제불황이 생각보다 깊고 심하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미국의 포브스가 일찌감치 '윤석열의 이기적인 계엄사태에 대한 비싼 대가는 한국의 5천100만 국민들이 시간을 갖고 분할해서 치르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던 게 현실이 됐다.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거리로 나앉았고 내수에 영향이 큰 건설업계는 줄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인 수출 부진에, 미국의 통상압력은 목전에 닥쳤다. 이재명 대통령도 개혁보다 시급한 것이 민생회복, 경제회복이라며 비상경제대응TF 가동을 1호 행정명령으로 지시했다. 그만큼 위기상황이라는 반증이다. 이재명호가 풀어야 할 또 하나의 과제는 내란 종식과 민주주의 회복이다. 대선에 담긴 민의를 고려하면 최우선 순위기도 하다. '내란은 아직도 현재 진형행'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정부나 정치권, 주요 권력기관에 기득권층 내란세력이 엄존해 있는 게 현실이다. 완전한 의미의 내란종식 없이는 민주주의 회복도, 국민통합도 모두 요원한 일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주요 종사자들에 대한 사법적 책임을 묻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시는 이 땅에 무도한 비상계엄이 발을 붙일 수 없도록 법적 제도개선도 뒤따라야 한다.
국민통합과 협치도 새 정부가 소홀히 할 수 없는 분야다. 대한민국의 오랜 고질병이었던 진영갈등, 세대갈등, 계층간 갈등은 계엄·탄핵을 거치면서 더욱 노골적이고 공고해졌다.
불순하기 짝이 없는 혐오문화까지 가세하면서 국민정서가 온통 만신창이다. 국민통합은 이제 한시가 급한 시대정신이 됐다. 지난 대선이 국가적 담론 없이 진영대결로 치달으면서 외면했던 게 여럿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이다. 대선 후보들이 각 지역을 돌며 나열식, 재탕삼탕식 지역공약만 제시 했을뿐 대한민국을 고루 발전시킬 지역균형발전 전략은 보이지 않았다. 지방 없는 국가는 없다.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에 대한 깊이 있는 전략이 필요할 때다.
이재명 정부 호남 접근법 기대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새 정부의 호남 접근법이다.
광주·전남의 주요 현안과 공약들이 얼마나 국가정책에 반영될 것인지, 오랜 인사홀대를 끊고 지역 출신 인재들이 중용될 것인지 여부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광주 군공항 이전이나 전남 공공의대 설립, AI-모빌리티, 재생에너지 허브 등 지역의 굵직한 현안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냈다. 대통령의 의지는 이제 국정기획위원회 100대 정책 선정과 과감한 예산 반영으로 이어져야 한다. 능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에 맞춰 호남 인재들이 새 정부의 틀 안에서 한껏 날개를 펼치는 상상도 현실이 되기를 기대한다. 호남이 85%대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데는 여러 가지 함의가 있다. 새로운 대한민국, 진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이재명 정부의 국정운영 동력에 힘을 실어주자는 의지가 일단 강했다. '죽비'처럼 반민주당 정서도 있지만, 내란세력 종식을 위해서는 호남이 결집해야 한다는 거대한 흐름이 작동했다.
윤석열 정부 내내 호남이 처했던 소외와 홀대도 한몫 했다. 그 마음 마음들이 모여 이재명호를 출범시키는 데 주춧돌이 됐다. 이런 호남에 대해 이재명 정부는 어떻게 화답할 것인가.
'호남은 민주당의 심장부. 호남은 민주당의 어머니'. 선거 때면 등장하는, 식상한 레토릭만으로는 곤란하다. 대통령과 민주당이 제대로 된 답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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