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의 바다는 배를 띄우기도 하고, 뒤집기도 한다는데 요사이 민심의 흐름이 심상치 않다. 민생은 온데간데없이 혼란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대한민국호에 위기감이 크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뉴스 보기가 역겹다는 이들도 많다. 처음엔 그저 채널을 돌리는 수준이었다가 지금은 뉴스 시간대나 지면, 포털 검색을 아예 외면한다는 것이다. 장삼이사 필부필부, 사람들이 모인 자리면 으레 민심의 성토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서민들이 고단한 삶을 위로 받기는커녕 짜증과 울분을 자아내는 소식들로 가득하니, 왜 안 그러겠는가. 소심한 저항처럼 보이지만 민심의 이반이 분명하다. 이대로 가면 임계점에 다다를 수도 있다. 수즉재주 수즉복주(水則載舟 水則覆舟)의 교휸이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지금 국민들에게 가장 큰 것은 의정 갈등 장기화에 따른 불안감이다. 나와 내 가족의 생명이 일촉즉발의 순간인데도 도대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고구마 먹은 속처럼 답답하다. 당장 환자를 안고 살아야 하는 집에서는 분노마저 치민다. 정부는 지난 추석 의료 붕괴사태가 없었다고 자화자찬하지만 이들의 불안감을 상쇄시키기엔 한계가 있다. 여러 이유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가 폭주하지 않았던 것이지, 의료사태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소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가 더 큰 문제라는 위기감은 이제 국민 대부분의 인식에 깔려 있다. 처음에는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 의료개혁의 출발이라고 여겼지만 그게 허수였다. 지역의료.필수의료에 대한 구조개혁 없이, 그것도 일방적으로 증원 숫자를 확정해 밀어붙인 것이 화근이었다. 이제 와서 일국의 총리란 자가 환자들 곁을 떠난 전공의들을 탓하지만 그들을 떠나게 만든 것은 과연 무엇인가. 의료인들의 공감대를 전제로 합리적인 증원 규모가 정해졌다면 이런 파행이 빚어졌을까 의문이 앞선다.
대통령과 정부의 의지대로 의대 정원이 늘어난다고 한들, 의대 교육이 정상화되지 못하고, 한 해 수천 명의 의사가 배출되지 못한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내년에는 늘어난 신입생과 올해 유급 인원을 합쳐 7500여명이 한꺼번에 수업을 들어야 한다. 올해보다 2.5배나 많은 숫자다. 교수와 강의동, 실습기자재 등 제반 여건은 제대로 갖춰지기나 한 것인지, 정상적인 의학교육은 이뤄질 것인지 걱정이 태산이다. 당장 내년부터 의사 배출 숫자가 절벽이 될 것이라는 우려는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사태로 의사고시를 치르지 못하게 되면 내년 배출할 의사 3000여명이 사라진다. 또 수련을 포기한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 전문의 2800여명도 중단될 위기다. 지역의료.필수의료를 살리기는커녕 의료계에 대혼란이 불가피하다. 이른바 응급실 뺑뺑이로 드러난 응급의료 체계의 붕괴나 지역 의료기관의 도산 위기는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도대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흘러나오는 뉴스라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독대 논란, '김건희 리스크' 수준이니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놓고도 남는다. 만약 현 정부가 추진하려다가 철회한 '만5세 초등학교 입학'이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 대규모 삭감' 정책이 교육개혁, 과학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의료개혁처럼 강행됐다면 어땠을까. 눈앞이 아찔하다. 지금은 그런 출구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역으로 눈을 돌려도 난마처럼 얽힌 현안들이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시민들의 답답증을 키우는 건 단연 광주 군.민간공항 이전 이슈다. 십수년 동안 갈등과 반목만 되풀이 할뿐,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 때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실타래를 풀 것처럼 보였던 강기정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지사도 어정쩡 돌아앉는 분위기다. 올해 말이냐, 내년 상반기냐, 각자 골든타임으로 보는 시기가 다른 데다 최근에는 '함흥차사', '양심불량' 등 거친 언사로 감정싸움 양상까지 내비치고 있다. 빗장을 내건 김산 무안군수는 여전히 꿈쩍도 하지 않는다. 국가안보시설인 만큼 정부 주도로 군공항 이전이 추진돼야 한다는 논의나 민주당 당론 채택, 무안군민 소통 등의 핵심 의제들도 겉돌기는 매 한가지다. 이대로 올해 말을 넘겨 2026년 지방선거가 목전으로 다가오게 되면 군공항 이전은 또다시 요원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민선 8기 출범 당시 시-도 간 상생의 결과물이 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더니, 이런 난맥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지역의 국회의원들도 '나 몰라라' 하기는 마찬가지다. 군 공항 이전을 주제로 한 최근의 정책간담회가 잇따라 반쪽짜리에 그친 게 대표적이다. 본인들의 사법리스크가 발 등의 불이라 그런지는 모를 일이다.
굵직한 예를 몇 가지 들었지만, 국민들의 속을 뒤집어 놓는 것은 이밖에도 차고 넘친다 오죽했으면 주변에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은 기아타이거즈 김도영의 홈런 소식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정치인과 지도자들이 허투루 들을 수 없는 푸념이다. 서민들이, 사는 걱정 없이 위로 받고, 희망을 찾고, 미래를 그릴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돼야 하는데 민심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국가 지도자부터 자치단체장, 지역 국회의원들까지 모두 현 세태의 심각성을 돌아보고 민심의 바다 그 안으로 들어오길 기대한다. 폭발 직전에 있는 민초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프랑스의 계몽 철학자 볼테르는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반복하는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결국 문제는 사람이다. 배가 뒤집어져서야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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