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혼렙’·‘퇴마록’ 등 잇단 선전
다양한 장르 도전 투자 연결로
유아용 탈피 지역성 소재 결합
‘달려라 하니’ 추억 작품 소환
캐릭터 내세워 시장 관심 유도

광주는 다양한 지원과 정책들을 통해 다양한 업체를 발굴하고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를 국내 3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유아용 위주로 발전한 국내 시장은 출산율 저하라는 악재에 부딪혀 세계 시장과 격차가 벌어지고 있고, 광주 역시 인프라 측면에서 어쩔 수 없는 지방의 한계를 드러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회로 만드는 발상의 전환과 장기적인 비전을 바탕으로 한 꾸준한 지원이다. 유아용에서 벗어나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이를 토대로 애니메이션 산업도 새로운 기반을 다져야 한다. 국내에서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퇴마록'이 전환의 신호탄을 올렸으며, 광주에서도 변화를 위한 몸부림이 포착되고 있다. 기존의 유아용 애니메이션에 지역적 소재를 입히거나, 성인 관객을 위한 추억의 작품을 리메이크하거나, 혹은 전통적인 산업 구조를 탈피해 캐릭터를 먼저 내세우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다양한 장르 성장…흥행 가능성 높인다.
수백명의 외국인들이 객석 앞에 비치는 화면을 보며 환호성을 내지른다. 축구경기를 단체로 관람하는 팬들 같지만 이들이 보는 것은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나 혼자만 레벨업(나혼렙)'의 시즌2 마지막 화다. 이들의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은 최근 국내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알려졌다.
'나혼렙'은 수준 높은 작화와 긴장감 넘치는 액션으로 전세계 애니메이션 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일본에서 제작했으나, 국내 작가의 웹소설이 원작이며 웹툰을 통해 성공을 거둔 것이 먼저다. 우리나라 콘텐츠가 세계에서도 통한다는 것이 증명됐으나, 유아용 애니메이션 위주인 우리나라에서 제작했다면 같은 성공을 거뒀을지, 충분한 제작비를 확보했을지도 의문이다.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 우리나라에서 성공하기 시작해야, '나혼렙' 같은 훌륭한 IP(지적재산권) 활용이 더욱 쉬워진다. 그런 면에서 1천만부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극장판 애니메이션 '퇴마록'의 등장은 업계 전반에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놓고 있다.

'퇴마록'은 지난 2월 개봉 이후 50만명 가까운 관객을 모았는데, 유아용이 아닌 오컬트 판타지 장르로 이룬 성적이라 더욱 고무적이다. 특히 적은 예산으로 훌륭한 연출과 액션을 선보인 덕에, 추억을 되새기러 온 30~50대 원작팬뿐만 아니라 해외 애니메이션으로 눈이 높아진 10~20대도 입소문을 듣고 극장을 방문했다.
여러 애니메이션 업계 관계자들은 '퇴마록'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 전환의 신호탄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 유아용이 아닌 장르에서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만큼, 향후 다양한 장르에 대한 투자도 이어질 수 있다.

◆진화를 위한 광주 업체들의 몸부림
퇴마록의 선전에 고무된 광주의 애니메이션 업체들도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향후 광주 애니메이션 산업이 다양한 장르적 시도가 가능한지 여부도 이들의 선전에 달려 있으며 결과에 따라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의 향방을 주도할 수도 있다.
스튜디오버튼은 '다이노맨'을 광주의 대표 캐릭터로 활용할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 2022년 MBC에서 처음 방영된'다이노맨'은 시공간을 넘어 멸종위기동물을 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광주지하철의 안전사고 예방캠페인, 광주경찰청의 보이스피싱 예방캠페인, 광주FC와의 협업을 통한 캐릭터상품 등에도 활용되고 있다.
특히 올 여름방학 개봉을 준비 중인 극장판 '다이노맨: 무등산 공룡의 탄생'에서는 다이노맨과 친구들에게 '무등산 서석대에서 태어났다'는 서사를 더해 광주에서 나고 자란 캐릭터임을 확실히 각인 시키려한다. 해당 작품에서는 무등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사직공원 등 광주 곳곳의 명소, 광주의 1급 멸종위기종이었던 수달과 수리부엉이, 양림동 '개비 설화' 속 충견을 모티브로 한 경찰견 캐릭터 등이 등장해 광주시민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달려라 하니'도 광주 업체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다.
플레이칸은 '나쁜 계집애: 달려라 하니'를 올해 하반기 개봉할 예정이다. 중학생이던 하니와 나애리는 고등학생이 됐으며 시대 배경도 2025년으로 바뀐다. '달려라 하니'는 유아용 시장 탈피, 향후 OTT 진출, 화제성 부분에서 상당한 강점을 지닌 원작 아이템이다.
3D가 아닌 전통적인 2D 방식을 빌어 40대 이상이 된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을 불러 일으키고, 최근 트렌드에 맞는 깔끔한 그림체를 통해 10대 관객들의 취향을 저격할 예정이다.

◆매력적인 캐릭터 선봉, 다음은 'K-애니메이션'
지난 2023년 광주 콘텐츠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메리버스스튜디오는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산업 구조에서 벗어나 캐릭터 IP의 잠재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작품이 인기를 끌고 나중에 상품과 완구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캐럭터 IP를 유통하기 위해 애니메이션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메리버스스튜디오는 아이돌이 되고 싶어 지구로 유학 온 고양이 '어글리뮤즈'의 모습을 짧은 애니메이션으로 구현했다. 글로벌과 MZ세대에 인기있는 고양이, K팝, 숏츠라는 키워드를 조합했는데, 이러한 기획력을 바탕으로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권뿐만 아니라 유럽으로의 진출도 앞두고 있다. '라이선싱' 사업을 통해 메리버스스튜디오는 오리지널 콘텐츠(캐릭터 IP)를 해외 업체에 배급하고 이를 다양한 상품으로 생산하거나, 본편 애니메이션을 공동 제작할 수도 있다.
정윤정 메리버스튜디오 대표는 "기존의 애니메이션 제작 방식으로는 많은 비용이 투입되고 수익을 회수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며 "매력적인 캐릭터 기반의 라이선싱 사업이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악, 영화, 드라마 등 많은 'K-콘텐츠'들이 해외에서 성공을 거뒀는데 실제 해외시장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우리 캐릭터에도 좋은 반응을 해준다. 단기간의 수익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꾸준한 지원이 이어진다면 'K-애니메이션'이 K-콘텐츠의 다음 자리를 차지할 날도 오리라고 본다"고 전했다.
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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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인재유출 '이중고'···'경쟁력 제고' 절실 애니메이션을 비롯 다수의 콘텐츠 기업들이 입주한 광주콘텐츠창업보육센터 전경 유아용 애니메이션으로 성장한 국내 애니메이션 시장은 출산율 저하로 인해 한계에 부딪힌 상황이다. 광주에서는 각종 지원을 토대로 여러 업체들이 둥지를 틀고 성장하고 있으나, 이들도 투자처와 전문인력 대부분이 수도권에 있는 상황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업체 관계자들이 매번 서울과 광주를 오가야 하고, 지역의 전문인력들도 수도권이나 다른 업계로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우수 기업들이 성장해야 광주의 애니메이션 산업도 자생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두다다쿵 시즌3 신기한 동물탐험'을 제작한 아이스크림 스튜디오도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은 곳이다 .아이스크림스튜디오 제공◆업계 전반에 들이닥친 출산율의 위기3D 유아용 애니메이션이 20년 가까이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의 성장을 이끌면서 작품의 제작 방식도 굳어졌다.작품을 방송에 편성하는 방송사와 장난감을 판매하는 완구사가 기획과 투자를 주도한다. 통상 3~4개월 방영되는 1시즌(20~30화) 제작비에는 20억원 들어가는데, 제작사는 방송사로부터 방송권료 2~3억원, 장난감판매 수익에 따른 로열티 일부를 받는다. 이마저도 장난감이 100억원 이상 팔려야 방송권료 수준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낮은 출산율은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산업 뿐만 아니라 광주의 업체들에게도 큰 난관이다.유아용 애니메이션의 주 시청층인 0~9세는 310만명으로 전체 연령대 중 가장 수가 적은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2023년 0.72까지 하락해 애니메이션 업계 입장에서는 잠재적인 고객들이 감소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한다. 경기침체의 장기화로 부모들도 쉽게 지갑을 열지 못하고 있어 애니메이션 제작의 큰손인 완구 업계도 휘청이고 있다.울트라그린의 2D 애니메이션 '우주택배' 스틸컷.울트라그린 제공◆기회의 땅 광주, 성장을 보고 배운다광주의 애니메이션 업체들은 그나마 타지역에 비해 나은 상황이다.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하 광주진흥원)이 지속적인 제작비와 입주공간 지원사업 등을 진행 중이며, 업체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서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업계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도권의 업체들이 이렇다 할 지원을 못 받는 것에 비해 광주 업체들은 꾸준한 지원을 통해 작품 제작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광주진흥원의 2007년부터 시작한 '기획창작스튜디오 파일럿 제작지원'사업은 예비 창업팀이나 창업 3년 이내 기업에 애니메이션 파일럿 제작비 1억원을 지원하는데, 마로스튜디오, 스튜디오버튼, 아이스크림스튜디오, 몬스터스튜디오 등이 기회를 얻어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송원형 플레이칸 대표는 PD로 활동하며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다 지난 2020년 독립했는데, 해당 사업을 통해 서울에서 광주로 내려와 극장판 애니메이션 '나쁜계집애: 달려라 하니'을 제작 중이다.송 대표는 "광주처럼 지자체나 진흥원 차원에서 이렇게 지원을 이어가는 곳은 많지 않다. 서울진흥원도 애니메이션 지원을 아예 끊기로 했고 많은 지자체들이 지원을 줄이는 추세다"고 설명했다.이명미 울트라그린 대표는 광고업계에서 일하다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었다. 홀로 작품을 만들다 광주진흥원의 지원사업을 통해 지난 2022년 '광주콘텐츠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는데, 공교롭게 현재 함께 일하는 직원 2명은 조선대학교 애니메이션학과 후배들이다.이 대표는 "처음 애니메이션 회사를 이끌며 모르는 것이 많았는데, 광주진흥원의 도움으로 싱가포르 업체와 '우주택배'의 공동제작 업무협약도 맺었다. 앞서 광주에 내려와 성장한 업체가 많아,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2D 애니메이션 제작업체 '울트라그린'은 광주정보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콘텐츠창업보육센터에 입주했다. 사진은 '울트라그린' 사무실 모습.◆극복해야 하는 지방의 한계광주 애니메이션 산업은 꾸준한 지원 속에 후발 업체들도 성장하고 있어 전망이 밝지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광주진흥원의 도움으로 업체들이 파일럿 작품 제작까지는 가능하지만 본편 제작을 위해서는 투자도 받아야 하고 인력도 구해야 한다. 광주의 애니메이션 산업 규모가 국내 3위 수준까지 성장했지만, 방송사와 완구사 대부분이 서울에 있고 전문인력 대다수도 수도권에 모여있어 광주의 업체 대표들은 수시로 광주와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다.인재 육성 면에서도 손해를 본다. 현재 광주·전남에 애니메이션 관련학과는 조선대·순천대·호남대(만화애니메이션학과)와 광주대(시각영상디자인학과)까지 총 4곳뿐인데, 수도권에 업체수가 많다 보니 졸업 이후 광주를 떠나거나, 산업 규모가 애니메이션보다 큰 게임이나 웹툰 쪽으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다. 광주 업체에서도 최근 회사를 그만두거나 게임 업계로 이직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플레이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 '나쁜계집애' 스틸컷.플레이칸 제공송원형 플레이칸 대표는 현재 광주 애니메이션 산업에 필요한 것은 '시간'이라고 설명한다. 지자체에서 꾸준히 지원을 해도 결국 훌륭한 작품이 꾸준히 나와야 하고, 이를 광주 내부에서 소비할 수 있는 충분한 기반이 마련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광주 업체 대표들이 지역 대학에서 특강도 다니는 것도 미래를 내다본 노력이다.송원형 대표는 "애니메이션 산업은 결국 사람에 기반한다. 광주에서 좋은 작품이 꾸준히 나오고, 시민들이 애니메이션을 소비하기 시작하고, 이를 토대로 인재들이 들어오는 순환이 오랜 기간 이어져야 비로소 기반이 마련된다"며 "광주에서 기회를 받은 업체들이 좋은 선례를 만들어 '애니 잘 만드는 도시, 광주'의 밑거름이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임창균기자 lcg0518@mdilbo.com
- · 세계시장 성장 불구 정체기···활로 모색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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