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아플 때 바로 진료 받을 곳 생겼어요"···65년 만에 소아과 생긴 곡성군

입력 2025.05.12. 17:33 강주비 기자
고향사랑 지정기부 통해 소아과 상설 진료 시작
1시간 광주 원정 진료 부담 없애…부모들 "대만족"
"지역에 기여해 기뻐‥"숙련된 의료인력 확보 절실"
12일 오전 9시30분께 곡성군 곡성읍 곡성군보건의료원 소아과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강주비 기자

"민후야, 어서 와! 오늘은 어디가 아파서 왔어?"

12일 오전 9시30분께 곡성군 곡성읍 곡성보건의료원. 아이의 이름을 반갑게 부르는 의사의 목소리에 엄마 손을 꼭 잡고 진료실에 들어선 김민후(7)군의 얼굴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선생님, 코가 막혀서 숨이 잘 안 쉬어져요."

민후군의 말에 의사는 책상 서랍에서 작은 바람개비를 꺼내 들었다. "'후~' 하고 불어볼까?" 아이가 힘껏 숨을 내쉬자, 귀에 청진기를 낀 의사는 곧바로 진료를 시작했다.

이곳은 최근 문을 연 곡성의 첫 '정식 소아과'다.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수요일은 오전 진료만 진행한다. 토요일과 일요일은 휴진이다.

12일 오전 9시30분께 곡성군 곡성읍 곡성군보건의료원 소아과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강주비 기자

지난 2일 개원 이후 어린이날 등 연휴를 제외한 나흘간 81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건강검진과 예방접종은 물론, 감기·폐렴·장염 등 다양한 질환에 대해 전문적인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되면서 지역 부모들은 '원정 진료'의 부담을 덜게 됐다.

민후군의 아버지 김인구씨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며 "지난주에는 알레르기 증상으로 찾았는데, 선생님이 약의 효과와 부작용까지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신뢰가 갔다"며 "맞벌이 부부는 광주까지 진료를 받으러 가려면 연차를 내야 하는데, 이제 집 가까이에 믿고 맡길 수 있는 소아과가 생겨 든든하다"고 밝혔다.

전모(7)군을 데리고 영유아 건강검진을 받으러 온 40대 소모씨도 "예전엔 아이가 열만 나도 광주까지 1시간 이상 달려가야 했다"며 "수두나 독감처럼 감염병이 유행할 때는 새벽에 출발해도 '오픈런'을 해야 했다. 더욱이 광주엔 곡성뿐 아니라 다른 시·군에서도 환자가 몰려 늘 대기 시간이 길었는데, 이젠 멀리 가지 않아도 믿고 진료받을 수 있어 다행이다"고 웃으며 말했다.

'곡성 소아과'는 아이 한 명 한 명에 대한 세심한 진료가 이뤄졌다. 의료진은 아이가 긴장을 풀 때까지 기다려주고, 보호자에게 질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 약 복용 시 유의사항까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12일 오전 9시30분께 곡성군 곡성읍 곡성군보건의료원 소아과에서 한 아이가 진료를 받고 있다. 강주비 기자

곡성군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것은 1960년 전문의 제도가 도입된 이후 65년 만에 이번이 처음이다. 현재 곡성에는 0세부터 15세까지 약 1천800명의 아동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그간 광주·순천 등 인근 도시로 '원정 진료'를 떠나야 하는 실정이었다.

곡성군은 이런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고향사랑기부제를 적극 활용했다. 곡성군은 지난해부터 '곡성에 소아과를 선물하세요'라는 고향사랑 지정기부제를 추진했다. 시즌1때는 출장 진료 기반의 '처음 만나는 소아과' 운영을 위한 8천만원을 모금해 옥과 통합보건지소에서 매주 화·금요일 진료를 시작했다.

이후 상주 전문의 고용을 목표로 한 시즌2 '매일 만나는 소아과' 프로젝트에서도 2억5천만원의 추가 모금에 성공, 곡성보건의료원에 정식 소아과가 문을 열게 된 것이다.

현재 '곡성 소아과' 상주 전문의는 최용준(42) 과장이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을 마친 후 한림대 동탄성심병원에서 근무하던 그는 곡성의 의료 공백을 알게 된 뒤, 직접 곡성군에 연락을 취해 계약이 성사됐다.

최 과장은 "낮은 출산율과 지역 소멸 위기는 결국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일이 좀 더 편해져야 해결될 수 있다"며 "제가 배운 것이 지역 사회에 작게나마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역 안에서 입원 치료까지 해결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어렵더라도 수액 치료나 혈액검사가 수월해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특히 혈관 확보가 어려운 영유아의 경우, 수액 치료와 채혈이 까다롭기 때문에 숙련된 인력 확보와 특별 계약 채용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투자도 꼭 이뤄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강주비기자 rkd98@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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