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가끔 찾는 광주 한 추어탕집은 반찬으로 얼갈이 김치가 나온다. 전라도 김치의 특징인 흔한 젓갈과 고추장은 안 들어가지만 간장과 참기름, 고춧가루 등을 적당히 버무려 맛을 낸 이 집 얼갈이는 그리 맵지도 짜지도 않아 구수한 추어탕에 잘 어울린다.
'얼갈이 배추'는 얼고 녹기를 반복하며 큰다 하여 붙여졌다는 설과 이른 봄 딱딱하게 언 땅을 대충 갈아 심었다 해서 얼갈이라고 하게 됐다는 말 등 명칭에 얽힌 두가지 설이 있다. 얼갈이 배추는 늦가을에서 초겨울에 심는 배추로 저장용 김치보다 이 식당처럼 겉절이나 무침용으로 먹는 게 제격이다. 전남에서도 해남과 나주, 진도 에서 나오는데 겨울에서 봄에 이르는 요즘이 최고의 맛을 낸다.
얼갈이를 비롯한 배추는 이래저래 한국인의 식탁에 빠지지 않는 필수 먹거리로 꼽힌다. 그래서 해마다 배추 수요가 많은 김장철이 아니어도 사철 내내 밥상에 오르는 배추가격에 우리 모두 민감해지기 일쑤다. 이렇듯 배추는 한국인에게 중요한 생존수단이자 일상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어려운 경기에 소득은 제자리고 근근히 버텨내는 하루하루 속에 노후 대비는 꿈도 못 꾸고 그나마 서민들이 실낱 같은 대박 꿈을 꾸게 하는 것은 '로또복권'이다. 첩보영화 007에 나온 제5대 제임스 본드 역으로 스타가 된 아일랜드 출신 배우 피어스 브로스넌이 무명 시절 출연했던 미드 '레밍턴 스틸'은 복권에 당첨된 이들에게 당첨 소식과 상금을 건네주며 여기에 얽힌 사연을 들려주는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는 80년대 국내 TV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복권을 산 사람들은 한국이나 미국 모두 생의 반전을 노리는 서민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현실에 대한 절망과 미래에 대한 부푼 꿈, 작은 종이 한 장에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잡아 삶의 한 줄기 서광을 기다리는 이들이다.
이들은 당첨되기 힘든 것을 알면서도 또 복권을 산다. 밥과 얼갈이로 주린 배를 채우고 복권을 사서 지갑에 넣는다. '배추와 로또'에는 숨가쁜 하루하루 속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붙들려는 몸부림이 깃들어 있다. 혼돈의 탄핵정국 속에서 팍팍한 살림을 꾸려가고 밥벌이에 치이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이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버티게 하고 있다. '배추와 로또'의 힘은 현재진행형이다.
최민석문화스포츠에디터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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