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5년 한겨울, 내 기억 속에 차갑게 굳어 있던 백두산은 영하 35도의 칼바람과 온 세상을 얼려버릴 듯한 최강 한파 그 자체였다. 체감온도 영하 40도를 뚫고 1천442개 눈 덮인 계단과 매서운 얼음바람을 견뎌내며 마주했던 백두산 천지. 당시 흰 눈과 얼음으로 덮인 천지의 장엄함도 가슴 깊이 남았지만, 가혹하리만큼 춥고 험난했던 그 기상은 한편으로 깊은 그리움과 아쉬움의 잔상을 남기곤 했다.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 8월 5일부터 9일까지 4박 5일간, 나는 다시 그 영산(靈山)을 찾았다. 인천에서 연길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이도백하로 들어서는 길, 가슴 한구석은 과연 이번엔 백두산이 어떤 얼굴로 맞아줄지 설렘과 기대감으로 부풀어 올랐다.
백두산 탐방 둘째 날, 북파 산문을 지나 전용 차량을 타고 천문봉에 올랐다. 마침내 마주한 백두산 천지. 10여 년 전 눈보라에 싸여 있던 그곳은 거짓말처럼 화창하게 하늘을 열어젖히고 있었다. 맑고 푸른 하늘 아래, 너무도 맑고 깊은 푸른빛을 띤 천지가 웅장한 자태를 온전히 드러냈다. ‘100번 오르면 두 번 볼 수 있다’는 천지가 눈부신 여름 햇살을 받아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는 풍광을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벅차 올라 ‘감동’이라는 단어 외에는 어떤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그리움이 눈부신 환희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천지의 여운을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약 60m 높이에서 시원한 폭포수를 쏟아내는 장백폭포와 푸른 빛깔이 신비로운 녹연담을 둘러보며 한여름 백두산이 품은 생명력과 위용을 온몸으로 느꼈다. 10여 년 전 얼어붙어 있던 장백폭포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살아 숨 쉬는 대자연의 요동침이었다.
이번 여정은 단순한 백두산 등반에 그치지 않고 민족의 숨결과 역사가 서린 땅을 차분히 둘러보는 뜻깊은 걸음이었다. 훈춘 방천의 동방제일촌과 용호각에 올라 북·중·러 3국 국경이 마주하는 이색적이면서도 아련한 풍경을 바라보았고, 도문에서는 두만강 다리를 사이에 두고 북녘땅을 눈앞에 두며 분단의 아픔을 다시금 되새겼다. 룡정에서는 민족시인 윤동주의 생가를 거닐고 비암산 일송정에 올라 연변 들녘을 바라보며 우리 민족의 애달픈 역사와 항일의 숨결을 가슴 깊이 새겼다. 연길 모아산과 민속촌, 서시장까지 둘러보며 여정을 채워갈수록 감동의 크기만큼이나 아쉬움과 질문도 깊게 자리 잡았다.
현지 가이드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연길공항은 전체 이용객 중 국제 관광객 비중이 40%에 달해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특수 공항이다. 동북 3성 국제선 출입국객 수에서도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 공항의 풍경은, 결국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이 막대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제3국을 거쳐 백두산에 오르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지표다. 왜 우리는 우리 민족의 영산을 남의 땅과 남의 국경, 제3국의 항공로를 통해서만 와야 하는가 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울렸다.
백두산 관광이 북녘땅을 통해 본격적으로 열린다면 이는 단순한 여행길의 개척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는 남북 경제협력의 거대한 물꼬가 될 것이다. 제3국 경유에 소요되던 복잡하고 비싼 구조가 대대적으로 개선되면서 국내 관광·항공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삼지연공항을 활용한 직항로나 육로 관광이 현실화되면 이동 시간과 투입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들고, 그동안 외국 물류·관광 산업으로 빠져나갔던 부가가치가 온전히 한반도 경제권으로 회귀하게 된다.
나아가 백두산은 단일 관광지에 머무르지 않고 원산과 마식령, 금강산과 설악산을 잇는 한반도 동해안 거대 관광 벨트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는 국내 관광객 유치는 물론 글로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독보적인 관광 자산으로 거듭날 것이다. 여기에 백두산 종합 관광단지 개발과 도로, 철도 등 인프라 구축이 더해진다면 남측의 건설, IT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북측에는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가져오는 상생의 결실로 이어지게 된다.
영하 35도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처음 인연을 맺고, 10여 년 뒤 차고 푸른 청명함으로 다시 맞이해 준 백두산. 8월의 청명한 햇살 아래 빛나던 푸른 천지는 오랫동안 품어온 그리움에 대한 완전한 답이었다. 그러나 그 눈부신 푸른빛이 진정한 민족의 자산이자 경제적 결실로 완성되기 위해서는, 언젠가 우리 땅과 우리 하늘을 통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백두산 경제학’이 현실이 되어야 한다. 10여 년 전의 시린 한파를 지나 오늘날의 화창한 천지를 마주했듯, 막힌 남북의 물길이 트여 백두산이 한반도 공동 번영의 중심 거점으로 서게 될 그날을 간절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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