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 5월 26일 오후, 광주 전남도청 앞마당. 스물세 살의 청년 이재호가 낭독한 선서문은 짧지만 엄중했다. "우리는 계엄군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도청을 사수한다." 이 순간, 이름도 계급도 없는 40여 명의 시민이 '기동타격대'라는 이름으로 광주의 마지막 방어선을 형성했다.
그들은 무장을 했지만, 무기를 들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총을 쏘지 않는다." 복수가 아닌 절제, 분노가 아닌 책임을 택했다. 국가는 무너졌지만, 시민이 국가를 대신해 그 자리를 지켰다. 고아 출신 중식당 종업원, 나전칠기 기술자, 고등학생, 대학생. 그들은 다만 자신이 지켜야 할 이웃을 향해 일어섰다.
그러나 항쟁은 15시간 만에 끝났다. 계엄군의 기습 작전으로 대부분 체포·사살되거나 실종됐다. 살아남은 이들은 '내란죄'로 조작되어 고문과 낙인 속에 40여 년을 견뎠다. 누구도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시간. 역사의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이, 이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항쟁의 시간 속에서도 이들의 이름은 소환되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는 말처럼, 기동타격대의 정신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로 다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는 계엄군의 '소극적 임무 수행'을 긍정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은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데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1980년 광주에서 기동타격대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월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의 천명이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오늘의 정치는 그날의 기동타격대에게, 그 물음을 다시 돌려받고 있다.
기동타격대는 결코 권력을 위해 싸운 적이 없다. 오직 공동체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그들은 끝까지 남았다. 5월의 광주는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정치와 시민 모두가 답해야 할 때다. 이제 기억은 책임이 되어야 하며, 그 책임은 곧 내일을 지키는 용기로 이어져야 한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
법원, 조규연 5·18 부상자회장 불신임 총회 무효 조규연 공법단체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이 불신임된 총회는 무효라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광주지법 민사21부(유석동 부장판사)는 17일 조 회장과 최창수 5·18 부상자회 상임부회장 등 5명이 제기한 임시중앙총회결의 효력정지 가처분을 받아들였다.앞서 조 회장과 최 상임부회장 등은 지난달 14일 5·18 부상자회 대의원 A씨 등 93명이 소집한 2025 임시중앙총회에서 불신임 됐다.당시 A씨 등은 조 회장이 후보 단일화를 위해 실시한 예비경선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는 정관 위반이며, 회장 선거에 입후보하면서 학력을 허위로 기재했다고 주장했다.이에 조 회장 등은 총회 소집요건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정관상 중앙총회를 소집하려면 구성원의 ½이상의 소집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소집을 요청한 93명 중 31명은 소집요청 동의를 취소하고, 4명은 구성원 자격조차 없었다는 것이다.이에 대해 재판부는 "5·18 부상자회 대의원이 169명이므로 중앙총회가 소집되려면 적어도 85명의 요청이 있어야 한다. A씨는 93명이 소집을 요청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이나 추후 31명이 소집 의사를 철회했다"며 "나중에 31명 중 15명이 소집요청에 동의한다는 확인서를 다시 제출했지만 85명을 넘지는 않는다. 적법한 소집요구를 거쳐 이뤄진 총회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 "5·18 정신 헌법 수록 반드시 실현"
- · 무등일보 ‘기동타격대 기획’, 5·18 언론상 대상
- · 국가보조금 유용 5·18 부상자회 관련자들 무더기 재판행
- · 끊이지 않는 5·18 부상자회 파행...보훈부는 직무유기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