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동타격대, 그날의 물음이 오늘을 겨눈다"

입력 2025.06.09. 14:53 이용규 기자
홍인화 전)5·18민주화운동기록관장


1980년 5월 26일 오후, 광주 전남도청 앞마당. 스물세 살의 청년 이재호가 낭독한 선서문은 짧지만 엄중했다. "우리는 계엄군으로부터 시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질서를 회복하며 도청을 사수한다." 이 순간, 이름도 계급도 없는 40여 명의 시민이 '기동타격대'라는 이름으로 광주의 마지막 방어선을 형성했다.

그들은 무장을 했지만, 무기를 들지 않았다. "우리가 먼저 총을 쏘지 않는다." 복수가 아닌 절제, 분노가 아닌 책임을 택했다. 국가는 무너졌지만, 시민이 국가를 대신해 그 자리를 지켰다. 고아 출신 중식당 종업원, 나전칠기 기술자, 고등학생, 대학생. 그들은 다만 자신이 지켜야 할 이웃을 향해 일어섰다.

그러나 항쟁은 15시간 만에 끝났다. 계엄군의 기습 작전으로 대부분 체포·사살되거나 실종됐다. 살아남은 이들은 '내란죄'로 조작되어 고문과 낙인 속에 40여 년을 견뎠다. 누구도 이들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던 시간. 역사의 변방에 머물러야 했던 이들이, 이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2024년 12월, 국회의사당을 둘러싼 항쟁의 시간 속에서도 이들의 이름은 소환되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렸다'는 말처럼, 기동타격대의 정신은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가치로 다시 떠올랐다. 헌법재판소는 계엄군의 '소극적 임무 수행'을 긍정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은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데 있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1980년 광주에서 기동타격대가 보여준 모습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5월 정신을 헌법에 담아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은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대한민국 정치가 추구해야 할 방향성의 천명이다. 권력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가? 오늘의 정치는 그날의 기동타격대에게, 그 물음을 다시 돌려받고 있다.

기동타격대는 결코 권력을 위해 싸운 적이 없다. 오직 공동체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그들은 끝까지 남았다. 5월의 광주는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그 거울 앞에서 정치와 시민 모두가 답해야 할 때다. 이제 기억은 책임이 되어야 하며, 그 책임은 곧 내일을 지키는 용기로 이어져야 한다.

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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