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말을 인용하며 '오월 정신'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소환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4일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사가 화제다. 이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과 '성장'을 키워드로 대중성과 설득력을 극대화한 문체적 특징을 보였다고 평가된다. 이 대통령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며, 거의 모든 메시지를 국민에게 귀속시키는 방식으로 전개했다. 이는 정치적 정당성의 근거를 국민 주권에 두는 표현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한강 작가가 말한 대로, 과거가 현재를 돕고, 죽은 자가 산자를 구했다"라며 "이제는 우리가, 미래의 과거가 되어 내일의 후손들을 구할 차례다"라고 말했다. 짧지만 강렬했던 인용은 국민들에게 1980년 5월의 소년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상기시켰다.
이와 함께 "국민은 다시 촛불을 들고 민주공화국을 구했다", "장갑차와 자동소총에 파괴된 민주주의"와 같이 정치적 사건을 언급하며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울 시간이다"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민주주의 제도와 가치가 위협받았다는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추진에 맞서 거리로 나온 시민들의 모습에서 1980년의 광주가 오늘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토대가 됐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국민이 주인인 나라를 만들겠다"며 민주주의 회복과 국민주권정부를 국정의 중요한 목표로 삼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인용한 한강 작가의 말은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처음 언급한 내용이다.
한강 작가는 지난해 노벨상 수상 소감에서 "이십 대 시절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 페이지에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고 적어놓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는 광주에서 희생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접하고 나서 그 질문들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뒤집어야 함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한강 작가의 대표작 '소년이 온다'는 이러한 질문들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의 소년 동호를 중심으로 그의 주변 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국가 폭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절제된 문체로 그려냈다.
결국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곧 오월 정신의 핵심이다. 5·18이라는 '과거'가 12·3비상계엄이라는 '현재'를 도왔으며, 동호와 같은 오월의 영령들은 다시 한 번 거리에 나선 시민들을 구해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미승 광주전남작가회의 회장은 '문학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온 일'을 직접적으로 나타낸 취임사였다고 평했다. 김 회장은 "5·18부터 12·3까지의 사태들은 한강 작가의 질문을 체감할 수 있었던 일들이었다"며 "이는 문학이 단순한 예술의 한 장르로서 따로 노는 것이 아닌, 우리의 생활이고, 삶이고, 사랑인 것을 이 대통령이 전한 것이라고 해석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특히 나라의 혼란으로 국격이 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한강 작가의 수상 등으로 국격을 받쳐준 것이 문학이었어서 그 의미가 깊다"고 덧붙였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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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한국전쟁·70년대를 관통한 현대사의 肖像 384 중편소설은 단편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서사를 넓게 펼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 장르로 꼽힌다.주로 굵직한 대하 장편소설을 써온 이계홍 작가가 최근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도서출판 도화刊)를 펴냈다. 이 중편소설집은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해인사를 폭격하라', '귀국선 우키시마호' '인지 수사-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 등 4편으로 구성돼있다. 이들 작품은 작가가 장편소설을 쓰다가 만난 우리 역사에서 특이한 소재와 중요한 사건을 묵혀버리기에는 너무도 아깝다는 생각으로 등장인물들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여 집필했다.특히 이번 소설집은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역사적 맥락과 해당 사료를 바탕으로 사실적으로 재현해낸 리얼리즘 문학의 정수로 평가된다. 선 굵은 서사구조와 단단한 스토리 텔링이 독자를 견인한다. 동시에 역사와 시대를 넘어서는 존재로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고투에 대한 증언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의 언론사 경력이 말해주듯 기자적 현장성과 작가적 상상력이 십분 발휘된 작품들로 독서계에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킬 문제작으로 평가된다.수록작품 중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는 송안나(본명:송숙자)의 기구한 운명을 1970년대의 치열한 삶의 현장을 바탕으로 진한 남도 사투리와 거친 욕찌거리로 사람 냄새 짙게 풍기는 이야기다. 속칭 양갈보로 살아온 송안나라는 인물을 통해서 인간의 한 생애에서 암초를 만나는 주요한 원인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면서 상처받고 외로운 사람을 만나 따뜻하게 살아갈 날을 기다린다. 작가의 열망이 작품 제목 '순결한 여인'으로 승화되고 있다.'해인사를 폭격하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으로 군인에 관한 인물전기를 많아 쓴 작가의 장점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미5공군의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천년 고찰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킨 한국 공군 전투조종사의 모습을 실제 전투를 하는 듯한 실감나는 표현과 긴장감으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귀국선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한국으로 돌아오는 1호 귀국선인 우키시마호가 폭발해 침몰하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8천 명이 넘은 사람이 승선했는데 생존자는 불과 이천여 명 밖에 안된다고 전해지는 이 사건을 다루면서 작가는 미군이 설치한 수중 기뢰 때문이든 패전한 일본의 방치와 외면으로 침몰했든, 수천 명이 수장된 사실과 진상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실정을 매서운 눈으로 들여다보고 있다.'인지 수사'는 남의 문중 땅에 몰래 묘를 쓴 사람과의 소송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이 소설은 우리로 하여 비판과 냉소의 형태가 현실의 어떤 순응과 체념의 경로를 거치는가를 심도 있는 내면과 심리묘사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남의 문중 땅을 무단으로 점령한 자의 묘를 해결하지 못하는 재판 앞에서 패배의식을 느껴야 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그리고 있다.이계홍 작가는 무안에서 태어나 동국대 국문학과와 동대학원 석사 졸업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지난 74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받고 작품활동을 시작했다.그는 30여년 동안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기자로 일했고 장편 '초록빛 파도' '장만' 등을 펴냈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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