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파란 온옴으로 감당한 이들의 슬픔
항일독립운동사에서 배척된 정율성의 삶

문학은 잊히고 묻혀버린 역사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장르다. 더욱이 현대사의 왜곡된 사실을 바로잡고 이를 후대에 복원시키는 것도 작가의 책무다.
심영의 작가가 최근 소설집 '그날들'(푸른사상刊)과 장편소설 '옌안의 노래'(푸른사상刊)을 잇따라 출간했다.
이중 소설집 '그날들'은 현대사의 비극을 그린 다섯 편의 단편소설과 함께 고려 몽골 침략기의 삼별초 항쟁을 조망한 중편소설이 딤겨 있다. 작가는 시대의 파란을 온몸으로 감당해야 했던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을 소설로 끌어안으며 그날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오늘의 역사로 되살리고 있다. 이 소설집에 수록한 여섯 편의 소설 중 다섯 편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조망하고 있는 작품들이며, 맨 마지막에 수록한 중편소설 '그 밤의 붉은 꽃'은 고려 몽골 침략기의 삼별초 항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옌안의 노래'는 조국 독립을 위해 끝까지 투쟁한 항일지사 정율성을 다루고 있다. 그는 어쩌다 중국공산당에 가입하고 사회주의자가 되어야만 했을까. 1945년 광복 이후로 그는 왜 고향인 광주로 돌아가지 못하고 북한과 중국을 전전해야 했을까. 중국에서도, 북과 남에서도 소외당할 수밖에 없었던 영원한 이방인 정율성의 일대기를 책에서 만날 수 있다.
1914년 광주에서 출생한 정율성은 1933년 형을 따라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입학했고, 음악을 공부하는 한편 의열단으로서 활동했다. 1930년대 중국에서 일본 제국주의자와 대치한 군대는 마오쩌둥의 공산당 군대가 유일했는데,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의 본거지였던 타이항산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과 한국 민중의 해방이 실천에 옮겨질 수 있도록 해주는 장소였다. 조선의 해방을 위한 투쟁 과정 중 그는 옌안에서 본격적인 공산당원 활동을 시작했다. 광복이 되자 정율성이 속한 조선의용군은 북한으로 향하게 됐다. 그러나 남북으로 각 정부가 세워진 한반도에서는 무정이 지도하고 있는 조선의용군과 김구가 주도하고 있는 임시정부 모두 남과 북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해방된 조국에 입국하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
옌안에서는 '중국인민해방군가'를, 평양에서는 '조선인민군행진곡'을 작곡하며 북한 인민군의 사기를 북돋았던 정율성의 행적에 대해 일부의 비판도 존재한다.
작가는 일본 제국주의자의 억압에 맞서 투쟁했던 항일운동가들이 불가피하게 공산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절의 상황을 고려했다. 그는 조국이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되기를 염원했고 자신의 음악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다.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항일독립운동의 역사에서 배척됐던 정율성의 삶과 정신을 조명했다.
소설가 겸 평론가, 인문학자. 오월문학연구가 등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온 저자 심영의씨는 전남대 국문과에서 현대문학을 전공하고 '5·18민중항쟁 소설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1994년 전남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및 2020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이 당선돼 문단에 데뷔했다. 장편소설 '사랑의 흔적'과 '오늘의 기분', 평론집 '소설적 상상력과 젠더 정치학' 및 '5·18, 그리고 아포리아' 등 총 15권의 저서를 펴냈으며 2023년 제2회 광주 박선홍 학술상을 수상했고, 오랫동안 전남대 인문대학 등 대학 안팎에서 인문학을 강의하며 후학을 양성하는데 힘썼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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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선으로 그려낸 삶과 추억 384 시는 감성의 산물이다. 이성과 논리의 언어가 아니다.그래서 시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읽힐 때 진정한 의미를 획득한다.김영자 시인이 최근 시집 '시꽃 물들다'(시와사람刊)를 펴냈다.이번 시집에는 감탄을 자아내는 새로운 해석과 착상이 돋보이는 시편들이 수록돼 있다.시인은 모서리 없는 향기처럼 함박웃음으로 너울거리는 모란을 보여 아슬히 푸른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며 홀연히 춤추다 지는 절망을 노래하기도 한다.그는 낯설게 하기 기법을 바탕에 갈아 싱그런 표현들을 버무렸다."먼동 트이는 아침/ 눈부신 햇살 주워담은 개천가/ 물비늘의 눈빛 반짝거린다// 왁자한 소문 울컥이는 어둠 닦고/ 너스레한 노점 아지매들의 혈색 좋은 웃음소리삼백육십오 일 좌판 깔고 흥정한다// 줄줄이 엮은 부양가족 품기 위해/ 불구덩이라도 뛰어들 수 있다는/ 일념 하나로/ 시커멓게 멍든 주먹 가슴으로/ 애환의 물살 건넌다// 생채기로 찢긴 날카로운 비수/ 아린 침묵 꿰매며/ 도마 위에 납작 엎드린 오후/ 삐걱거리는 허리 통증 할퀴고 간/ 파닥이는 은빛 나래짓/ 황금빛 노을 떨이한다// 세느강이라 불리는 양동 다리 옆/ 역사 깊은 광주의 푸른 기상 안고/ 무등의 젖줄기로 태어난/ 화이트칼라 미모와 흰 베레모 뽐내는/ 중앙여고// 양동 다리 밑/ 떡볶이와 오징어 튀김도/ 덩달아 튀어올라/ 발랄한 안색으로 무더기 수다 떤다// 철썩이던 광주천 계곡/ 지워도 지워지지 않는/ 버들강아지 빛으로 남아 있다."('추억의 양동시장' 전문)예나 지금이나 광주 양동시장은 사람과 상인들로 북적댄다. 그 시절 양동시장은 광주의 중심이며 정이 묻어나던 곳이었다.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이들도 양동시장의 활기와 생명력에서 힘을 얻었다. 그리고 그 풍경은 추억이 됐고 아련한 시간 속에서도 기억으로 자리해 있다.박덕은 시인은 "사실 시는 주제를 노출할수록 시의 특질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며 "김영자 시인의 시들은 이러한 시의 특질을 잘 고루 구비하고 있어서 한층 돋보인다"고 평했다.김영자 시인은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라며 "자연 안에 깃든 신성을 벗삼아 더 이상 헤매일 것 없는 내 안의 나를 만나 깊이 잠든 시심을 깨운다"고 말했다.그는 '현대문예' 추천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한국여성문학대전 최우수상, 독도문학상, 빛창문학상 우수상 수상, 광주문인협회 이사와 광주시인협회 이사, 한실문예창작회원, 둥그런문학회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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