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 근무는 '워라밸'을 지켜주지 않는다

입력 2024.08.15. 14:25 최소원 기자
정상 과로
에린 L.켈리, 필리스 모엔 지음, 백경민 옮김|이음|456쪽
준비 없이 맞닥뜨린 '유연 근무'
과로는 어쩌다 정상이 되었나
실험과 인터뷰로 도출한 솔루션
대규모 연구팀 5년의 연구 결과
과부하 노동의 근본 문제 파헤쳐
현실적이고 새로운 업무법 소개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권한은 언제 어디서나 일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바뀔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뜻밖에도 우리는 언젠가 하리라 구상만 하던 혁신적이고 새로운 업무 방식을 급작스레 체험했다. 집 안에 앉아 모든 일을 컴퓨터로 처리하는 미래를 맞닥뜨린 것이다. 회의도, 수업도, 심지어는 병원 진료까지도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이뤄졌다. 재택근무는 더 이상 미래에나 가능한 혁신적인 일이 아닌 일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됐다. 이제 재택근무와 유연 근무는 많은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정책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유연 근무는 정말로 우리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줬을까?

유연 근무와 재택근무가 보편화되며, '일할 맛 난다', '살 만해졌다' 느끼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왜 혁신적인 정책이고 복지라고 말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더 힘들게 느껴질까? 이 책은 기업에서 혜택인 듯 제공하는 '유연성'이 노동자를 위한 유연성이 아니라, 일의 필요에 따른 유연성임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유연 근무제가 가장 중요한 실제 문제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12일 서울 성동구 성수역 3번 출구 앞이 퇴근하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일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일도 삶도 모두 풍요로운 '워라밸'을 꿈꿀 것이다. 하지만 저자들은 가장 중요한 것은 워라밸이 아니라고 말한다. 워라밸을 따지기에는 일의 양 자체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방대한 양의 인터뷰를 통해 저자들은 지금 워라밸을 따질 때가 아니라, 이 많은 일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라고 역설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문제의 핵심인 '과부하(overload)'다.

이 책은 분석과 연구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 두 저자는 우리가 실제로 일터에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기존의 방식이 가진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표준과 방식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모색한다. 저자들이 속한 연구팀인 '일, 가족, 건강 네트워크'는 미국 국립보건원 등 여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사회학자, 심리학자, 경제학자, 공중보건학자, 가족학자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연구팀이다. 이곳에서 함께 개발한 새로운 업무 방식을 소개한다.

지난 2021년 경기 화성시 한 가정에서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자녀를 둔 학부모가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한편 아이들은 온라인 수업을 받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실제로 사용할 수 없다면 의미가 없다. 이상적인 솔루션도 현실에서 실현할 수 없다면 공상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저자들은 자신들이 제안한 솔루션인 'STAR'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현장 연구를 실행한다. 회사의 규모와 문화 등 여러 측면을 신중하게 고려해, '포춘' 잡지 선정 500대 IT 대기업 중 하나를 선정한다. 저자들의 연구팀은 그곳에 상주하며 '개인은 근무 시간 및 장소 변경에 관해 관리자의 허가를 받지 않는다', '정기 회의와 같은 기존 관행에 대해 팀 내에서 재고한다' 등의 실천이 포함된 'STAR' 조치를 5년간 실험했다.

이 실험은 결과적으로 직원들의 건강과 삶의 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뿐만 아니라, 회사에도 이익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관리직, 기술직 등 여러 직무, 여러 인종과 성별, 연령대의 입장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는 수백 건의 인터뷰는 수면 아래에 있던 문제들의 윤곽을 선명히 비추며 우리 노동이 나아갈 길의 키잡이가 돼준다.

최소원기자 ssoni@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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