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 의료센터장이 말하는 '의사의 길'

입력 2024.05.16. 15:10 최민석 기자

공항으로 간 낭만의사

신호철 지음/ 저상버스/ 304쪽

"소아과 의사들은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도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고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한 조언이나 충고, 교육도 해야 한다.… 공항 의료센터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 중 어린이의 비중이 크지는 않다. 하지만 몇 차례 안 되는 소아 진료에 어른 진료보다 몇 배의 노력과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원래 갑자기 아프다' 중)

"응급치료를 했다가 범죄행의로 처벌받은 사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협의임을 입증하기 위해 경찰서를 오가거나 법적 공방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심적, 금전적, 시간적 손해를 떠안게 되는 문제가 있다. 물론 언제든 어느 때든 의사나 구조자를 찾는 간절하고 애타는 목소리가 들린다면, 내 몸은 이런 법조항을 떠올릴 겨를도 없이 먼저 반응할 것이다. 나는 의사이기 때문이다. 아니, 그 이전에 나는 성숙한 시민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선한 사마리아 인을 위하여' 중)

이른바 '의정 갈등'이 끝 간 데를 모르고 있다. 서로의 생각과 사정에 대한 소통과 공감이 절실한 때다. 특히나 일선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야기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런 가운데, '별반 돈이 안 되는' 진료 현장에서 20여 년간 묵묵히 일해 온 한 전문의가 그동안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책으로 써 세상에 내놓았다. 인천국제공항 의료센터장 신호철씨가 에세이집 '공항으로 간 낭만 의사를 펴냈다.

'인천공항 의료센터'는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에게 생소한 곳이다. 하지만 연간 약 7천만 여행객이 이용하고 7만여 상근자가 일하고 있으며, 종합병원이 있는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에 위치한 국제공항의 의료기관인 만큼, 공익적으로 꼭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한편 이곳은 들뜬 해외여행객부터 고단한 공항근로자까지, 외국인 관광객부터 이주 노동자까지, 출장 기업인부터 상주 노숙인까지 각양각색 남녀노소의 질병뿐만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비상상황의 의료적 사태와 고도 10km 상공에서 운항 중인 항공기 내의 발생 환자까지 관리하는 곳이다.

저자는 그처럼 '버라이어티'하고도 공익적인 진료 현장에서 20여 년 일하며 보고 듣고 겪고 생각한 것들을 차근차근 책 속에 풀어놓고 있다. 그러면서 그 이야기들 속에 어떠한 정치적 견해나 이권 지향적인 속내도 비치지 않는다. 그저 의업의 본질에 대한 생각과, 의사의 본분을 수행하면서 느끼는 조건과 상황의 문제만을 담담히 말할 뿐이다.

오랫동안 진료 현장을 지켜온 이의 이러한 태도와 생각이 오히려 극한으로 치닫는 '의정 갈등'을 푸는 단초가 되지 않을까 싶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표피적 현상이 아니라 본질에 대한 진지하고도 구체적인 성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살다 보면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을지는 선택의 시점에서는 알 방법이 없다. 그것은 아마도 신의 영역일 것이다. 저자는 그때 마음을 다시 잡고 이 길을 계속 걸어온 나의 선택이 그저 옳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한다.

지난 2023년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연구원이 발표한 '초중등 진로교육 현황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어린이와 청소년의 희망직업은 학령이 올라갈수록 순위가 현실적으로 변화하지만 대체로 '전문직종'의 범주 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진로의 방향이 잡히고 자신의 능력과 적성에 대한 인식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학생이 되면, 직업보다는 직장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공기업과 대기업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와는 별개로 '공부깨나' 하는 아이들은 초등학생 때부터 '의대반' 열풍에 휩쓸리는 게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와 문화적 수준을 알 수 있다. 강자의 덕목은 말할 것도 없이 '역지사지'다.. 이 책 속 곳곳에서 독자들은 '공항 의사' 신호철 원장이 아픈 사람을 대하는 역지사지의 태도와 자세를 엿볼 수 있다.

최민석기자 cms20@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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