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칼럼] 12·3 계엄과 5·18 45주년, 광주 2030에 주목한 이유는

@유지호 입력 2025.05.14. 17:48
유지호 디지털본부장

당혹스러웠다. 2022년 3·7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있을 때였다. 기존의 정치 문법과는 다른 '초식'의 선거운동 양상이 나타나면서다. 지역 대신 세대가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2020년 4·15 총선 당시 여당(민주당)에 몰표를 줬던 특정 세대가 1년 뒤인 2021년 4·7 재·보선에선 야당(국민의힘)으로 몰리면서 승부를 갈랐다. 해방 이후 줄곧 진보 쪽의 든든한 기반이었던 20·30대 남성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이른바 '이대남'으로 불렸던 이들이다.

그 간 민주·개혁 진영의 핵심 지지 지역이었던 광주·전남도 들썩였다. 12.72%.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선 당시 광주 득표율이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래 보수 대선 후보가 받은 역대 최고이자 첫 두 자릿수 지지율이었다. 복합쇼핑몰 논란은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인구가 144만명인 광주엔 복합쇼핑몰과 창고형 할인 매장이 없다. 광역시 중 유일하다. 열악한 쇼핑 여건 문제가 불거지며 논란이 전국적으로 확산된데는 온라인 커뮤니티 여론을 주도한 이들이 있었다.

디지털 노마드 … 선거전 '블루칩'

모바일은 여론전의 최전선이 됐다. 정치성향 등에 따라 활발하게 분화된 커뮤니티에선 키보드 전쟁이 초 단위로 벌어졌다. 댓글에 대댓글 등 민감한 이슈엔 욕설과 가시돋친 설전이 오갔다. 논쟁에 여론조사 지지율이 요동쳤다. 현실에서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진 것이다. 꼬리가 몸통을 흔든 격이었다. 대선 주자들이 일명 '넷심'의 향방에 민감했던 이유다. 디지털 시대, 속도·여론전에 능한 2030세대는 블루칩이었다.

세대명은 시대상의 반영이다. 2030은 2000년대 이후 태어나거나 청소년기를 보낸 세대다. 과거와 달리 민주화와 공동체 등이 중시되던 시대가 아니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취업 등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큰 과제였다. 간단·재미·정직, 이 세 가지로 표현된다. 마케팅 전문가인 임홍택씨가 쓴 책 '90년생이 온다'를 통해서다. 특정 정당에 집착하지 않다보니, 어디로 흐를 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크다는 것도 이들의 특징이다.

지금은 가장 핫 한 세대가 됐다. 지난해 12·3 비상계엄부터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파면 선고까지 123일. 온 국민이 충격과 혼돈에 빠진 그 기간, 집회·시위 등을 주도하며 '광장 여론'을 끌어갔다. 젊은층이 탄핵 집회에 적극 참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시작으로 87년 6월항쟁, 촛불집회 등 저항과 변혁의 시기엔 언제나 젊은 세대들이 앞장서 왔기 때문이다. 45년 전에도 그랬다.

광주 시민들의 집단 트라우마를 자극했다.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나타난 군인들이 소총을 들고 본청 유리창을 깨는 폭력적 장면에서다. 총을 든 공수부대원들이 민간인과 맞서는 모습에, 80년 5월 광주의 악몽이 소환됐다. 1979년 12·12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는 이듬해 5월 18일 0시를 기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다.

민주화의 성지, 광주는 저항했다. 대가는 처참했다. 총칼·군홧발에 무참히 짓밟혔다. 당시 대학생 등 2030의 피해가 컸다. 최정예로 길러진 공수부대원들이 집회·시위에 나선 학생과 시민들에게 총을 쐈다.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최종보고서에 기록이 있다. 1980년 5월 18일∼27일, 매일 접수된 30건 이상의 부상·사망 신고 중 절반 가량이 30세 이하 청년층이었다. 또한 광주와 인근 지역에서 발생한 사망자 166명 가운데 10대(58명)·20대(64명)·30대(21명)는 모두 143명(86.2%)에 달했다.

"계엄, 국가 역할과 민주주의 고민 계기"

역사는 반복된다. 광주 2030세대는 '계엄과 탄핵 심판 과정 등을 어떤 관점에서 바라봤을까'. 무등일보가 '두 번의 계엄 마주한 광주 청년, 민주주의를 묻다' 시리즈를 시작한 배경이다. 광주 4개 대학 대학생들이 비슷한 또래의 청년들에게 궁금해 하는 질문들을 토대로 20·30대 1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동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생각·고민들을 오롯이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먹먹했다. 처음엔 두려움에 떨었다. 트라우마 탓이다. 12월 3일 새벽, 한 20대 청년 활동가의 증언이다. "어머니께서는 예비 검속에 걸리실까봐 오밤 중에 집 안 책장을 샅샅이 검열했다. 책잡힐 만한 건 모조리 폐기했다. 옆에서 거드는 아버지의 반응도 거짓말처럼 진지했다."

희망도 봤다. 45년 전 처럼, 물러서지 않고 맞섰다. 국가의 역할과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거다. 올해 5·18은 특별하다. 전두환 신군부가 권력을 잡은 80년과 달리, 민주적 절차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란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5·18 정신의 헌법적 가치를 국내·외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45년 만의 계엄에 대한 공감과 역설. 대한민국은 다시 갈림길에 섰다. 문명의 대전환기, 새로운 리더십의 시대다. 광주·전남 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에 새로운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사회 대통합과 공동체 회복, 지속가능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등은 6·3 대선의 시대정신이 됐다. 투표엔 미래 가치가 담겼다. 미래 세대를 위한 변화와 희망은 정치인의 존재 이유다. 이젠 5·18 주간에 광주를 찾는 위정자들이 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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