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의 30년 세월 붓칠··· 수목원으로 피어난 자연

입력 2025.10.26. 16:19 이용규 기자
[남도정원산책] 순천 화가의 정원산책

그곳에서는 자연과 예술 삶의 이야기가 흐른다. 넓은 대지 위에서 남편은 큰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섬세함으로 메워나간다. 정원지기들의 남다른 수고가 느껴진다. 부부가 32년간 시간을 담은 나무와 꽃들은 풍성하고 탐스럽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결실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순천시 별량면 장학마을에 자리잡은 '화가의 정원산책'에는 잔인한 올여름 무더위에도 꿋꿋이 푸르름을 간직한 수목과 초화류들이 가을의 색조로 칠해지고 있다. 가을 서정을 듬뿍 담아낸 한폭의 그림이다. 평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정원 풍경은 마을 앞에 펼쳐진 황금 들녘과 아름다운 조화로 가을 서정시를 연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씩 붉고 노래지는 이파리들은 앞으로 컬러풀한 외관으로 정원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정원 초입의 우람하고 늠름한 당산나무와 모과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말해준다. 300년 이상이 된 이 나무들은 근위병처럼 꿋꿋하게 한자리에서 마을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안뜰에서 시작했다. 녹색 잔디와 나무와 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본 듯한 아담하고 멋스러움이 넘친다.

대지 위에 심겨진 나무와 꽃들은 300년 된 살구나무와 동백나무를 제외하고 부부 정원지기의 손길로 태어난 것들이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을 것인가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연의 캔버스에 꽉 찬 꽃과 나무는 방문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부부가 채색한 나무와 꽃에는 어느덧 깊은 그윽함이 자리잡고 있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작은 수목원이다. 안뜰에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지기가 계단식 지형에 맞게 테마별로 심겨진 나무들이다. 단지 구색만을 맞춘 것이 아니라 수목 종류와 규모도 제법 크다. 정원지기의 마음의 읽혀진다. 다랑이 정원으로 명명하고 계단식으로 조성한 곳이 눈길을 끈다. 대나무 숲을 이루기 전 이 일대에서 다랑이식으로 농사를 지었던 것을 식물과 나무로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나무와 꽃을 품고 있는 대지의 역사를 읽어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5개 테마로 조성된 정원의 주인공인 카멜리온 참죽, 삼지닥나무, 동백, 가시나무, 먼나무, 적백일홍, 단풍나무 등 나무와 식물의 정취와 풍경은 힐링과 휴식의 기운을 전한다. 싸목싸목 발걸음을 한 발짝 뗄 때마다 정원지기가 이곳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은 방문자들도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몸속에 땅의 기운이 전해진다. 나무와 꽃향기에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숲의 기운이 폐 깊숙이 빨려 든다.

특히 대숲이었던 이곳에서 발견된 동백 군락지는 핫플레이스다. 300년 된 우람한 나무 20여그루에서 빨갛게 피워낸 꽃들은 초봄 화가의 정원산책을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주연 배우인 셈이다.

화가의 정원에서 보물이 되고 있는 동백군락지는 대숲을 베어내고서야 무더기로 자생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곳에서 많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을지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의외의 소득이었다. 다양한 나무들의 향기에 취해 다다른 '해뜨는 정원'이라고 명명된 곳에 서니 바로 앞에 첨산과 순천만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갤러리가 있다. 부인인 정원지기가 자연 속에서 얻은 영감을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숲에서 만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도 남다르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정원지기 남씨와 민명화씨 부부가 자연을 캔버스로 삼고 붓칠해가고 있는 현장이자 작업공간이다. 그 세월이 32년이다. 1995년 도시생활을 하던 부부는 전원생활에 나섰다. 남편은 조경 전문가이고 아내는 화가로 꽃과 나무를 좋아했으니 전원생활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100년 된 한옥과 살구나무와 대나무숲이 있던 대지 300평의 이곳을 소개받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운천저수지 풍경에 마음에 끌렸던 터라 주저함 없이 구매했다.

직장생활과 작품활동을 하는 부부는 주말이 되면 세 자녀와 함께 이곳에서 추억만들기를 했다. 채소를 심고 팻말을 붙이고 아이들은 작은 돌을 주워다 놓았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아내의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안뜰 뒤 대나무 숲까지 추가로 매입하면서 테마별로 이에 알맞은 나무를 심어나갔다.

장학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긴 학의 형상인데,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안뜰에는 상록수를 심어 보완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부부의 작업은 철저하게 분업체계이다.

조경 전문가인 남편은 큰 그림으로 설계, 즉 나무 종류, 심을 위치 등을 정하고. 화가인 아내는 남편과 함께 짠 구도 속에 전체적인 조화 색상의 조합에 주력한다.

이렇게 해도 나무가 너무 잘 자라 2~3년이 흐르면 나무나 꽃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 같으면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덧칠을 해서 수정할 수 있을 것인데 자연이다 보니 고민이 많음을 피력했다.

그래서 식물을 심는데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다. 예년에는 초화류를 선택하는데 화려함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제일 강하고 오래가는 것 즉 다년생 위주로 식물을 키운다. 환경변화도 실감하기에 나름 이에 맞게 대응한다.

갈수록 사나워지는 기상 이변과 관련해서는 많은 대응이 따를 수밖에 없다. 평지가 아닌 언덕이다 보니 심을 식물에 대한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현안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꽃과 나무 들을 좋아했다"는 민화백은 "힘들겠네요 고생하시겠어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란다. "정원에서 풀을 매는 것이 재밌다. 몸이 힘들다가 풀을 매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 힘든 줄도 모른다"면서 "아마도 조경가와 결혼할 준비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고 웃었다.

이처럼 민씨는 정원 일에 열정적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조경기능사, 수목치료사 자격을 취득했을 만큼 관심이 높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수목원과 같은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를 키우고 있다. 계절에 맞게 향기와 꽃, 나무 자체로 멋지고 향기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는 꽃이 빈약한 겨울에도 이곳만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역할을 한다. 향기가 좋은 남매, 닥나무, 동백, 카멜리온 참죽 등은 겨울을 빛나게 하는 수목들이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2020년 제1호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대상, 2021년 민간정원15호, 순천민간정원 1호로 등록됐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순천시가 운영하는 개방정원으로 뽑혔다. 장학마을에만 4곳이 순천시의 개방정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마도 각기 4개 정원이 다른 특성의 정원이기에 시너지 효과로 마을의 아름다움을 외부에 알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산림청을 비롯한 임업 조경 전문기관에서도 선호한다. 자연을 헤치지 않고 수목원처럼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전남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조경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교육장과 실습공간으로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의와 실습은 남웅 대표가 맡는다. 실물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이다 보니 교육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단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대를 이어서 자연 속에서 힐링과 치유공간으로 오랜 생명력을 이어가는 명소로 자리 잡길 희망한다. 부부가 붓칠한 자연의 화폭이 계속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풍성해질 것이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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