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서는 자연과 예술 삶의 이야기가 흐른다. 넓은 대지 위에서 남편은 큰 그림을 그리고 아내는 섬세함으로 메워나간다. 정원지기들의 남다른 수고가 느껴진다. 부부가 32년간 시간을 담은 나무와 꽃들은 풍성하고 탐스럽다. 계절이 계절인 만큼 결실이라는 단어가 툭 튀어나온다. 순천시 별량면 장학마을에 자리잡은 '화가의 정원산책'에는 잔인한 올여름 무더위에도 꿋꿋이 푸르름을 간직한 수목과 초화류들이 가을의 색조로 칠해지고 있다. 가을 서정을 듬뿍 담아낸 한폭의 그림이다. 평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정원 풍경은 마을 앞에 펼쳐진 황금 들녘과 아름다운 조화로 가을 서정시를 연출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금씩 붉고 노래지는 이파리들은 앞으로 컬러풀한 외관으로 정원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정원 초입의 우람하고 늠름한 당산나무와 모과나무는 이 마을의 역사와 시간을 말해준다. 300년 이상이 된 이 나무들은 근위병처럼 꿋꿋하게 한자리에서 마을의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있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안뜰에서 시작했다. 녹색 잔디와 나무와 꽃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본 듯한 아담하고 멋스러움이 넘친다.

대지 위에 심겨진 나무와 꽃들은 300년 된 살구나무와 동백나무를 제외하고 부부 정원지기의 손길로 태어난 것들이다. 얼마나 애지중지 키웠을 것인가 생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자연의 캔버스에 꽉 찬 꽃과 나무는 방문자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다. 부부가 채색한 나무와 꽃에는 어느덧 깊은 그윽함이 자리잡고 있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작은 수목원이다. 안뜰에서 뒤쪽으로 이어지는 숲에는 다양한 수목들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지기가 계단식 지형에 맞게 테마별로 심겨진 나무들이다. 단지 구색만을 맞춘 것이 아니라 수목 종류와 규모도 제법 크다. 정원지기의 마음의 읽혀진다. 다랑이 정원으로 명명하고 계단식으로 조성한 곳이 눈길을 끈다. 대나무 숲을 이루기 전 이 일대에서 다랑이식으로 농사를 지었던 것을 식물과 나무로 다시 살려낸 것이다.
이처럼 나무와 꽃을 품고 있는 대지의 역사를 읽어가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다.
5개 테마로 조성된 정원의 주인공인 카멜리온 참죽, 삼지닥나무, 동백, 가시나무, 먼나무, 적백일홍, 단풍나무 등 나무와 식물의 정취와 풍경은 힐링과 휴식의 기운을 전한다. 싸목싸목 발걸음을 한 발짝 뗄 때마다 정원지기가 이곳에서 보물을 발견한 것과 같은 방문자들도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다.

몸속에 땅의 기운이 전해진다. 나무와 꽃향기에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한다. 숲의 기운이 폐 깊숙이 빨려 든다.
특히 대숲이었던 이곳에서 발견된 동백 군락지는 핫플레이스다. 300년 된 우람한 나무 20여그루에서 빨갛게 피워낸 꽃들은 초봄 화가의 정원산책을 환상적으로 연출하는 주연 배우인 셈이다.
화가의 정원에서 보물이 되고 있는 동백군락지는 대숲을 베어내고서야 무더기로 자생하고 있는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그곳에서 많은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을지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의외의 소득이었다. 다양한 나무들의 향기에 취해 다다른 '해뜨는 정원'이라고 명명된 곳에 서니 바로 앞에 첨산과 순천만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에는 갤러리가 있다. 부인인 정원지기가 자연 속에서 얻은 영감을 캔버스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숲에서 만나는 그림이 주는 기쁨도 남다르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정원지기 남씨와 민명화씨 부부가 자연을 캔버스로 삼고 붓칠해가고 있는 현장이자 작업공간이다. 그 세월이 32년이다. 1995년 도시생활을 하던 부부는 전원생활에 나섰다. 남편은 조경 전문가이고 아내는 화가로 꽃과 나무를 좋아했으니 전원생활을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다 지인을 통해 100년 된 한옥과 살구나무와 대나무숲이 있던 대지 300평의 이곳을 소개받았다. 마을 입구에 있는 운천저수지 풍경에 마음에 끌렸던 터라 주저함 없이 구매했다.
직장생활과 작품활동을 하는 부부는 주말이 되면 세 자녀와 함께 이곳에서 추억만들기를 했다. 채소를 심고 팻말을 붙이고 아이들은 작은 돌을 주워다 놓았다. 아이들의 놀이터였고 아내의 작업실이었다. 그리고 안뜰 뒤 대나무 숲까지 추가로 매입하면서 테마별로 이에 알맞은 나무를 심어나갔다.

장학마을은 풍수지리상으로 긴 학의 형상인데, 날개 부분에 해당하는 안뜰에는 상록수를 심어 보완하는 세심함을 보였다.
부부의 작업은 철저하게 분업체계이다.
조경 전문가인 남편은 큰 그림으로 설계, 즉 나무 종류, 심을 위치 등을 정하고. 화가인 아내는 남편과 함께 짠 구도 속에 전체적인 조화 색상의 조합에 주력한다.
이렇게 해도 나무가 너무 잘 자라 2~3년이 흐르면 나무나 꽃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때도 있다.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 같으면 맘에 들지 않으면 그 위에 덧칠을 해서 수정할 수 있을 것인데 자연이다 보니 고민이 많음을 피력했다.
그래서 식물을 심는데 나름대로 터득한 지혜가 있다. 예년에는 초화류를 선택하는데 화려함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제일 강하고 오래가는 것 즉 다년생 위주로 식물을 키운다. 환경변화도 실감하기에 나름 이에 맞게 대응한다.
갈수록 사나워지는 기상 이변과 관련해서는 많은 대응이 따를 수밖에 없다. 평지가 아닌 언덕이다 보니 심을 식물에 대한 지형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현안이 됐다.

"어렸을 적부터 꽃과 나무 들을 좋아했다"는 민화백은 "힘들겠네요 고생하시겠어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대답은 의외란다. "정원에서 풀을 매는 것이 재밌다. 몸이 힘들다가 풀을 매면 정신이 맑아진다"고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니 힘든 줄도 모른다"면서 "아마도 조경가와 결혼할 준비는 초등학교 때부터 인 것 같다"고 웃었다.
이처럼 민씨는 정원 일에 열정적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조경기능사, 수목치료사 자격을 취득했을 만큼 관심이 높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수목원과 같은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를 키우고 있다. 계절에 맞게 향기와 꽃, 나무 자체로 멋지고 향기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다양한 수목과 초화류는 꽃이 빈약한 겨울에도 이곳만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역할을 한다. 향기가 좋은 남매, 닥나무, 동백, 카멜리온 참죽 등은 겨울을 빛나게 하는 수목들이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2020년 제1호 전남도 예쁜정원 콘테스트 대상, 2021년 민간정원15호, 순천민간정원 1호로 등록됐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순천시가 운영하는 개방정원으로 뽑혔다. 장학마을에만 4곳이 순천시의 개방정원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마도 각기 4개 정원이 다른 특성의 정원이기에 시너지 효과로 마을의 아름다움을 외부에 알리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산림청을 비롯한 임업 조경 전문기관에서도 선호한다. 자연을 헤치지 않고 수목원처럼 다양한 식물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전남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조경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교육장과 실습공간으로서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강의와 실습은 남웅 대표가 맡는다. 실물과 이론을 겸비한 전문가이다 보니 교육생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단다.
화가의 정원산책은 대를 이어서 자연 속에서 힐링과 치유공간으로 오랜 생명력을 이어가는 명소로 자리 잡길 희망한다. 부부가 붓칠한 자연의 화폭이 계속 상상을 뛰어넘는 작품으로 풍성해질 것이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
방장산 품에 안긴 솔향 가득한 소나무 세상
우람하고 기품 있는 소나무들은 정 대표를 활기차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그의 마음을 빼앗아간 나무인지라 관리에 쏟는 노력과 투자도 진심이다. 그는 그만의 소나무 수목정원을 만들어 가고 있다. 어릴 적부터 소나무를 좋아했던 그가 이 밭을 소개받은 때부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리 잡은 희망 사항이었다. 그런데 희망과는 달리 좀처럼 진도는 나가질 못했다. 매물 대상지를 구매하고 행정 절차를 거치는 데 10여년이 걸렸으니 소나무 수목 정원에 대한 목표도 커졌다. 그렇기에 어디를 가다 눈에 들어온 나무나 소나무 숲들을 보면 반드시 보고 와야 직성이 풀린다. 그가 품고 있는 소나무 수목원을 만들고 싶은 그만의 노력이다.특히 루몽드 수목정원은 외지의 좋은 소나무들을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자생이라는 특이점을 경쟁력으로 삼는다.루몽드 수목정원은 사계절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봄, 여름, 가을에 맞는 꽃과 식물들이 주인공이 된다. 봄에는 노란 수선화꽃이 해맑은 얼굴로 은은한 풍경을 연출하고,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는 동백도 빠지지 않는다. 봄에 무슨 동백이냐고. 수목원이 위치한 이 지역 특성으로, 겨울에는 추워 동백이 꽃을 피울 기후 여건이 안 돼 3월 말에서 4월께 핀다. 정 대표는 "봄에 피는 붉은 동백꽃이 장관이다"고 자랑한다. 정 대표가 20년 된 동백나무 900그루를 심었는데, 일부는 죽고 살아남은 것들이다.루몽드 수목정원에서 다양한 꽃들을 보여 주고 싶은 희망으로 심었던 나무들이다. 무엇보다 루몽드 수목정원을 동백 명소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컸다. 동백꽃을 보기 위해 여수로 제주도로 가지 않고도 이곳에서 만발한 동백꽃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일부 죽기는 했지만 살아남은 나무들이 '봄날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동백꽃 잔치가 끝나면 분홍빛 철쭉도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정원의 색다른 맛을 내기 위해 소나무 밑에 심겨진 나무들이다. 동백과 함께 봄날의 루몽드 수목정원을 환하게 하는 콘텐츠이다. 6~7월에는 빨강 백일홍 잔치에 이어 형형색색의 탐스러운 수국이 만개한다.뿐만 아니라 11월과 12월 볼거리용으로 아기동백 묘목을 심었다. 1998년 이후 한그루씩 심었던 아기동백도 제법 고운 단풍을 선보이며 수목 정원의 포인트를 주고 있다. 푸르른 소나무와 진한 녹색이 갈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조명 아래 알록달록 빨갛게 물든 단풍길은 수목 정원의 포토존으로서 역할을 해주고 있다.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는 가을 낭만은 덤이다. 겨울에는 소나무와 동백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한다. 푸르름이 속성인 이 나무들은 하얀 눈과 어우러진 설경은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다.장성 진원면 출신으로 축산업을 했던 정 대표는 소규모 토목 사업을 병행해 왔다. 전원주택 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땅을 물색하던 정 대표가 이곳을 소개받은 것은 1997년 무렵이었다.매물로 나온 밤나무밭이었던 대상지를 돌아본 정 대표는 밤나무 속에 자리 잡고 있던 소나무들의 모습에 반해 버렸다. 50~60년된 밤나무들과 함께 생존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도 장대처럼 꼿꼿하면서도 늠름한 소나무들의 위엄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이 정 대표의 회상이다.마음이 꽂힌 것은 순간이었지만 밤나무밭 거래는 쉽지 않았다. 연관된 토지 주인이 7명이나 되다 보니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중간에 계약이 해지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어렵사리 주변 토지를 확보한 이후 우선적으로 9천평의 밤나무밭을 정리해나갔다. 밤나무가 40~50년이 되다 보니 수확량도 적고 소나무 성장을 방해했기 때문이다.밤나무를 베어내고, 소나무 아래에 철쭉, 동백나무, 백일홍, 수국, 목수국 등 다양한 나무와 식물들을 심어 나갔다. 전원주택단지 조성을 포기하고, 오로지 소나무 정원으로 조성하고 싶은 간절함이 컸다. 정 대표의 손길로 시간이 흐르면서 숨겨진 소나무의 존재감이 확실하게 살아났다.소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나뭇가지 방향도 확실하게 바뀌어졌다. 해를 쫓아 소나무 가지 방향은 루몽드 수목정원의 풍경도 다양한 모습으로 연출하고 있다.소나무에서 가장 치명적인 재선충에 대한 걱정과 예방은 그의 최우선 사항이다. 재선충이 '소나무 에이즈'라고 불리니 한번 감염되면 소나무밭이 초토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재선충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고 했다. 올해만 벌써 5차례 드론 방역을 했고, 수간주사도 실시했다.사계절 컬러가 있는 수목정원 분위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도 소홀함이 없다. 나무를 심고 초화류를 심는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다.물론 최대한 자연성을 갖추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루몽드 수목정원에 심겨진 수목과 꽃들은 대략 3만5천본이다.휴게공간인 건물도 방문객들의 눈길을 끈다. 카페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4~5년 전 광주 광산구 신창동에서 대형 창고로 지어졌다. 건물 내외부에 부착된 패널만 제거한 채 본체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내부 천정이 높고 면적이 넓어 실내는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 실내에서 밖을 내려다보면 그 풍경 역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는 것이 정 대표의 얘기다.루몽드 수목정원은 꾸준하게 정 대표의 손길을 거쳐 지난 2023년 전남도 민간정원 23호로 등록됐다. 우리나라 민간정원 100번째였다.수목정원에서는 공방도 함께 운영, 장애인 노인 등 소외계층에게 문화공간으로 제공돼 커뮤니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정 대표는 정원과 수목원 등 녹색 인프라의 지역 경쟁력을 실감하고 있기에 이를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멈출 수 없다. 우선 루몽드 수목정원이 육송 자생 군락지로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한 컨셉이다. 이것말고도, 수목원 탐방객들에게 차별화된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하는 콘텐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아울러 이렇게 가꾸어진 소나무 정원이 필암서원, 황룡강 등과 어울려 장성의 명소이자, 관광 포인트로서 기능을 다하길 바라는 마음이다.정 대표는 "장성의 관광 인프라가 되기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것 같다"면서 "이왕 시작했으니 지역을 넘어 소나무 정원으로서 특색을 살려가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용규기자 hpcyglee@mdilbo.com
- · 무등산속, 기암괴석···자연과 예술이 만나는 공간
- · 흑석산과 오류제 한눈에···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맛집'
- · 지리산 자락 소나무세상, 뷰포인트가 다르네
- · 전원주택 꿈꾸던 여장부, 산자락에 1만평 비밀가든 일궈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광주・전남지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교통정보, 미담 등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다양한 사연과 영상·사진 등을 제보받습니다.
메일 mdilbo@mdilbo.com전화 062-606-7700카카오톡 플러스친구 ''무등일보'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