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상적인 전시 방향은?
광주 민주주의 상징이자
국민연대와 화합의 장소
전문가 "공간 가치 살려야"
옛 전남도청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의 상징적인 장소다.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는 전두환 신군부에 맞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던 저항의 중심지였으며, 5·18 직후에는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추모공간이자 5·18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요구했던 집결지였다.
지금의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1987년 6월에도 호헌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는 목소리가 들끓었던 곳도, 초유의 국정농단으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재건할 당시 심판의 촛불을 밝힌 곳도 모두 옛 전남도청이다.
무등일보는 전문가들에게 광주의 상징인 옛 전남도청이 광주를 대표하는 기념시설이 되려면 어떤 방향으로 전시콘텐츠를 설계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김한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
"옛 전남도청이 간직한 기억을 방문객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건물 그 자체가 주는 역사적 느낌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한결 전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공간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청이라는 장소가 간직한 저항의 기억과 그만큼이나 강렬한 두려움 또는 긴장감의 흔적은 아직도 방문객들을 몸서리치게 한다는 점에서다.
국가가 자행한 폭력과 관계된 공간인 만큼 방문객들에게 당시 도청의 긴박했던 상황과 희생자들이 겪었을 참혹함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이 전시콘텐츠 설계의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물 중심의 스토리텔링 방식이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존 인물인 문재학 열사 포함 희생자들이 당시 무슨 활동을 했는지 등에 대해서도 부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또 생존자들이 겪고 있는 트라우마도 방문객들이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내보이는 게 좋다고 피력했다.
김 교수는 "상징적인 건물을 전시관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방문객들에게 도청의 상징성을 어필하려면 딱딱하고 도식적인 전시는 피해야 한다"며 "현재의 공간 구성이 역사적 의미를 반영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훨씬 많이 든다. 기존의 5·18 기념시설과 중복되는 부분은 없는지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도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동기 강원대학교 평화학과 교수
"방문객 스스로 역사적인 현장에 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동기 강원대학교 평화학과 교수는 전시콘텐츠는 방문객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5·18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하고 답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방문객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찾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가해자인 전두환 신군부에 대한 이야기 무조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해자 없는 국가폭력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가해자에 대한 언급이 없다면 당시 시민들이 왜 그렇게까지 저항했는지에 대한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전반적으로 원형복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같아 아쉽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집중해야 한다"며 "현재도 5·18에 대한 왜곡과 폄훼가 끊이지 않는 만큼 가해자에 대해서도 반드시 포괄해야 한다. 발포명령자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전시콘텐츠에서 제외하면 국가폭력이 얼마나 잔인하고,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는지 기억하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을 생생하게 살려야 합니다."
최호근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는 공간이 풍기는 힘을 잘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청이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총 6개의 건물과 그 앞 광장, 분수대로 이루어진 복합공간인 만큼 각 공간이 주는 힘을 있는 그대로 살려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상징적인 장소로 각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최 교수는 상무관의 경우 밑바닥에서부터 슬픔을 발산하는 장소이므로 어떤 것을 채우기 위해 애쓰기보다 절제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통으로 된 공간이기 때문에 상실과 공허, 울림 등을 표현하기 매우 유리하다는 이유에서다. 향후 애도해야 할 이유를 갖고 찾은 방문객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려면 상무관이 가장 적합하다고 봤다.
아울러 도청 앞 광장과 분수대는 민주주의의 역동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최 교수는 "기념의 방식에는 정답이 없지만 나중에 도청을 찾은 방문객이 공간 자체가 주는 힘을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 5월 학살 주범 전두환 잔재, 전국 곳곳에 12일 고동의 생명의 숲 되찾기 합천군민운동본부 간사가 경남 합천군 전두환 생가 앞에서 안내문에 적힌 전두환씨의 과오를 미화한 설명을 지적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광주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씨의 잔재가 전국 곳곳에 여전히 남아 있다.12일 5·18기념재단에 따르면 전씨가 태어난 경남 합천부터 서울, 경기, 장성 등 전국 곳곳에 전씨를 기념하는 시설이 있다.우선 합천에는 전씨가 유년기를 보낸 생가가 있다.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씨는 1983년 자신의 생가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다.생가 앞 안내판에는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12·12가 빚어졌다', '취임 때 한 단임 실천 약속에 따라 40년 헌정사에 임기를 마치고 스스로 물러난 최초의 대통령이다' 등 전씨의 과오를 미화·포장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합천군은 해마다 수천만원에 달하는 세금을 들여 전씨 생가의 초가집 지붕과 정원을 관리하는 중이다.전씨의 아호 '일해(日海)'를 딴 공원도 있다. 2004년 조성됐을 때만 하더라도 '새천년 생명의 숲'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으나, 2007년 합천군이 일해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공원에 세워진 표지석에는 '이 공원은 대한민국 제12대 전두환 대통령이 출생하신 자랑스러운 고장임을 후세에 영원히 기념하고자 대통령의 아호를 따서 일해공원으로 명명한다'라는 문구가 전씨의 친필로 새겨져 있다.아울러 합천군청 청사 외부에는 전씨의 기념식수가 심어져 있기도 하다.또 서울 국립중앙도서관과 중소기업중앙회에는 각각 '국민 독서교육의 전당'과 '중소기업은 나라의 주춧돌'이라고 전씨의 친필을 새긴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경기도 과천 국사편찬위원회에도 전씨의 기념식수가 있다.경남 합천군청 청사 외부에 심어진 전두환씨 기념식수.지역에서는 장성군 상무대 무각사에 있는 전씨의 범종이 대표적이다.이 범종은 전씨가 1981년 기증한 것으로 '상무대 호국의 종', '대통령 전두환 각하' 등의 문구가 쓰여져 있다.재단은 이밖에도 전국 군부대 등에 전씨의 잔재가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차종수 재단 기록진실부장은 "범죄를 저지른 자는 엄중히 처벌해 역사의 반복을 막아야 한다. 굴곡진 역사를 곧게 펴지 않으면 생각지도 못한 사이 퇴행의 싹을 틔우게 된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범죄자를 기념하는 시설을 관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사법부로부터 유죄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서는 기념물을 조성할 수 없도록 하는 법률 제정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글·사진=박승환기자 psh0904@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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