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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서훈됐지만…’후손 없어 전달 못해
입력 : 2019년 08월 12일(월) 19:06


보훈처, 74주년 광복절 맞아 훈장
광주 3·1운동 주역 포함 46명 서훈
19명 중 1명만 전달…나머지 보관
1919년 3월 10일 광주 부동교에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옥고를 치른 애국지사들이 100년만에 정부 훈장이 추서돼 독립운동사에서 새롭게 조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12일 국가보훈처와 광주지방보훈청에 따르면 제 74주년 광복절을 맞아 광주 3·1만세운동에 참여한 19명을 포함한 광주·전남 애국지사 46명이 정부포상자로 훈장을 받는 등 서훈이 추서됐다. 이번 광주·전남 지역의 서훈 규모는 지역별 독립운동 포상자 수만을 놓고 보면 전국 최다 규모로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특히 1919년 3월 10일 광주 부동교 장터에서 광주 3·1독립만세운동을 펼친 애국지사 19명이 대거 포함, 광주 3·1만세운동이 100년만에 재조명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훈 대상자로는 당시 3월 10일 전남 광주농업학교 재학중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 체포돼 징역 1년의 옥고를 치른 김정수(광주 좌동·1977년 작고) 선생이 건국훈장 애족장을, 같은 날 광주 남문과 동문에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며 만세를 불렀던 김판철(광주 효천 양림·사망일 미상) 선생이 건국포장을 각각 받는다.

양만석(함평 신광면), 황오봉(완도읍) 선생 등은 대통령 표창에 서훈됐다.

그러나 74주년 광복절에 포상이 유족에 직접 전수되는 이는 이병환 선생 단 한명 뿐으로, 나머지는 유족을 찾지 못해 국가보훈처가 보관해 향후 방계 등의 유족을 찾게 되면 전수된다. 국채진, 양만석, 배광석, 박창규, 민성숙, 김학선, 김필호, 김판철, 김정수, 김장수, 김영기, 김상원, 황맹석, 홍금돌, 차학봉, 주장암, 조흥종, 정삼모 등 18명의 훈장은 전달되지 못한다.

올해 광복절 전수되는 독립유공자 포상은 모두 27명으로 3·1운동 계열 11명, 국내 항일 10명, 일본 방면 1명, 학생운동 5명 등이다.

광주가 3명, 전남이 24명인 가운데 전남에서는 함평이 7명으로 가장 많다.

광주3·1만세운동은 함평 출신인 일강 김철 선생이 1919년 고종황제의 국장을 보러 상경하다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3월 5일 광주로 돌아와 만세운동을 지역민들에게 전파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앞서 도쿄 유학생 정광호가 조선청년독립단 명의의 2·8선언서를 광주 청년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같은해 3월 5일 양림동 남궁혁 선생 집에서 모여 3월 8일 장날을 기해 만세 운동 거사를 논의했으나 3월 10일로 연기됐다.

3월 10일 부동교 아래 장터에서 1천여명의 군중이 모였고 숭일학교·수피아여학교·광주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번 서훈은 경남 하동의 재야사학자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이 2009년부터 국가기록원을 통해 독립유공자를 발굴하고 국가보훈처에 꾸준히 서훈 신청을 해 온 성과가 컸다.

정 소장이 지난 2009년부터 발굴한 광주 3·1만세운동 독립유공자는 총 39명으로 늘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훈장 서훈시에는 본인이나 유족에게 전수하게 돼 있고 직계 유족을 찾지 못하면 적절한 방계 유족을 찾을 때까지 국가보훈처에서 보관하게 돼 있다”며 “이번에 전달되지 못한 훈장에 대해서도 향후 후손을 찾아 전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