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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칼럼- 하여 다시 모든 껍데기는 가라
입력 : 2019년 07월 04일(목) 00:00


조덕진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 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 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1968년 부산 문학세미나 김수영 강연 중)

트럼프의 월경, 김정은의 월남.

전쟁 당사국 최고책임자들이 군사분계선을 넘나든다. 69년 분열과 증오, 40㎝×15㎝에 불과한 저 거대한 괴물, 군사분계선인 순간이나마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비현실적인 현실이 감동을 넘어 깊은 그리움을 불러들인다..

분단이라는 포식자의 불행

저 작은 덩치로 한반도 7천만 민족을 집어삼키는, 분단이라는 포식자를 거부했던 이 땅의 시인, 예술인, 때묻지 않은 맑은 눈빛의 청년들….

‘무모하고, 전투적이고, 심지어 위험하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시인의 길을 뚜벅뚜벅 걸었던 김수영. ‘백두에서 한라까지 쇠붙이는 가라’고 절규했던 신동엽 시인이며 해방공간의 사회주의자 주인공을 멋지게 표현했다는 이유로 고발당했던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 분단의 아픔을 노래했다는 이유로 간첩으로 몰린 윤이상. 일본의 2등 국민, 재일 조선인(혹은 한국인), 자이니치. 서럽게 그리운 고국으로 유학길에 올랐다 간첩으로 몰려 불구가 된 몸, 한 많은 꿈을 안고 사는 이들.

저 포식자에게 온갖 쇠붙이를 갖다 바치며 쇠붙이에 빌붙어 연명하는 종들을 견디지 않았던 인간의 얼굴들이다.

그렇다, 저 넘치고 과분한, 비현실적 현실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내 잘못만은 아니다. 이 축제에 인간의 형상을 하고 멀쩡히 궤변을 일삼는 자유한국당의 정상회담 폄훼. 아픈 상처-1980년 광주민중항쟁 폄훼-를 건드린다. 반가움보다 서글픔이, 환희보다 절망이 밀려드는 이유다.

69년의 세월을 숨죽여 버텨온 이산가족. 그들의 외롭고 서글픈 기다림. 저들이 두들기는 계산기 불똥이 칼이 돼어 그들의 심장을 찌른다. 아프고 절절한 그리움도 이 특이한 종들에겐 한낱 계산의 대상일 뿐이다. 도저한 평화의 대장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 너머로 한 줄기 희망도 솟아오른다. 봉준호 감독. 이름만으로도 반갑고 고맙고 감사하다.

반가운 얼굴들은 비슷한 색을 지닌다. 김수영을 다시 만나고서 봉준호에게서 그의 그림자를본다. 봉 감독에게서 시인의 색감을 느끼는 일은 어쩌면 현대라는 사막을 건너며 위로받고 싶은 몸부림 같은 것일지 모를 일이다. 여하한에.

시인은 일제 강점기 1921년 중인들의 주거지인 서울 종로 관철동에서 났다. 경기도·강원도에 광대한 토지를 소유한 지주 집안이었다. 몰락했다고 하나 네 살 때 일하는 여성 등에 업혀 유치원을 다녔고 일본 유학을 다녀왔다. 소위 금수저인 셈이다. 금수저 출신의 시적 정신과 삶의 여정이라니.

봉 감독은 시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중상류층에 소위 좋은 대학을 나온 수재다. 은수저쯤 되는 셈이다. 이 은수저가 만들어낸 설국열차·기생충, 자못 의미심장하다. 과거 우익의 눈으로 보자면 ‘가진 것 없고, 사회에 불평불만이 많은 놈’들이나 할 법한, 독립영화에서나 만남직한 작품이다. ‘기생충’이 ‘너무 어둡고 빈부격차를 드러내 불편하다(재미없다)’는 일부 팬들의 반작용을 보면 이 감독의 계급의식 분명한 셈이다. 은수저 출신의 계급의식이라. 여기에 열정페이 갑질이 만연한 대중예술판에 표준근로계약서를 지킨, 몇 안되는 감독이다.

쇠붙이 기생충을 넘어

봉준호가 반가운 것 중 하나는 소위 강남 좌파의 재림이다. 기생충의 기태와 그 부인의 대화가 상징하듯 ‘부자도 좋은 사람’을 넘어 ‘부자니까 좋은 사람’일 수 있다면 건강한 사회일 것이다. 이제 평화의 대장정에서 쇠붙이에 기생하는 종들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면 될 일이다. ‘한라에서 백두까지/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 쇠붙이에 기생하는 자들이 부화뇌동하지 못하는 세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