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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태의 市井漫談(시정만담)- 못난 역사도 잘난 역사도 우리의 몫이다
입력 : 2019년 06월 20일(목) 00:00


우리에게 5·18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피눈물로 기록된 산문인가. 여전히 굴절된 역사의 회오리 한가운데를 아프게 헤쳐나가며 현재 진행형인 서사인가.

우리 근현대사는 영광과 환희보다는 왜곡과 비방, 폄훼와 능멸로 점철돼 있는 부분이 더 많은 듯 하다. 잘난 역사와 못난 역사의 기록은 당대와 지금, 그리고 후대를 이어갈 이들의 역할에 달려있고 그로 인해 도달할 결과다. 그 한가운데서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뒤 엉키는 것도 마찬가지 일 터다. 드물게 영광과 환희를 안겨주었던 잘난 역사는 일단 접어두자. 뒤틀리고 일그러져 퇴행으로 치달았던 못난 역사의 단초는 해방 후 반민특위의 좌절로부터 비롯됐다. 그에 관한 수많은 기록과 분석을 토대로 한 판단은 익히 알려진 바다.

일그러진 사회, 뒤틀린 자화상

또 다른 분기점은 5·16이라 할만 하다. 인권을 억압하고 양심에 강제의 사슬을 얽어맨 야만을 초래한 동인(動因)이었다는 점에서다. 공(功)과 과(過)에 대한 수많은 부딪침에도 불구하고 이후 펼쳐진 허위의 역사가 그러한 평가를 대체적이게 했다.

그리고 긴 어둠을 뚫고 우연인 듯, 필연인 듯 찾아온 광명의 기회 또한 못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문드러지고 말았다. 12·12,서울의 봄, 뒤 이은 5·18.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좌절된 역사의 댓가는 반드시 찾아오게 마련이다. 40여년 가까이 흐른 오늘에도 항쟁이 사태나 폭동으로, 민주와 인권, 평화를 외쳤던 시민이 불순한 의도를 지닌 폭도로, 선(善)함이 악(惡)함으로 변질되고 유린당하는 굴레가 되고 있다.

E.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청산하지 않고 넘겨버린 뒤틀린 과거는 오늘과 내일의 질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거나 제대로 해결하지 않고는 현재의 정의도, 미래의 가치도 담보될 수 없다. E.H 카가 강조한 ‘대화’의 의미는 그런 속 뜻을 품고있다고 보아야 한다.

소크라테스의 ‘정의’도 언급해볼만 하다. 그는 “‘정의’란 적과 동지의 구분을 떠나 모든 인간에게 동일해야 한다”고 했다. 그게 분명한 악(惡)임에도 동지라해서 옳다고 두둔하며 정당성을 부여하려함은 바르지 못하다. 적으로 규정지어 이를 끝없이 비난하고 매도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정의는 정의일뿐이다’는 명제를 그 의미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80년 5월 광주에서 불의의 세력들에 의해 자행된 학살의 진상을 두고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잔혹한 악행을 저지르고도 반성없는 장본인과 이들을 두둔하는 냉전 수구세력들의 준동은 점입가경이다. 정의와 평화, 인권에 바탕을 둔 공적 가치가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오랜 세월 악착같이 누려온 기득권을 끝내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사적 이익에 치우친 두려움에서 일거다.

그들은 혐오를 넘어 저주의 언어로 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몰아 간다. 5·18을 그렇게 왜곡하고 능멸하는가 하면 6·10항쟁의 가치도 안중에 없다. 세월호 참사는 운 나쁘게 발생한 교통사고, 유족들의 항의는 ‘시체장사’에 불과하다. 지난 독재 정권에 빌붙어 부역하고 그 부스러기 권력을 향유했던 그들이 외치는 ‘독재 타도’는 헛웃음을 자아내게 할 뿐이다. 그들은 또 철지난 색깔론을 내세워 좌와 우로 나누어 내편이 아니면 척살해야할 적(賊)으로 규정하고 그 어떤 관용도 허용치 않는다. 굴절된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추악한 망동이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렇게 흉측하게 일그러 뜨리고 있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있어야

독일 태생의 유대인 철학 사상가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그의 저서인 ‘인간의 조건’에서 “‘인간의 자유’란 곧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성립되는 자유”라고 했다. 그녀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이야기 하며 “악이란 뿔달린 악마처럼 별스럽고 괴이한 존재가 아니다. 평범한 사람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우리 가운데 있다”는 경고도 남겼다. 진리나 정의, 상식과 거리가 먼 집단 광기가 이를 유발함을 간파하고서다.

하늘의 별이 된지 10년만에 우리 곁에 다시 다가온 ‘새로운 노무현’의 언급으로도 지금의 일그러진 사회, 뒤틀린 자화상에 대한 경고는 충분하다. 노 전 대통령은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고 했다. 맞는 이야기다. ‘사람사는 세상’은 민국(民國)의 주인이자, 권력의 주체인 시민들이 깨어 있어야 만들어낼 수 있다. 볼만한 역사, 잘난 역사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만 가능하다. 정의와 상식이 아닌 불의와 몰상식, 몰역사관이 판치는 사회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고 토양이 돼준 깨어나지 못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