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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평- '고독한 광주'의 2019년 봄
입력 : 2019년 03월 18일(월) 00:00


윤성석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1980년 5·18항쟁이후의 한국정치의 특징 중 하나는 5·18 신드롬의 반복이다. 이 신드롬은 심리적인 현상이 아니다. 대신 정치권의 의도적인 망언과 궤변으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의 사회화를 의미한다.

필자는 왜 5·18 신드롬이 이 땅에서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이유를 찾지 않고는 이 망국병의 해소는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또한 '고독한 광주'도 헤어나기 어렵다고 본다. 먼저 학계를 보라. 사회과학이나 역사학계에서 5·18항쟁이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어떠한 형태로 어느 정도의 임팩트를 부여했는지에 관한 확실한 패러다임이 구축되지 못한 실정이다. 다른 민주화 사례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고문자그룹(가해자)에 대한 법률적 처벌이 상징적인 미미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나 법률적으로나 미완인 5·18항쟁은 언제든지 정치권의 손쉬운 정치화의 메뉴로 활용당하는 태생적 한계가 운명처럼 높여있는 것이다.

미완성의 5·18은 역설적으로 한국 민주화 과정의 부속물로 세상에 그 실체가 드러났다.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은 선천적으로 5·18을 두려워했다. 그런데 5·18의 혁명적 열기가 주도하던 독재타도의 사회적 저항은 1987년 6·29선언을 분기점으로 '위로부터의 민주화' 방향으로 선회하기에 이른다. 이는 좌우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극좌와 극우세력을 배척하고 대신에 여야의 중도파끼리 대타협에 이르는 모더스 비반디(Modus Vivendi)를 의미한다. 그러나 중도파 대타협을 이루기 위해 가장 중요한 선결조건이 있다. 이는 전두환 독재정권이 저지른 각종 탄압과 처형에 대한 처벌 없음(No Punishment)을 대타협 과정에서 암묵적으로 동의 받는 것이다.위 양 세력의 정치적 부침은 이후 민선정부에서 간혹 세세한 변화를 겪었지만 원래의 1987년 대타협의 구도는 2019년까지 지속되고 있다.

영호남 지역할거주의 구도에서 호남의 보스정치를 비판적으로 분석해보자. 전두환을 용서해야 된다는 정치적 주장을 선도적으로 이끈 분이 바로 김대중 씨다. 오죽했으면 1990년대 중반 지방신문에 조비오 신부께서 가해자인 전두환이 사과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를 왜 먼저 해야 되느냐는 유명한 사설을 쓰신 적도 있다. 호남정치는 지역할거주의에 갇힌 채 5·18을 지역갈등 정치의 차원에서 우려먹느라 장기적인 역사적 조망을 상실하기에 이른다. 이는 자충수(self-made)에 걸려 5·18항쟁이 부여해주는 호남에 대한 보상과 선물을 스스로 걷어차는 격이다. 결국 지만원씨의 광수론과 전두환 씨의 자서전 파동 등의 5·18 신드롬에 직면하더라도 스스로 해쳐나갈 수 있는 역랑이 미진하기 때문에 타자의 도움과 국제인권레짐의 응원에 기대고 있다.

결론적으로 완벽한 학문적 집대성과 법률적 평가와 처벌을 마치지 않은 5·18은 미완성의 혁명이 안고 가는 수많은 딜레마가 그 동학 속에 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남정치에 주는 딜레마는 바로 이러한 미완의 혁명으로서의 5·18항쟁이 지닌 환류(feedback) 현상이다. 광주는 1980년 5월 한국의 정치경제적 지형을 변화시키는 거대한 역사를 이끌었지만, 현실은 5·18의 의미와 진실이 지역할거주의에 함몰되어 호남인들은 오랫동안 집단적인 피해의식에 시달리고 지역갈등 구조에 갇혀 살게 되었다. 20세기말부터 5·18 전국화가 시도되고 비로소 학문적 규명과 피해에 대한 보상과 제도가 부분적으로 시행될 수 있어 다행스럽지만 그동안 감내할 수밖에 없었던 광주의 고독은 어떻게 위로받고 보상받을 수 있을까? 근래처럼 5·18을 폄훼하는 정치세력의 망발이 재현될 때마다 광주의 상처는 다시 덧나게 되어 끓어오르는 분노를 여하히 통제해야할지 난감하다. 5·18을 향한 정치적 공격에 광주와 호남은 역설적으로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감정을 통제하고 역사창조자로서의 자존감과 예의를 견지해야 되는 미완성의 5·18 운명! 무등산의 산벗꽃이 만발한 2019년 봄날에 광주의 고독은 깊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