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합의란 말이 처음 공식화된 것은 지난 1993년이었다. 그 해 4월 1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임금인상률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시도한 방식에서 비롯됐다. 노사의 자율성 강화가 골자였다. 정부의 가이드라인 대신 노총과 경총이 사전 합의를 통해 결정한 임금인상률 범위 내에서 각 사업장별로 노사가 자체 합의를 통해 인상안을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노사분규가 심했던 당시 이 방식은 큰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적 합의가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서였다. 대표적인 게 2017년에 있었던 '탈원전 공론화'와 작년에 있었던 '2022년 대입제도 개선 공론화'였다. '탈원전 공론화'는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건설 중단과 재개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위원회 결론은 '재개'였다. 탈원전에 대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원전 공사 재개를 결정했다. '2022년 대입제도 개선 공론화'도 '현행 수준 유지'선에서 마무리됐다.
지난해 광주에서 진행된 '도시철도 2호선' 착공 여부에 대한 공론화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당초 이 사업은 오랜 논의를 거쳐 추진쪽으로 가닥이 잡혀 있었다. 하지만 지방선거 이후 일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에 부딪친 현 시장이 '공론화'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론은 '정상 추진'이었다.
최근 장성군에서도 눈에 띄는 사회적 합의가 하나 도출됐다. 그동안 논란이 됐었던 장성 성산마을 도로변 50년생 아름드리 은행나무 130여 그루를 제거하기로 한 결정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공론화 군민참여단'의 무기명투표였다.
이곳은 매년 가을이면 노란색 은행잎으로 황금빛 장관을 연출하는 전남의 대표적인 명품 가로수길 중 하나였다. 지난 가을에도 많은 외지인들이 가을정취를 만끽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말 그대로 지역의 소중한 경관가치이자 관광자산이었다. 하지만 지역 주민들에겐 애물단지였다. 매년 자라나는 뿌리와 가지가 상가건물과 담장, 보도블럭 훼손의 주범이었기 때문이었다.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공익가치와 사익가치가 정면충돌한 것이었다. 이런 가운데 장성군이 꺼내든 해법이 '공론화'였다. 이번 결정으로 50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올 3월 베어지게 됐다. 주민들의 피해가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사회적 합의에 '당연한 결론'은 없다. 그것이 꼭 그렇게 돼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건 아니다. 때론 명분보다 실리가, 또 때론 공익보다 사익이 우세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고 사회적 합의가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논의 과정 자체만으로도 수긍해야할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쩔 것인가. 이런 아쉬움도 사회적 합의의 일부인 것을. 윤승한 사회부장 shyoon@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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